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춘객 유혹하는 도심의 ’매향‘…‘매화 1번지’ 전남 순천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4.02.19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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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에 내려앉은 봄] “‘매우(梅雨)’에 매화꽃 떨어질라”…매화 향기에 젖은 탐매객
“언제쯤 오나 했는데”…어느새 순천 교수댁 정원·매산등·교회에 찾아온 봄 전령사
2월 17일 오후 전남 순천 매곡동 김준선 전 순천대 교수의 ‘홍매가헌(紅梅佳軒)’에 핀 홍매와 백매 풍경 ⓒ시사저널 정성환
2월 17일 오후 전남 순천 매곡동 김준선 전 순천대 교수의 ‘홍매가헌(紅梅佳軒)’에 핀 홍매와 백매 풍경 ⓒ시사저널 정성환

남도 봄의 시작을 알리는 매화는 깊은 산사(山寺)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남 순천의 도심에서도 매화를 즐길 수 있다. 17일 오후, 원도심 매곡동 골목의 오래된 주택에 홍매화 두 그루가 의연하게 서 있다. 등처럼 붉은 꽃을 주렁주렁 단 매화나무가 두 팔 벌려 반갑게 맞아 준다. 선홍빛을 띤 꽃잎에는 봄이 내려앉아 있다. 홍매화(紅梅花)는 ‘눈 속에서도 피는 꽃’이라 해서 설중매(雪中梅)라고도 한다. 몸체가 훤칠하다. 가지도 두 팔을 양쪽으로 벌려 멋스럽다. 

이 집은 ‘홍매가헌(紅梅佳軒)’이란 현판이 달려 있다. ‘붉은 매화가 아름다운 집’이란 뜻이다. 한글로 새길려다가 글자 수가 너무 많아 네 글자로 줄였다고 한다. 몇 해 전 순천대에서 정년 퇴직한 김준선(산림자원학과) 교수 집이다. 2020년 순천 서예가 남경 김현선 선생이 글을 쓰고, 여수출신 철우 박금원(각자장 이수자 국가무형문화재 제16호) 선생이 목판에 새겼다.

김 전 교수가 3대를 이어 살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평생을 이곳에서 살면서 마당을 일궜다. 그러니 정원의 역사도 집만큼이나 오래됐다. 김 전 교수는 처음 순천대에 부임했을 때 시내에서 아파트 생활을 했지만, 그 역시 고향집이 그리워 탐매마을로 돌아왔다. 지어진 지 100년이 훌쩍 넘은 유서 깊은 집은 평범했던 동네를 탐매마을로 변모시킨 주인공이다.

홍매가헌의 매화나무 두 그루는 해마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만개(滿開)한다. 보통 매년 12월 말부터 피기 시작해 1월 중에는 설중매를 볼 수 있다. 나무의 나이도 80살이 넘었다. 50여 년 전 김 교수의 부친이 수령 30년 된 매실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남도 봄의 시작을 알리는 매화는 깊은 산사(山寺)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남 순천의 도심에서도 매화를 즐길 수 있다. 17일 오후, 원도심 매곡동 골목의 김준선 전 순천대 교수 집에 홍매화 두 그루가 만개했다. 이 집은 ‘홍매가헌(紅梅佳軒)’이란 현판이 달려 있다. ‘붉은 매화가 아름다운 집’이란 뜻이다. ⓒ시사저널 정성환
남도 봄의 시작을 알리는 매화는 깊은 산사(山寺)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남 순천의 도심에서도 매화를 즐길 수 있다. 17일 오후, 원도심 매곡동 골목의 김준선 전 순천대 교수 집에 홍매화 두 그루가 만개했다. 이 집은 ‘홍매가헌(紅梅佳軒)’이란 현판이 달려 있다. ‘붉은 매화가 아름다운 집’이란 뜻이다. ⓒ시사저널 정성환

 

2월 17일 오후, 순천 원도심 매곡동 골목의 ‘홍매가헌’(붉은 매화가 아름다운 집)에서 집 주인 김준선 전 순천대 교수가 작명 배경 등을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2월 17일 오후, 순천 원도심 매곡동 골목의 ‘홍매가헌’(붉은 매화가 아름다운 집)에서 집 주인 김준선 전 순천대 교수가 작명 배경 등을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순천 매화의 아이콘…‘홍매가헌(紅梅佳軒)’

이 집 정원에는 홍매화만 있는 게 아니다. 등이 휘어져 마치 구름 탄 용 형세를 가진 백매화 운룡매도 자태를 뽐낸다. 5년 전, 지인으로부터 생일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예년 같으면 홍매가 꽃잎을 떨구기 시작하면 백매가 이어 핀다. 그러나 올해는 지난해 말에 닥친 추위로 홍매의 개화 시기가 두 달 가량 늦춰지면서 동시에 만개했다. 김 전 교수는 “홍백의 조화, 우리 삶도 조화롭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매가헌은 순천시 개방정원으로 지정돼 있다. 개인의 집이지만, 마당만큼은 누구나 드나들 수 있도록 출입문을 활짝 열어둔다. ‘매화를 혼자서 즐기는 것이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정원을 개방하고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정원에는 70여종이 넘는 각종 수목과 화초가 자라고 있다. 때마침 마당에 수국 씨앗을 정식하고 있던 김 전 교수는 “1월의 홍매가헌을 6월 수국가헌으로 만들 예정이다”며 “현재 수국 품종만 지난 202년 경남 하동에서 데려 온 애를 포함해 25종에 달한다”고 말했다.    

 

탐매객 북적…매곡동 ‘홍매화 골목’

홍매가헌 매화는 동네 매화의 아이콘이자 자부심이다. 비록 이 집 매화가 모순(어미나무)은 아니지만 탐매마을 태동의 모티브가 되면서다. 김 전 교수댁 정원의 홍매나무가 알려지면서 매곡동 일대에 매화나무가 하나둘 심어졌다. 매곡동 주민자치위원회는 2006년부터 마을가꾸기 사업으로 홍매화 심기 운동을 펴 간선도로변 등에 600주를 심었다.

2월 17일 토요일 오후, 화창한 날씨 속에 순천 원도심 매곡동 ‘탐매마을’ 매화거리를 찾은 상춘객들이 만개한 홍매화 감상을 즐겼다. ⓒ시사저널 정성환
2월 17일 토요일 오후, 화창한 날씨 속에 순천 원도심 매곡동 ‘탐매마을’ 매화거리를 찾은 상춘객들이 만개한 홍매화 감상을 즐겼다. ⓒ시사저널 정성환

이후 매곡동은 ‘탐매(探梅) 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전국적 명소가 됐다. 홍매가헌 두 그루 홍매화에서 시작한 꽃불이 동네에 심은 매화나무로 옮겨 붙게 된 것이다. 마을 곳곳에는 홍매화가 피고, 골목마다 미술 마을 프로젝트로 그리거나 설치한 매화 그림, 조형물이 들어섰다. 소박한 골목 풍경이 정겹다. 

이 집 정원과 맞닿아 있는 매곡동 탐매마을 도로 양 옆에는 매화나무가 줄을 잇는다. 매화를 주제로 한 타일벽화도 만들어져 있다. 집마다 걸린 문패에도, 장독대에도, 우편함과 헌옷수거함에도 매화가 만발한다. 홍매화 거리는 순천대학교 후문까지 이어진다. 산사의 매화도 아직 절반밖에 피지 않았는데 탐매마을 홍매화는 이미 만개해 마을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이날 주말을 맞아 가족과 연인 등 상춘객들은 매향에 흠뻑 빠졌다. 

‘순천 매화 1번지’ 매곡동은 조선 중기 학자인 배숙(1516~1589)이 이곳에 홍매를 심고 초당을 지어 그 이름을 ‘매곡당’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매곡동은 ‘매산등’으로도 불렸다.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등성이라는 의미다. 매월 5일, 10일 장이 서는 웃장 맞은편에 있다.

이곳이 유명한 것은 다른 곳보다 빨리 흐드러진 매화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탐매마을을 비롯한 ‘매산등(登)’ 일대는 1200그루가 꽃을 피우는데, 광양 매화마을보다 대개 일주일가량 빨리 핀다고 한다. 김 전 교수는 순천 지역 날씨가 영상 15도를 웃돌아 이번 주말 쯤이면 만개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다만, 주중에 예보된 비가 변수다. ‘매우(梅雨)’에 매화꽃이 우수수 떨어져 나갈까봐 걱정이란다.    


매혹적인 숨은 명소…순천복음교회 ‘매화정원’

17일 오후, 순천 왕지동 복음교회 매화정원 흑매화 ⓒ시사저널 정성환
17일 오후, 순천 왕지동 복음교회 매화정원의 흑매화 모습 ⓒ시사저널 정성환

순천에는 숨은 매화 명소가 있다. 신흥 택지개발지인 왕지동에 2012년 새로 지어진 순천복음교회의 널찍한 앞 마당에 조성된 매화정원이다. 매화정원은 2년 전 이 교회를 은퇴한 양민정 목사가 30년에 걸쳐 조성했다고 한다. 교회 본당 가는 길에 연못과 개울을 놓고 정원을 만들었는데 그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교회 정원에는 동백과 소나무, 산다화 등 300여 그루의 나무가 있다. 그중 절반이 매화나무다. 이날 찾은 매화정원은 청매, 홍매, 백매는 물론 겹홍매, 능수매까지 무려 15종이 넘는 매화가 제각각 아름다움을 뽐냈다. 매화의 종류가 많다 보니 이제 겨우 움이 튼 것도 있고 벌써 만개해 화사해진 것도 있다. 

매화나무에는 방문객들이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홍매, 백매, 청매, 오색매 등 명패를 붙여 놓아 조성자의 배려가 물씬 묻어났다. 매화정원에는 수령 100년이 넘은 고매(古梅)가 수두룩하다. 고매만 38그루나 된다.

강원 영월에서 가져왔다는 ‘복음매’와 전남 영암에서 데려왔다는 백매, 장흥에서 가져온 홍매는 모두 수령이 200~300년은 족히 넘는 늙은 매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꽃받침이 초록색을 띤 청매다. 등이 굽은 흑매는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하다. 흑매는 홑겹의 붉은 꽃이 너무 붉어서 검게 보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제철 매화 구경 놓쳤다면…산골 향매실 마을 

17일 오후, 순천 월등면 계월리 향매실 마을 전경 ⓒ시사저널 정성환
17일 오후, 순천 월등면 계월리 향매실마을 전경 ⓒ시사저널 정성환

도심을 벗어나면 또 다른 숨은 매화 명소가 있다. 대표적인 곳이 순천 월등면 계월리 향매실 마을 일대다. 한적한 산골마을로 순천 도심 보다 매화꽃이 늦게 피면서 매화꽃 잔치의 바통을 이어받는다. 마을이 기대고 있는 바람산과 문유산 자락을 따라 매화밭이 지천이다. 지금은 매화밭에선 매실나무 전지작업 등이 한창이다. 매화나무 마다 주렁주렁 달려 있는 1.5리터 페트병이 흥미롭다. 병 안에 나방을 유도하기 위한 당분이 담겼다고 한다. 

향매실 마을은 매실을 키우는 이웃사촌 상동마을, 이문마을, 외동, 내동 마을과 이어져 있다. 향매실 마을은 50년 전에 처음 매화나무를 심기 시작해서 현재 약 25만평에 이르는 드넓은 들판이 매화나무로 가득 차 있다. 마을 단위로는 전국 최대 매실군락지다. 1960년대에 이종택씨가 일본에서 매실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일본 개량종이 많던 마을에 지금은 토종 매화나무가 개발돼 함께 자라고 있다.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80여 가구가 논농사 없이 매실 농사를 짓고 있다. 

순천 월등면 계월리 향매실 마을, 매화밭에서 전지작업 등이 한창이다. 매화나무 마다 주렁주렁 달려 있는 플라스틱병이 흥미롭다. ⓒ시사저널 정성환
순천 월등면 계월리 향매실 마을. 지금 매화밭에선 전지작업 등이 한창이다. 매실나무 마다 페트병이 주렁주렁 달렸다. ⓒ시사저널 정성환

산자락에 있어 다른 지역보다 개화시기가 늦다. 섬진강 매화가 시들 무렵부터 피기 시작해 꽃망울을 터뜨리면 산비탈에 흰 매화꽃이 운해처럼 둥실 떠다니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이곳은 잘 알려지지 않아 상춘객이 많지 않다. 워낙 규모가 넓어 방문객과 마주치지 않아 호젓하게 즐길 수 있다. 마을의 지세가 등잔 같기도 하고 둥근 달을 닮아 ‘월등(月燈)이라고도 한다. 숙박은 계월 한옥마을에서 가능하다. 2010년 전남도가 지정한 한옥행복마을이다. 

매실향 마을의  한 주민은 “매년 3월 중순이면 매화꽃이 만개해 마을 전체가 꽃 사태가 나는 장관을 이룬다”며 “매화구경을 놓쳤다면 섬진강 매화가 시들 무렵인 3월 중하순부터 피기 시작하니 고향 마을을 둘러보듯 늦은 봄나들이에 딱 좋은 곳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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