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가습기 잘못 쓰면 ‘미세먼지·세균 배출기’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4.02.18 11:00
  • 호수 1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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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자주 갈고 3일마다 청소해야…”수돗물보다 정수기 물 사용이 이롭다”

겨울철 또는 봄철에 천식과 기관지염 등 호흡기질환에 걸리거나, 각막이 손상되거나, 주름이 늘어나거나, 감기에 잘 걸리거나, 오래 자도 개운치 않거나, 코피가 자주 나는 증상을 경험한다면 실내가 건조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겨울철에는 밀폐되고 난방을 하는 탓에 건조한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다. 습도가 40% 이하로 떨어지면 면역기능도 약해져 각종 질병에 걸리기 쉽다. 특히 호흡기질환이나 피부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건조한 공기는 증상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숨 쉬기가 편한 습도는 40~60%다. 이는 바이러스 생존율이 가장 떨어지는 습도 범위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정도 습도의 공기로 숨을 쉬면 코점막을 거치면서 더 축축한 공기가 돼 폐로 이동한다. 그래서 감기에도 덜 걸리고 잠도 쾌적하게 잘 수 있다. 알레르기나 천식 증상도 줄어든다.

ⓒ시사저널 임준선

플라스틱보다 스테인리스 수조가 유리해

이와 같은 이유로 겨울철과 봄철에 가습기를 사용하는 가정이 많다. 가습기는 물을 잘게 쪼개 배출함으로써 실내 습도를 올리는 데 최적화된 제품이다. 건강 유지를 위해 사용한다는 점에서 가습기는 다른 전기제품과 결이 다르다. 항상 물을 사용하는 기기이니만큼 세균·미세먼지·곰팡이 번식에 취약하다. 따라서 가습기를 잘 관리하지 않으면 세균이나 미세먼지를 내뿜는 배출기가 될 수 있다. 건강을 위해 사용하는 가습기가 세균 배출기로 둔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환경보호청(EPA)과 한국의 환경청은 가습기 사용 시즌마다 그 사용법과 관리법을 강조한다.

가습기가 필요하다면 자신에게 맞는 가습기를 골라야 한다. 가습기도 가습 방식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습기는 초음파식·자연기화식·가열식·복합식이 일반적이다. 가장 흔한 것이 초음파 가습기인데, 초음파 진동으로 물을 잘게 쪼개 배출하므로 마치 짙은 안개가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가습량이 풍부하고 가격이 싸며 전력 소모도 적다. 그러나 가습 범위가 좁아 오래 틀어놓으면 주변과 바닥이 축축해지는 단점도 있다. 가습기가 없던 시절, 젖은 빨래를 실내에 걸어둬 가습 효과를 기대했다. 이런 원리로 고안된 것이 자연기화식 가습기다. 물에 젖은 필터에 공기를 통과시켜 습도를 높인다. 물 입자가 작아서 멀리 확산하므로 가습 범위가 넓고 전력 소모도 적다. 대신 가격이 비싸고 가습량도 적다. 특히 필터가 항상 축축해 세균 번식에 취약하다는 단점도 있다. 

세균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만든 것이 가열식 가습기다. 물을 끓여 발생한 수증기로 실내 습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세균 번식 우려가 적고 물 입자가 작아 가습 범위도 넓다. 그러나 물을 끓이기 때문에 전력 소모가 크고 화상 위험도 있어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에서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초음파식과 가열식을 결합한 복합식 가습기도 있다. 끓인 물을 초음파 진동으로 잘게 쪼갠 후 배출한다. 세균 번식 우려가 적고 가습 범위가 넓다. 그렇지만 가격이 비싸고 전력 소모도 많은 것은 단점이다. 

이처럼 가습기는 그 종류가 다양하다. 그러나 수조(물탱크)를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본체와 수조 등 여러 부품을 분리해 세척할 수 있는 제품이 좋다. 수조의 재질도 플라스틱보다는 스테인리스를 택하는 것이 이롭다. 습도계가 있고, 분무량을 조절할 수 있는 제품이 편리하다. 자외선(UV) 살균 기능을 갖춘 가습기도 있는데, 가습기 내부의 플라스틱이 자외선으로 인해 분해되면서 환경호르몬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피하는 편이 안전하다.


가급적 정수기 물이나 생수 사용하는 게 좋아

가습기는 설치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가습기 주변에 물건을 두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변 물건이 습기를 빨아들이면서 곰팡이나 세균의 번식처가 될 수 있다. 벽에서 30cm 이상 떨어지고 바닥에서 1m 이상 높은 곳에 설치해야 커튼·책장·바닥이 눅눅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또 유리창과도 일정 거리를 두지 않으면 수증기로 인해 유리에 결로가 발생할 수 있다. 공기청정기는 가습기와 멀리 두고, 작동도 서로 번갈아 하는 편이 좋다. 공기청정기를 틀어두면 가습기에서 뿜어져 나온 물 입자가 공기청정기 필터로 빨려들어가 세균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 또 물 입자를 미세먼지로 인식해 실내 공기가 나쁘다고 표시한다. 

설치를 마친 가습기에 물을 넣어야 하는데 어떤 물이 좋을까. 일반적으로 수돗물을 흔히 사용하지만 지하수, 정수기 물, 생수를 두고 고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아직 가습기를 사용할 때 어떤 물이 가장 적합한지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된 바는 없다. 그래도 지하수는 가습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미네랄 함량이 높아 가습기 내부에 미네랄이 쌓이면 가습기 구동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미네랄은 수돗물에도 있다. 칼슘·나트륨·칼륨·철 같은 미네랄 외에도 세균 증식을 억제할 목적으로 첨가한 염소도 있다. 그 양이 매우 적어 마셔도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코로 흡입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미네랄과 염소를 흡입하면 건강에 문제가 생길까. 관련 연구가 많지 않지만, 일본과 미국의 연구 결과를 참고할 수 있다. 일본 도쿄대 연구팀은 2013년 수돗물 속 입자가 쥐의 폐에 염증이나 조직 손상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EPA도 초음파 가습기에 수돗물을 쓰는 것이 건강에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장기간 미네랄 입자를 흡입한 후의 결과를 명확히 모르는 만큼 가습기를 장기간 사용할 때는 정수기 물이나 생수를 선택하는 편이 낫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는 “가습기에 어떤 물을 사용할지는 명확하다. 미국 EPA도 밝힌 것처럼 지하수나 수돗물보다 정수기 물 또는 생수가 낫다. 지하수와 수돗물의 미네랄과 염소가 특별한 건강상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 그렇다고 흡입한 그 입자가 폐포에 쌓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정수기 물이나 생수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정수기 물이나 생수에도 미네랄이 전혀 없지 않으나 수돗물보다는 적다”고 설명했다. 

일반인은 미네랄을 걱정하지만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은 세균이다. 이런 우려에서 등장한 제품이 가습기 살균제 또는 가습기 세정제다. 그러나 2011년 불거진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밝혀진 바와 같이 가습기에 살균제나 세정제를 넣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좋은 향기를 내기 위해 가습기 수조에 방향제나 아로마 오일을 넣기도 하는데, 향기는 좋을지 몰라도 호흡기에는 좋지 않다. 우리 호흡기는 물 입자뿐만 아니라 모든 입자의 자극을 받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수기 물처럼 깨끗한 물을 사용해도 가습기 내부는 늘 축축하고 어둡고 따뜻해 곰팡이나 세균이 증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이런 가습기를 사용하면 곰팡이나 세균이 물방울과 함께 공기 중으로 배출된다. 한국소비자원 2005년 조사에서, 청소한 지 3일이 지났거나 2일 이상 지난 물이 있는 가습기에서는 물 1cc당 10만 마리 이상의 세균이 검출됐다. 그래서 가습기 제조사는 정수기 물이나 생수보다 세균 증식을 억제하는 염소가 있는 수돗물 사용을 권장한다.


방향제나 아로마 오일 등 넣으선 안 돼

가습기에서 세균이나 곰팡이가 배출돼도 그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우리 면역체계가 어느 정도는 방어한다. 그러나 아이, 알레르기나 천식 환자, 노인 등 면역이 약한 사람에게서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가습기는 그 어떤 가전제품보다 관리가 중요하다. 사실 가습기 관리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수조에 물이 오래 고여있는 상태가 좋지 않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수조에 물을 가득 담지 말고 조금씩 담아 사용하면서 번거롭더라도 자주 갈아주는 편이 바람직하다. 

물을 자주 갈아도 청소를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 미국 EPA가 권고하는 가습기 청소 주기는 3일에 한 번씩이다. 특히 수조는 식초나 구연산을 희석한 물로 청소하면 되는데, 중요한 것은 잔여물이 없도록 여러 번 헹구는 과정이다. 더 중요한 것은 완전히 말리는 과정이다. 어차피 물을 넣을 것이라고 생각해 건조 과정을 생략하면 세균이나 곰팡이를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다. 가습기를 청소하기 전에 손을 먼저 씻으라는 한국소비자원의 권고도 혹시 모를 세균과 곰팡이를 조금이라도 차단하기 위함이다. 가습기를 청소할 때 사용한 도구도 잘 세척할 필요가 있다. 

이덕환 명예교수는 “아파트와 사무실 대부분은 시멘트 건물이다. 시멘트는 흡습성이 있어 실내가 건조하다. 게다가 밀폐가 잘되고 난방을 하고 환기도 하지 않으니 실내 공기는 더 건조하다. 따라서 습도 유지를 위해서는 환기가 최우선이다. 만일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가습기가 필요하다면 무엇보다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건강을 위해 사용한 가습기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물을 많이 담아둘수록 공기 중 세균이 물에 들어가 증식할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물을 조금씩 자주 갈아주면서 사용하는 편이 이롭다. 청소는 매일 할 필요는 없지만 2~3일마다 해줘야 세균 번식을 억제할 수 있다. 또 깨끗한 물 외에 절대 아무것도 넣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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