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리그와 점점 멀어져가는 이재영-이다영 자매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0.02 15:00
  • 호수 1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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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이다영, 국내 코트 복귀 위한 시간 벌기와 경기 감각 유지 위해 그리스리그 선택
리그·팀 수준 모두 떨어져…연봉도 국내의 10% 수준 불과

한때는 여자배구 대표팀의 차세대 대들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떠밀리듯이 유럽리그로 향한다. 대우마저 좋지 않다. 스물다섯 쌍둥이 배구 자매 이재영·이다영 선수 얘기다.

국제배구연맹(FIVB)은 9월28일 대한배구협회에 이재영·이다영에 대한 국제이적동의서(ITC) 승인에 대한 입장을 전달했다. 배구협회는 국내 징계 등의 이유를 들어 끝까지 이적동의서를 써줄 수 없다고 맞섰으나, 두 선수의 국제 이적을 막을 명분은 사실상 없다. 국제배구연맹은 직권으로 국제이적동의서 발급을 승인했다. 이재영·이다영 자매는 이제 그리스리그 PAOK 테살로니키 구단 소속 선수로 2021~22 시즌을 소화하게 된다.

2020년 10월21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도드람 2020~2021 V-리그’ 여자부 GS칼텍스와 흥국생명의 경기를 앞두고 흥국생명 이재영(가운데), 이다영(위)이 훈련하고 있다.ⓒ뉴시스

경기 출장 기회도 제한적일 듯

국내 배구선수가 국외 리그에서 뛰는 것이 낯선 모습은 아니다. 한국 배구 역사상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로 평가받는 김연경 또한 비록 단기간(2개월)이지만 중국리그(상하이)에서 이번 시즌을 시작한다. 김연경은 앞서 일본 J리그, 터키리그 등에서도 활약했다. 특히 터키리그에서는 전 세계 남녀 배구선수 통틀어 최고 연봉(17억원 추정)을 받기도 했다.

김연경 외에도 세터 김사니(은퇴)가 아제르바이잔리그(2013~14 시즌)에서 잠깐 뛰었다. 국내 V리그 출범(2005년) 이후 유럽리그로 곧바로 진출한 첫 선수가 됐던 김사니가 당시 받은 연봉은 2억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외 배구계 사정을 잘 아는 A씨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리그는 터키리그보다 한 단계쯤 아래로 보면 된다. 상위 1~2개 팀은 연봉이 꽤 많은 편”이라고 귀띔했다. 양효진 또한 2013년 김사니와 함께 아제르바이잔리그 진출을 고민했으나 현대건설에 잔류하는 쪽을 택했다.

이재영·이다영이 택한 그리스리그는 유럽리그 중에서도 하위급 리그에 속한다. 유럽리그에서는 터키리그와 이탈리아리그가 쌍벽을 이루고 그 밑에 프랑스리그 등이 있다. 유럽리그 랭킹으로 보면 그리스리그(14개 팀)는 37위쯤 된다. 전 세계 여자배구 클럽 랭킹에서 쌍둥이 자매가 몸담았던 흥국생명은 48위(2020~21 시즌 우승팀 GS칼텍스는 29위)인데, PAOK는 197위에 불과하다. 흥국생명의 선수 등록 시도가 여론 악화로 실패한 뒤 국내 리그에 설 자리가 없어진 쌍둥이 자매에게 얼마나 선택지가 없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모 구단 감독은 “이재영·이다영은 국내에서는 톱 플레이어일지 모르지만 외국 무대에서 통할 체격이나 실력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리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쌍둥이 자매가 PAOK에서 받는 연봉은 각각 4만 유로(약 5500만원) 정도다. 지난해 흥국생명과 자유계약(FA)을 하면서 이재영은 6억원(연봉 4억원·인센티브 2억원), 이다영은 4억원(연봉 3억원·인센티브 1억원) 수준의 연봉을 받았다. 실제 지급된 연봉은 이보다 더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즉 쌍둥이 자매는 국내에서 받던 연봉의 10% 정도 금액에 그리스리그로 이적한 셈이다. 2021~22 시즌 V리그 여자부 평균연봉이 1억100만원인 것을 고려하면 이들은 그 절반의 액수만 받고 낯선 땅에서 뛰게 된다. 남녀 배구선수 통틀어 최초로 자동차 광고를 찍을 만큼 인기 가도를 달리던 쌍둥이 배구 자매의 현주소다.

그리스리그에서도 문제는 있다. 그리스리그는 외국인 선수 4명 보유에 3명만 엔트리 등록이 가능하다. 그런데 쌍둥이 자매가 뛸 PAOK에는 V리그 현대건설에서 ‘마야’라는 등록명으로 이다영과 호흡을 맞췄던 스페인 국가대표 출신 밀라그로스 콜라를 비롯해 프랑스 출신 줄리엣 피동이 이미 합류해 있다. 이재영·이다영 영입으로 외국인 선수 4명이 채워지는데, 4명 중 1명은 미등록 상태로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그리스리그에서도 100% 출장이 보장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세터인 이다영의 경우 엔트리 등록이 가능할 수 있으나 다른 외국인 선수들과 포지션이 겹치는 이재영의 경우 등록마저 힘겨울 수 있다. 정규리그가 아닌, 축구처럼 유럽리그 여러 배구클럽이 모두 참가하는 챔피언스리그를 뛸 수도 있으나 그 역시 출장 기회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국내 리그 복귀를 위한 경기 감각 유지를 위해 그리스리그를 택한 입장에서는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

이재영·이다영 자매는 국내 배구계의 슈퍼스타였다. 각각 다른 팀에 속해 있을 때는 여자배구 인기를 쌍끌이했다. 하지만 김연경과 함께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은 뒤 삐거덕댔고, 급기야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이 폭로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쌍둥이 자매는 개인 SNS를 통해 자필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으나 이후 행동이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다. 피해자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급기야 “(21개 세부 폭로 중) 몇몇은 사실이 아니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이래저래 과거 잘못된 행동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모습으로 비치고 있다. 이들의 강경 대응이 알려지면서 배구 팬들은 흥국생명 본사 앞에서 복귀 반대 트럭 시위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학폭 폭로 이후 미흡한 대처로 논란 자초

배구계가 많이 안타까워하는 것도 쌍둥이 자매 측의 사후 대처였다. 배구계 관계자는 “쌍둥이 자매가 자필 사과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가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을 했다면 지금처럼 여론이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 대처를 잘못하고 이후에 사과할 타이밍도 놓치면서 점점 국내 배구와는 멀어지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앞서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이 여자배구 대표팀의 전력 약화를 우려하면서 “이재영·이다영 선수가 충분히 반성한 후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출전했으면 좋겠다”고 밝힌 뒤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도 쌍둥이 자매를 향한 여론의 시선이 여전히 곱지 않음을 방증한다.

쌍둥이 자매는 이제 그리스리그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스 현지 언론은 “PAOK 구단이 한국으로부터 중계권료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고 밝혔으나, 국내 분위기상 그저 PAOK의 ‘희망사항’에 그칠 가능성이 짙다.

스포츠, 그리고 스포츠 선수를 바라보는 시선은 많이 달라졌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보듯 결과보다는 과정에 더 환호하고 실력보다는 인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쌍둥이 자매의 향후 국내 복귀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결자해지 없이는 그들의 배구 미래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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