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내부 문제 파고든 《D.P.》의 경쟁력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9.09 10:00
  • 호수 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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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지 못한 자’들의 재림...원작은 김보통 작가의 웹툰 《D.P 개의 날》

군인이 등장하는 드라마와 영화는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군대라는 조직 자체에 주목한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드물었다. 그것이 대중적인 재미를 담보할 만한 소재가 아닐 뿐 아니라, 성공 사례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편견을 넘어서며 주목받았던 이가 윤종빈 감독이다. 갓 제대한 후 군에서 느낀 것들을 대학 졸업작품으로 녹인 윤종빈의 《용서받지 못한 자》(2005)는 대한민국 남자들이 애써 지우고 살아가던 기억 너머의 진실들을 본능적으로 강제 소환하는 어퍼컷이었다. 영화계의 환호가 뒤따랐고, 군의 불편한 기색이 감지됐고, 영화를 본 군필자들은 한숨과 함께 소주를 들이켰다.

웹툰 《D.P 개의 날》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작품 《D.P.》는 이 《용서받지 못한 자》들을 다시 깨워서 소환해 내고야 마는 수작이다. 메가폰을 잡은 한준희 감독은 시스템에 저당 잡힌 이 땅 위 젊은이들의 선택을 밀도 있게 스케치한다. 메시지는 팽팽하게 날이 서 있고, 유머 구사는 수준급이며, 캐릭터 면면도 살아있다.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 15년. 군 내부 문제를 파고든 작품이 대중의 공감을 사며 호평받는 현실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한번 재생 버튼을 누르면 쉽게 멈추기 힘든 드라마임은 분명하다.

ⓒ넷플릭스
ⓒ넷플릭스

폭력의 대물림…군대는 왜 변하지 못하나

DP는 군무이탈체포전담조(Deserter Pursuit)의 약어로, 쉽게 말하면 ‘탈영병 잡는 헌병’이다. ‘더티 플레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복무기간 대부분을 부대 밖에서 보낸다. 사복을 입고 머리를 기르는 건 군인 신분을 감추기 위함. 단체 기합에서 자동 열외라는 점에서 ‘꿈의 보직’으로도 평가받는다. 박범구(김성균) 중사의 눈에 들어 DP조에 뽑힌 안준호(정해인) 이병을 향해 DP 선임 박성우(고경표)가 “너 무슨 빽 있냐?”고 물은 이유다.

물론 ‘빽’있는 자만 하는 일은 아니다. 구청장인 아버지 권력으로 DP에 배정돼 ‘농땡이’ 피우는 박성우 같은 이도 있지만, 안준호처럼 타고난 눈썰미로 발탁되는 DP도 있고, 한호열(구교환) 상병처럼 동물적인 감과 긍정성을 무기로 임무에 특출한 빛을 발하는 DP도 있다. 《D.P.》는 안준호가 한호열과 팀을 이루면서 본격적인 시동을 건다. 2인 1조로 움직이는 DP의 특성 덕에 드라마는 자연스럽게 버디무비와 형사물 분위기를 덤으로 얹는다. 누군가를 쫓는 남자들의 동행은 한국 창작물에서 닳고 닳은 소재이나, 그 대상이 탈영병이라는 점에서 《D.P.》는 차별점을 획득한다.

선택에 따라서는 ‘문제 탈영병을 멋스럽게 잡는 DP의 활약상’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선악 구도는 그동안 많은 한국 드라마들이 안전하게 취해온 문법이니까. ‘탈영병 사연’은 또 어떤가. 신파 얹기에 더없이 좋은 상상의 영역 아닌가. 그러나 《D.P.》는 쉬운 길에 자신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 DP와 탈영병을 통해 드라마가 진짜 주목하는 건, 이들을 밖으로 내몬 폭력적인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알게 모르게 내면화하는 청춘들, 그들이 사회로 나와 만들어갈 한국이라는 조직 그 자체다. 《D.P.》가 군대 영화이나, 군대 영화만은 아닌 이유다.

드라마 곳곳에서 원작 웹툰의 작가이자 각색에도 참여한 김보통 작가의 존재감이 감지된다. DP로 실제 활동한 작가가 자신의 경험과 그 안에서 느낀 부조리들을 과감하게 써내려갈 때 획득되는 사실감 넘치는 디테일은 《D.P.》의 거대한 강점이다. 엄밀히 말해 탈영은 탈영병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과 지인은 물론 여자친구에게도 탈영병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들의 사연을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접하는 DP들에게도 딜레마는 존재한다. 탈영병을 관리해야 하는 상관들에겐 뼈아픈 손가락이자, 눈엣가시일까. 《D.P.》는 인물과 인물 사이의 관계 묘사가 좋고, 세밀하다.

총 6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진 《D.P》에는 회차마다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탈영병이 등장한다. 가혹행위를 참다못해 탈영한 사연도 있지만, 치매로 홀로 남은 할머니를 위해 탈영하거나, 그저 망나니 인생이라 탈영한 사연도 있다. 고른 완성도를 지닌 모든 에피소드가 각자의 임무를 확실히 책임지고 빠진다. 동시에 드라마는 조현철이 연기한 조석봉 일병을 향해 서서히 끓어오른다. 입대 전 ‘간디’라 불릴 정도로 순박했던 청년. 1편에서부터 등장하는 석봉은 회차가 거듭될수록, 더 정확하게 말하면 군 생활이 길어질수록 서서히 안면을 바꾼다. 선임들의 괴롭힘에 “우리는 나중에 (후임에게) 잘해주자” 다짐하던 석봉은 그러나 후임들이 들어올수록 군대의 생리에 저항감을 잃어 가해자가 되고, 그로 인해 다시 피해자가 된다. 여기에 《D.P.》가 그려내는 서늘함이 있다. 폭력은 대물림되고,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고, 새롭게 정립된 권력 구도 안에서 사람의 신념은 변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한두 명도 아니고, 집단으로 이어지는 이 비극적인 순환이. 말단일 땐 무서워서 저항하지 못하고, 고참일 땐 자신이 폭력을 당할 일이 없어서 침묵하는 모두의 방관이.

레진코믹스 웹툰 《D.P 개의 날》ⓒ레진코믹스 웹툰 제공

악몽 유발 극사실주의 드라마?

이 드라마 보기의 완성은 아무래도 ‘정주행’이 아니라, ‘정주행 후 감상 살피기’인 것 같다. 드라마 후기는 자신의 군대 시절을 회고하거나 저주하거나 분노하거나 아파하는 글들로 가득하다. 군대를 다녀온 이들에게 《D.P.》는 징글징글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리얼리티를 체득한 드라마라는 의미일 것이다. 어머니로서, 누나로서 혹은 여자친구로서 사랑하는 사람을 군에 보낸 기억이 있는 이들에게도 군대는 일말의 트라우마가 투영된 공간이다. 느끼는 바가 다를지언정, 없지는 않다.

《D.P.》의 배경은 2014년이다. 육군 제28사단 윤 일병이 선임들의 집단 구타로 사망한 ‘윤 일병 사건’이 사회적인 공분을 일으킨 해다. 윤 일병 사건은 군대 내 가혹 행위의 심각성을 수면 위로 건져 올린 비극이었다. 국방부는 궁지에 몰렸다. 승승장구하던 연예인 병영 체험기 《진짜 사나이》에도 불똥은 튀었다. 군 생활을 미화하는 프로그램을 보며 낄낄거릴 때인가? 프로그램 폐지론이 들끓었다. 이때 국방부 장관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병영문화 개선을 약속했다.

2021년. 윤 일병 사건 이후 군은 정말 나아졌는가. 불과 2개월 사이로 터진 해·공군 여군 부사관 사망 사건은 군대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쉽게 변할 수 없는 곳인가를 여실히 드러냈다. 마침 지난 7월22일, 윤 일병 유족이 가해자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판결에서 법원은 가해자의 배상 책임만 인정할 뿐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묻지 않을 수 없다. 군대 내 폭력이 비단 청년들만의 문제일까. 시스템의 문제는 없는 걸까. “군대에 안 왔으면 탈영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요?”라는 《D.P.》의 대사가 머리에서 쉽게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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