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주주 지분 승계 시 60% 할증…전 세계적으로 유례없어”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4.02.06 10:00
  • 호수 1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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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웅규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상속세 문제 방치하면 ‘코리아 택스 에미그레이션’ 현실화”

“한국은 상속세율뿐 아니라 상속세 부과 방식도 OECD 국가 중 최악이다. 납세자에게 유리한 것은 하나도 없다. 가업 상속의 경우 상속세를 줄여주거나, 아예 면제해 주는 해외 선진국들의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1월31일 만난 조웅규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의 첫마디다. 그는 그동안 상속이나 기업 승계 관련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뤄왔다. 수많은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의 오너들을 만나 상담했는데,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고 한다. “천문학적인 상속세 때문에 승계는 물론이고, 향후 기업을 운영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었다. 일부 기업은 상속세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창업주가 애지중지 키운 회사를 해외에 매각하기도 했다. 결국 한국 기업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까지도 갉아먹을 수 있다고 조 변호사는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가업 승계를 ‘부의 대물림’과 연결 지어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조 변호사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20년 전과 비교해 상속세 규모가 60배 이상 증가했다. 사망자가 있는 가정의 5%가 상속세 납부 대상이라는 통계도 있다”면서 “제도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전 국민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역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2022년 말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어렵게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기업들은 혜택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용률도 극히 저조하다. 조 변호사는 “이전에 비해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현실과 맞지 않는 조항도 여전히 많다”면서 “해외 선진국 수준으로 제도를 다듬기 위해서는 정부는 물론이고 국회, 학계, 관계기관이 모여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조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현행 상속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50%로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반영된 대주주 주식을 물려줄 경우 60%로 할증된다. 100억원 규모의 기업을 자녀에게 물려줄 경우 60억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는 얘기다. 심지어 생전 증여까지도 가산해 세금을 부과하다 보니 남아있는 가족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38개 OECD 국가 중 19개국이 배우자나 자녀에게 상속할 경우 세금을 면제하고, 10개국은 아예 상속세 자체가 없는 것과 차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나.

“한때 스웨덴도 상속세가 70%에 달했다. 상속을 앞둔 기업의 부담이 적지 않았다. 아스트라 AB가 대표적이었다. 1984년 회사 창업주가 사망하자 가족들은 보유 주식을 매각해 상속세 납부를 추진했다. 하지만 시장에 소문이 퍼지면서 회사 주가가 폭락했다. 가족들은 결국 보유 주식 전량을 처분하고도 상속세를 납부하지 못했고, 회사는 영국의 제네카에 매각됐다. 이 회사가 코로나 팬데믹 당시 백신을 개발한 아스트라제네카였다. 다른 기업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막대한 상속세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잇달아 회사를 처분했다. 기업 투자가 축소되면서 실업률이 치솟았다. 위기를 느낀 스웨덴 정부는 2005년 상속세를 폐지했다.

현재 한국이 스웨덴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락앤락과 유니더스, 쓰리쎄븐 등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기업들이 상속세 부담 때문에 승계를 포기하고 회사를 매각했다. 가업을 잇기보다 회사를 처분해 현금을 쥐는 것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젊은 자산가의 해외 이탈을 가속화하는 ‘코리아 택스 에미그레이션(Korea Tax Emigration)’이 나올 수 있다. 장기적으로 기업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까지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2022년 말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가업 상속을 보호할 제도가 이미 마련된 게 아닌가.

“개정안이 가업 상속을 위한 특례제도로, 이전에 비해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아직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연평균 이용 건수가 100여 건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관련 제도 개선 후 이용 건수가 1만1000건인 독일이나 일본과 확연히 비교된다. 특례 혜택을 받아 어렵게 승계를 마무리해도 문제는 남는다. 세금 공제가 아니라 유예이기 때문에 업종을 바꾸거나 기업을 청산할 경우 이 세금을 모두 납부해야 한다.”

일부 기업 총수들이 자녀에게 편법적으로 지분을 승계해 논란이 됐다. 규제를 완화할 경우 ‘부의 대물림’을 위한 도구로 전락할 수 있지 않나.

“상속세 부담은 단순히 기업에만 국한되는 이슈가 아니다. 20년 전에 비해 상속세가 60배 이상 증가했다. 사망자가 있는 가족의 5%가 상속세 납부 대상이라는 통계도 있다. 특정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최근 상담한 의뢰인의 사례다. 이 의뢰인의 부모는 젊은 나이에 사별하고, 온갖 고생을 하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주공 아파트를 마련했다. 이때가 20년 전이었다. 최근 재건축 붐이 일면서 집값이 급등했지만, 구입 당시는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최근까지도 이 집에 살던 부모가 사망하자 의뢰인에게 8억원의 상속세가 나왔다.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집을 처분해 상속세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불합리한 제도를 이제는 현실적으로 뜯어고칠 때가 됐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하나.

“다른 OECD 국가들처럼 세율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반영될 경우 60%로 할증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다행히 정부도 학계나 관련 단체의 요구로 대주주 주식 할증에 대한 개선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상속 과정에서 자주 발생하는 경영권 분쟁 역시 풀어야 할 숙제다. 상속자의 유언에 따라 특정 자녀에게 지분을 승계해도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을 하면 받아들여지는 게 현실이다. 유언이 없을 경우는 더하다. 상대적으로 가족의 경영 참여율이 높은 중소·중견기업은 물론이고, 대기업에서도 상속 이슈가 발생하면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이 온전히 경영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상속세 이슈를 일부 대기업의 편법 승계 논란과 연결 짓는 시각이 많다. 이런 문제를 불식시킬 수 있는 대기업의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일리 있는 말이다. 대중은 아직도 가업 상속을 ‘부의 대물림’으로 이해한다. 일부 대기업의 편법 승계 논란이 이런 시각을 부추긴 것도 사실이다. 이런 시각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기업도 노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최근 3조원대로 평가되는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의 컬렉션을 기증한 것은 귀감이 될 수 있다.

공익재단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익재단을 활용한 편법 승계 사례가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됐다. 공익재단에 기부할 경우 상속세가 없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때문에 공익재단에 기부할 경우 의결권 있는 지분을 5%로 제한한다. 하지만 해외의 경우 공익재단이나 신탁 등을 통해 경영과 소유를 분리하는 제도가 활성화돼 있다.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로 유명한 파타고니아가 대표적이다. 이본 쉬나드 회장은 2022년 4조2000억원 규모의 주식을 비영리단체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상속세를 절감하고 가업을 승계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방법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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