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한반도] “무관심은 못 참아” 도발 버튼 만지는 김정은
  •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30 11:00
  • 호수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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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보다 경제․미래에 더 방점 찍은 한미 동맹에 불편해진 김정은, ‘한반도 리스크’ 키울 셈법 복잡해져

한미 정상회담을 가장 예의주시한 관객 중 한 사람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다. 평양의 노동당 본부청사 집무실 TV로 실시간 상황을 체크하며 대응책에 부심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5월21일 만남을 지켜보는 그의 셈법은 전례 없이 복잡다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군사·안보 동맹에서 경제동맹까지 확장된 한국과 미국의 외교관계가 기술 및 공급망을 포함한 글로벌 포괄동맹으로 전환되는 장면을 생생하게 목도했기 때문이다.

북핵이나 미사일 등 대북 문제를 주축으로 한 한반도 이슈는 전통적으로 한미 정상회담의 핵심이자 최우선 의제였다. 하지만 이번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은 뭔가 달랐다. 무엇보다 삼성 반도체 공장 방문으로 시작된 일정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대미 투자 단독면담으로 마무리된 것은 중대한 기류 변화를 상징한다. 5월21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첨단 반도체와 친환경 전기차용 배터리, 인공지능, 양자기술, 바이오기술, 자율로봇 등이 키워드로 등장한 것도 마찬가지다. ‘공급망’이란 단어는 정상회담 공동선언에 11번이나 언급됐다.

물론 북한의 핵 개발이나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한 우려와 대응책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다뤄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공동성명은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한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수단으로서의 ‘핵’을 명시했다. 한미 연합훈련의 범위와 규모 확대는 물론 전략자산의 적기 전개에도 합의했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5월22일 오산 공군작전사령부 내 항공우주작전본부(KAOC)를 방문한 것은 대북 경고 성격이 짙다. 유사시 한미 공군의 최고 지휘부가 되는 이곳을 양국 정상이 찾았을 때 대형 스크린에는 실시간으로 추적·포착된 북한 미사일과 이동식발사대(TEL) 영상이 떠있었다. ‘모든 걸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한미 정상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낸 것이다.

북한이 전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를 단행했다고 3월25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조선중앙통신 연합

북핵·미사일, 한반도 이슈에서 벗어날까 긴장

김정은은 즉각적인 ‘강대강’ 정면 충돌은 피하는 쪽을 선택한 것으로 보였다. 바이든 방한 직전에 핵실험이나 미사일 도발을 할 것이란 예측은 빗나갔다. 서울과 도쿄에서 바이든이 정상회담 일정을 소화할 때도 북한은 침묵했다. 김정은이 미사일 도발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낸 건 바이든이 한국과 일본 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라 워싱턴DC에 도착하기 2시간 전인 5월25일 오전 6시(한국시간)였다.

도발 수위는 무척 높았다. 북한은 화성-17형으로 우리 군 당국이 판단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로 알려진 단거리 탄도미사일 등 3종의 미사일을 배합해 발사하는 초유의 상황을 연출했다. 모두가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서울과 워싱턴을 동시에 겨냥한 무력시위 성격이 강하다는 한미 정보 당국의 판단이 나왔다.

북한의 도발은 한미 정상회담, 미·일 정상회담 결과를 모두 지켜본 김정은의 결심에 따라 신속하게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도발 준비를 모두 마친 상황에서 발사 버튼을 누르는 시점을 정교하게 선택한 것이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경제와 첨단·미래에 방점이 찍힌 듯한 한미 정상회담에 불만을 표출하면서, 한반도 이슈의 중심은 여전히 북핵과 미사일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분석된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만남에 따른 후속조치가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나 우리 기업의 대규모 대미 투자 등으로 쏠리는 분위기에 차단벽을 치려는 의도도 감지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22일 경기 오산 공군기지에 위치한 항공우주작전본부(KAOC) 작전조정실을 찾아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반도체 동맹 등에 낄 여지 없어 고립감 클 듯

북한은 내친김에 7차 핵실험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5월25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주시하고 있다면서 “풍계리 핵실험장과 다른 장소에서 7차 핵실험을 준비하기 위한 핵 기폭 장치 작동시험을 하는 것이 탐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핵심 인사가 언론 브리핑을 통해 북한 핵실험 관련 정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문제는 출범 이후 첫 과제로 북핵과 미사일 도발을 떠안게 된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팀이 어떤 해법으로 대처해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일단 북한의 미사일 도발 직후 연합 미사일 실사격 훈련으로 맞선 한미 양측은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전략자산 전개를 포함한 ‘확장억제의 실질적 조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의 도발과 관련해 새로운 제재를 마련토록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미 고도화된 북한의 핵 보유도 문제지만 미 전역을 사정권으로 하는 ICBM 개발까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한미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새 대북제재도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에 막혀 옴짝달싹 못하는 형국이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의 경우 첫 단추가 잘못 꿰일 경우 지게 될 부담이 만만치 않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북한 경제와 북한 주민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공언했는데, 그 선결 조건이 바로 ‘실질적인 비핵화로의 전환’이란 측면에서다.

북한도 사정이 만만치 않기는 매한가지다. 김정은으로서는 공급망 재편으로 대표되는 미·중 패권전쟁과 힘겨루기 속에서 체제의 명운을 건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할 형편이다. 그런데 대북제재 후유증이 경제 전반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최근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도 심각하다. 4월말 확진자가 본격 증가하면서 하루 30만 명 수준으로까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다. 감소세로 돌아섰고 사망자도 없다는 주장을 관영매체로 내놓고 있지만, 10만 명대 확진에 ‘치명률 0.002%’라는 발표는 그대로 믿기 어렵다. 봉쇄 수준의 조치로 틀어막고 있지만 자칫 민심 이반의 요인이 될 우려도 있다. 한국과 미국 등에서 제안한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최고지도자와 체제의 자존심이 걸렸다는 인식 때문이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당시 대통령에게 호되게 당한 김정은 위원장은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었다. 바이든 취임 1년여 동안 미국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관망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한미 정상회담을 비롯한 국제 외교무대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과 반도체·배터리·전기차 등의 이슈에서 북한이 끼어들 자리는 없어 보인다. 김정은의 열패감이나 고립감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 리스크를 키우는 도발 행보에 집중할 공산이 크다. 미국과의 또 다른 담판 채비다. 핵과 미사일을 거머쥔 김정은을 어떻게 다뤄 나가야 할지 윤석열 대통령과 그의 외교안보 참모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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