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애 “40년 장수 비결요? 그저 멈추지 않았을 뿐”
  •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17 14:00
  • 호수 1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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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데드맨》으로 스크린 컴백한 베테랑 배우 김희애

베테랑 배우 김희애가 스크린으로 컴백했다. 영화 《데드맨》은 이름값으로 돈을 버는 일명 바지사장계의 에이스가 1000억원 횡령 누명을 쓰고 ‘죽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 후 이름 하나로 얽힌 사람들과 빼앗긴 인생을 되찾기 위해 추적에 나서는 이야기다. 극 중 김희애는 타고난 지략과 강단으로 정치판을 쥐락펴락하는 컨설턴트 ‘심여사’ 역을 맡았다. 뛰어난 언변은 물론, 독보적인 카리스마로 수많은 국회의원을 단숨에 휘어잡는 인물로 조진웅과 호흡을 맞춘다.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며 희열을 느꼈다”는 김희애를 만나 《데드맨》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근황에 대해 들었다.

ⓒ콘텐츠웨이브 제공
ⓒ콘텐츠웨이브 제공

《데드맨》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맡은 ‘심여사’ 캐릭터는 남자배우들이 할 법한 역할이다. 파워풀한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재미있었고 신선했다. 뜬구름 잡는 이미지적인 것이 아닌 철저하게 사전조사를 통해 글을 쓴 게 느껴졌다. 알맹이가 있어서 좋았다.”

김희애라는 배우는 언제나 완벽한 연기 컨디션을 보여준다. 현장에서 연기하는 방식도 궁금하다.

“대본에 충실한 스타일이다. 배우의 취향이나 장기를 드러내는 걸 못한다. 누구나 말의 습관이나 버릇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자제하기 위함도 있다. 그러지 않으면 결국 김희애라는 사람이 보이게 된다. 텍스트에 충실하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저를 만들고 싶다.”

평소 출연한 작품에 대해 모니터를 하는 편인가.

“제가 출연한 작품을 거의 보지 않는다. 가끔 채널을 돌리다가 어쩔 수 없이 보게 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못 보겠더라. 볼 때마다 반성을 한다. 저와 캐릭터 사이가 1부터 10이라면 완전히 제가 버려진 상태에서 연기하고 싶다. 김희애라는 사람이 1도 떠올려지지 않는 연기를 하고 싶다.”

조진웅과 호흡을 맞췄다. 어느 인터뷰에서 둘째 아들과 닮아서 정이 간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가족이 그렇다. 친근하지만 매일 예쁘지 않다. 아들이 말 안 들을 때는 등짝을 때리기도 하는데, 둘째가 곰돌이 스타일이라 밉지는 않다. 조진웅씨도 비슷하다. 제가 촬영장에서 연기에 집중하느라 배우들과 아주 가깝게 지내는 편이 아니다. 조진웅씨와 많이 붙는 장면도 없어 아주 친해지지도 않았는데, 아무리 잘못을 해도 ‘씨익’ 웃으면 모든 게 용서될 것 같은 매력이 있더라. 친근하기도 하지만 수줍은 모습도 있더라. 그런 모습이 저희 둘째 아들과 비슷하더라. 곰돌이같이 친근한 매력이 있다(웃음).”

말 나온 김에, 두 아들은 엄마가 출연한 작품을 자주 보는 편인가.

“관심조차 없는 것 같고, 얘기도 안 한다(웃음). 관심 있게 보고 있으면 오히려 제가 위축될 것 같다. 언젠가 제가 ‘엄마가 이런 역할을 하는데, 좀 그렇지 않아?’ 하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그게 왜?’ ‘엄마는 연기자인데 왜 그런 걸 신경 써?’ 하더라. 제가 촌스러워서인지 요즘 친구들은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 각자의 삶이라는 개념이 강한 것 같다. 대학원에 다니는 아들도 있는데 제 눈에는 아직 어려 보인다.”

하준원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나.

“대본을 참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 면에서 감독님이 참 겸손한 것 같다. 연출도 잘하는데 글도 참 잘 쓰니까, 그 정도면 ‘내가 난데’ 하는 건방을 떨거나 ‘내가 예술 좀 하는데’ 할 법도 한데 전혀 그런 모습이 없었다. 전 그저 한낱 중년 배우일 뿐인데 아주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대해줘서 인상이 깊었다. 작품에서도 그 선한 마음이 우직하게 보여서 좋았다.”

천하의 김희애가 그저 중년 배우라니(웃음).

“잘 모르겠다. 물론 마음 한구석에 저에 대한 자신감 혹은 자존감이 없지는 않을 테지만 아시다시피 요즘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너무 많다. 나는 과연 저 정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가 많이 생긴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들었다.

“삶 자체가 단조롭다. 새벽 6시 즈음 일어나서 자전거 타며 EBS라디오 채널을 들으며 영어 공부를 하는 루틴이다. ‘라디오’라는 매체는 시간에 구해받지 않고 교재만 있으면 어디서든 좋은 강의를 들을 수 있다. 더구나 EBS 선생님들이 아주 훌륭하다(웃음). 그렇다고 제가 실력이 출중하지는 않다.”

수년 전 인터뷰에서 여배우들이 영화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적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은 어떤가.

“당시만 해도 남자배우들 위주의 작품이 많았다. 할 수 있다면 남장을 하고서라도 출연하고 싶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당시에 비하면 여자배우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아지긴 했다. 이번에 제가 맡은 심여사 캐릭터도 아마 예전 같으면 남자배우가 했을 것이다. 정치판을 쥐락펴락하는 캐릭터이지 않나. 그래서 이 캐릭터가 반가웠다.”

1983년 영화 《스무 해 첫째 날》로 데뷔했다. 어느덧 데뷔 40년이 지났다.

“저도 이 일을 이렇게 오래 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20대 때는 사람들에게 치이는 게 힘들어서 일을 그만두고 싶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광고모델을 하다 보니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조금은 음지에서 일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좋지 않았다. 한데 언젠가부터 일을 하면 할수록 내가 운이 참 좋았다는 걸 느낀다. 배우는 멈추지만 않으면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어떤 직업이든 허들이 있지만 그때그때 잘 넘어가면 오래 할 수 있더라. 오래 하는 게 강한 것이다. 그래서 커리어를 멈추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50대 여배우 중 거의 유일하게 영화 작업을 많이 하고 있는 배우다. 물론 지상파, OTT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비결이 뭔가.

“저도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허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심플하게 생각하면서 과정을 넘겼고, 여기까지 오게 됐다. 오늘 행복하게 잘 살았네 하며,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아간다.”

멈추지 않을 수 있었던 배경도 궁금하다.

“말 그대로 멈추지 않아서다. 실패도 다 과정이다. 그저 멈추지 않아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 같다.”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비결이 궁금하다.

“여배우만 아니라 남자들도 뷰티에 관심이 많은 시대다. 하물며 저는 왜 없겠나. 저도 예쁘고 멋있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하는 절 보면 ‘나이가 몇인데, 철 좀 들어라’라고 하기도 한다(웃음). 나이에 연연하다 보면 저만 괴롭고 불행하더라. 가진 것을 귀하게 생각 안 하고 못 갖는 걸 원하면 어쩌겠나. 연륜이라는 게 생겨서인지 내가 가진 걸 귀하게 생각하고 즐기자는 마인드다. 외모에 대해서도 편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데드맨》을 한 줄로 설명해 준다면.

“‘바지사장’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가족과 함께 보기에 더없이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너무 긴가? 제가 말 하는 재주가 없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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