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긴장] 남·북·미 딜레마에 꼬여버린 ‘한반도 평화’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06.16 10:00
  • 호수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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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무력도발 가능성 커
南, K방역으로 돌파구 모색

‘네이버 사전’은 ‘삐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전단, 광고, 포스터 등을 가리키는 영어 Bill에서 나온 말.’ 북한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지금 이 삐라가 문제다.

6월4일 북한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담화 형식을 빌려 “5월31일 ‘탈북자’라는 것들이 수십만 장의 반공화국 ‘삐라’를 우리 측(북한) 지역으로 날려 보내는 망나니짓을 벌려 놓은 데 대한 (남한 언론의) 보도를 보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날 김 제1부부장의 명의를 통해 북한은 탈북단체들의 이러한 행위가 4·27 판문점선언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판문점선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사인한 것이기에 북한에선 그 어떤 법보다 우위에 있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묵인하고 있기에 이러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본다. 물론 이와 관련해선 남한 내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린다. 탈북자 출신인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은 “북한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게 장기적으로 남북관계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반면 손기웅 전 통일연구원장은 “남북 간 합의도 중요하지만 북한 주민을 위한 자유와 인권, 복지는 더 중요한 가치이기에 정부가 못 한다면 민간단체라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사저널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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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력갱생·정면돌파 강조한 北 “기다릴 시간 없다”

‘삐라’는 남북 갈등 국면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 단골메뉴다. 시계 바늘을 6년 전으로 돌려보자. 데자뷔라고 할 만큼 당시 상황은 지금과 똑같았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 맞춰 북한은 대규모 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했지만 얼마 못 가 대북 전단 살포를 빌미로 강도 높은 물리적 타격을 언급했고, 실제로 그해 10월 자유북한운동연합이 경기도 연천에서 날린 대형 풍선에 고사총을 쏴 긴장감을 높였다. 서방언론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흘러나온 것도 최근 상황과 비슷했다. 이후 한반도는 2018년 2월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하기 전까지 상당기간 냉각기를 가져야 했다.

정부가 이번 대북 전단 살포 사태를 걱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경우에 따라선 무력시위와 같은 군사도발로 이어질 분위기다. 전옥현 전 국정원 1차장은 “작년 연말부터 북한 수뇌부가 강경파로 교체되면서 무력도발의 위험은 더욱 커졌다”면서 “김여정 담화에서 미국을 언급하지 않고 문재인 정부만을 비난하고 나선 것을 볼 때 대륙간탄도마사일(ICBM) 발사보다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이나 비무장지대(DMZ)에서 무력도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5월24일 열린 당중앙군사위에서 핵 억제력 강화가 논의된 것이나 군부 강경파가 진급한 것으로 볼 때 지금의 반응은 전혀 예상 밖 일은 아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태영호·지성호 의원 등이 국회에 들어간 것도 북한 지도부로선 불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뒤를 이어 나온 북한의 조치는 김여정 제1부부장이 공언한 것을 그대로 따르는 모습이다. 6월5일 통일전선부는 “김여정 제1부부장이 대남사업 실무집행 검토 지시를 내렸다”면서 첫 조치로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폐쇄를 거론했다. 그러고는 4일 뒤 공언한 대로 남북 간 통신연락선을 모두 끊었다.

단순히 체제 비방 때문에 그런 것일까.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대북 전단 살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1차례, 올해만 3번째 날려 보냈다. 이 때문에 북한의 이번 반응을 단순히 체제 비방 때문으로만 해석하기는 무리가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북한의 반응을 코로나19와 연결 짓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탈북자는 “일부 의견이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전단에 묻혀 북으로 보내자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남한에)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정권에 코로나19는 큰 위협거리다. 일본에 사무실을 둔 대북 매체 ‘아시아프레스’는 3월4일 중국 지린(吉林)성 관계자의 말을 빌려 “북한이 압록강에서 중국인들이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오물을 투기할 경우 경고 없이 사격하겠다는 뜻을 중국에 알려왔다”고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극히 이례적이다. 그만큼 코로나19를 바라보는 북한 수뇌부의 고민이 심상치 않다는 뜻이다.

일본 아사히신문도 세계보건기구(WHO) 평양 주재 사무소 관계자의 말을 통해 “북한 당국이 4월 초순까지 전국 2만5000명을 격리 조치했다”고 보도했다. 현재까지 북한은 자국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힘들다. 김홍걸 민주당 의원은 “최근 북한이 대남 비난 행사를 자주 갖는 것은 지금의 경제위기 책임을 코로나19가 아닌 남한과 미국 등 외부로 돌리려는 내부 단속용”이라고 분석했다.

5월31일 자유북한운동연합이 경기도 김포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5월31일 자유북한운동연합이 경기도 김포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美, 대선 앞두고 북핵 해법·시기 달라

그렇다면 왜 지금 이러한 강경기조가 터져 나온 것일까. 지난해 2월 하노이회담에서 북·미 간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은 서로 셈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지금의 북·미, 남북관계가 장기간 교착상태를 이어가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북한은 미국, 남한과의 선제적 대화를 통해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에 나섰다고 판단한다. 그렇기에 문재인 정부를 향한 아쉬움의 목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강도를 더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과 직접 대화에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과의 대화를 일단 11월 대선 이후로 미룬 상태다. 미국 정부와의 빅딜을 통해 유엔 제재 해제를 기대했던 북한 정권으로선 여러모로 아쉬움이 크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 정가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쉽지 않다. 만약 민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게 되면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를 채택한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정책이 재현될 수 있다. 오바마 정부는 집권 8년 동안 한반도 의제를 백악관 회의 테이블에 한 번도 올려놓은 적이 없다. 알렉산더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대사는 5월20일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적어도 미 대선이 끝날 때까지 미국이 대화로 나오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우방인 중국을 활용하는 것도 최근 미·중 간 무역갈등을 감안할 때 쉽지 않다.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6월7일 남북관계가 북·미 관계 개선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 것을 비난했다. 반대로 말하면 “미국 눈치 보지 말고 주도적으로 나서라”는 의미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우리가 미국 등 뒤에 서서 남북관계 개선에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에 대해 북한이 화가 단단히 났다”고 말했다. 5·24 조치는 대통령 행정명령이기 때문에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 북한 입장에선 “5·24 조치조차 풀지 못한 문재인 정부가 뭘 할 수 있겠느냐”며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형국이다.

트럼프, 대선 앞두고 대북 관심 식어

우리도 딜레마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하노이회담 이후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관심이 식으면서 남북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신년사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전제 조건’이나 ‘대가’ 없이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음에도 좀 더 적극적으로 실행에 나서지 못한 것은 문재인 정부로선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현실적으로 4월 총선 이전까지는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할 만한 일체의 행동을 하기 힘들었던 셈이다.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압도적인 의석수를 확보해 국정 장악력은 강해졌지만, 이제는 연초부터 기다려온 북한이 ‘더는 기다릴 시간이 없다’며 반발하는 형국이다. 한·미 동맹뿐만 아니라 유엔 경제제재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 단독으로 정책을 펴기는 힘들다. 더군다나 대선을 5개월가량 앞둔 트럼프 정부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재선에 집중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는 최상의 외교적 성과물을 북한이 아닌 중국에서 찾고 있다. 패권에 정면 도전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현재로선 트럼프 외교정책의 최우선 과제다. ICBM 발사, 핵실험 재개처럼 미국을 상대로 한 무력시위만 벌이지 않는다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은 재선 이후에나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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