OECD 평균 의사 수 맞추려면 의대 정원 4500명 늘려야 [쓴소리 곧은 소리]
  •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0.20 15:05
  • 호수 1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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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사연 “2035년 의사 1만~2만7000명 부족”…의사 몸값은 천정부지
‘응급실 뺑뺑이’ 없애고 필수의료·지방에도 의사 가도록 의료체계 개편을

의사가 없어서 응급·중증·소아·분만 같은 필수의료 체계가 무너지고 있다. 우리 국민 중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의사들밖에 없을 것 같긴 하지만 근거가 무엇인지, 얼마나 의사가 부족한지 확인한 후 어떻게 의사를 늘려야 하는지 이야기해 보자. 의사협회는 고장 난 녹음기처럼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을 20년 넘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통계와 연구 결과 같은 객관적 근거, 최근 의료대란과 치솟는 의사 몸값 같은 정황 모두 의사가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사 수는 OECD 국가 평균의 2/3 수준, 의대생 수는 OECD 국가 평균의 55%에 불과하다. OECD 국가와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의대 정원을 약 2500명 늘려야 하고, OECD 국가 평균 의사 수에 도달하려면 30년 동안 매년 2000명씩 늘려야 하니, 합치면 의대 정원을 4500명 늘려야 한다.

여러 국가 연구기관의 연구 결과도 의사 부족을 예측하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은 2035년 의사가 약 1만~2만7000명, 한국개발원은 2050년 2만2000명 부족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이들이 현재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고 전제한 것이라 필요한 의사 수를 과소 추계했다. 지방과 필수의료 분야에 부족한 의사 수는 최소 1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앞으로 10년간 의대 정원을 2000~4000명 늘려야 한다는 뜻이다.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방안 당정 협의’가 열린 2020년 7월23일 국회 정문 앞에서 대한의사협회가 “문제는 인원이 아니라 배치다” 현수막을 들고 증원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의사들의 수입, 세계에서 가장 높아

매일 20명 이상의 응급환자가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겪고 있고, 대부분 대학병원인 상급종합병원 45개 중 24시간 소아 응급환자를 볼 수 있는 병원은 12곳에 불과하다. 의사가 부족하니 의사 몸값도 치솟고 있다. 지난 10년간 월급을 받는 의사 수입은 1.5배, 개원 의사 수입은 1.9배 늘어났다. 이제 우리나라 의사들의 수입은 전 세계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금 의대 정원을 늘려도 배출되기까지 향후 10여 년간 의사들의 수입은 계속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동시에 새로 배출된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에서, 지방에서 일할 수 있도록 의료체계도 함께 개편해야 한다. 응급환자와 중환자를 보는 의사들이 ‘워라밸’을 지키면서 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24시간 365일 응급환자와 중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체계가 유지되려면 병원이 진료과목별로 적어도 6~7명의 전문의를 고용하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힘들게 응급환자와 중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에 대해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이런 기준을 지키는 병원에만 보험수가를 인상해 주면 된다.

무한경쟁, 각자도생이 지배하는 무질서한 의료체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증 응급환자가 ‘응급실 뺑뺑이’를 겪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응급환자 수에 비해 응급센터로 지정된 병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의사 수에 비해 병원이 너무 많다 보니 의사가 여러 병원으로 분산되고, 병원당 2~3명밖에 안 되는 의사로는 365일 당직을 설 수 없으니, 밤에는 대도시마저도 응급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이 없는 무의촌(無醫村)이 된다.

이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을 환자 수요에 맞게 응급, 심장, 뇌, 소아 같은 분야별 센터로 구분해 지역별로 고르게 지정해야 부족한 의사 인력을 한곳으로 모을 수 있다. 의사와 환자를 전문화·세분화된 센터에 집중시키면 규모의 경제가 생겨 의료의 질과 효율성이 모두 올라갈 수 있다.

 

‘강릉아산병원’이라는 좋은 병원 이야기

새로 배출된 의사들이 지역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먼저 의대 신입생의 적어도 70~80%를 자기 지역 출신으로 뽑아야 한다. 지금처럼 지방 의대생의 절반 가까이를 수도권 출신 학생으로 뽑으면 지방에는 의사가 늘지 않는다. 의료취약지에는 새로 배출된 전문의가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300~5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도 필요하다. 인구 30만 명에 불과한 강릉이 서울보다 입원환자 사망률이 낮은 이유는 강릉아산병원이라는 좋은 병원이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지방 병원이더라도 좋은 병원이라면 선택하는 좋은 예다.

하지만 해야 할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 이 복잡한 일을 단순하게 하는 방법은 의대 정원을 특정 의과대학에 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도별로 지역 응급·중증·소아·분만 환자를 책임지는 ‘필수의료기관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병원들이 함께 운용하는 인력으로 배정하면 된다. 그래야 의과대학이 늘어난 정원으로 지역 출신을 더 많이 뽑고, 대학병원을 벗어나 동네 병·의원에서 교육받도록 하고, 지역의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병원에도 전공의와 교수를 파견하고, 중환자는 대학병원에서, 경환자는 지역병원에서 진료하도록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해야 대학병원이 늘어난 정원으로 몸집을 불리고 지역 중소병원은 환자가 줄어들어 지역 의료생태계가 파괴되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의사 인력만 함께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필수의료기관 네트워크’에 속한 병원들이 힘을 합쳐 진료하도록 건강보험 진료비와 재정적 인센티브도 각 병원이 아니라 네트워크에 주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지금처럼 각 병원이 어떻게 환자를 진료하는지를 평가해 성과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의료기관 네트워크 전체가 환자를 얼마나 잘 진료했는지를 평가해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오래전부터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의료체계를 개편해 오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중앙정부가 꼼꼼하게 챙겨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정책은 중앙정부가 설계하더라도 실행은 시도 지방정부에 맡겨야 한다. 지역 주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은 시도의 책임이고, 중앙정부가 내밀한 지역 사정을 고려해 정책을 실행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시도 산하에 ‘필수의료기관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기구를 만들어 늘어난 의사 인력을 어떻게 함께 활용할 것인가를 포함해 ‘지역완결형 필수의료체계’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지방정부와 병원들이 함께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시도에 돈을 주고 건강보험으로는 충당할 수 없는 병원에 대한 시설투자, 의사의 당직비, 교육훈련 비용, 네트워크 운영 비용을 감당하도록 해야 한다. 담배세를 재원으로 공공의료를 위해 조성된 ‘건강증진기금’을 시도에 배분해 지역 주민의 필수의료를 책임지도록 하면 된다. 건강증진기금을 적립금이 23조원이나 쌓여 있는 건강보험재정을 지원하는 데 쓰는 것은 옳지 않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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