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헛바퀴’ 국감, 민생이 또 치인다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24 08:05
  • 호수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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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10월은 특별하다. 여느 때보다 더 많이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의원 보좌진도 이 시기에는 밤잠을 설쳐가며 분주히 움직인다, 정부 기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국회에서 요구한 자료를 챙기느라 부산하다. 양측이 그야말로 ‘뚫느냐, 뚫리느냐’의 공방전에 사활을 걸다시피 한다.

이처럼 ‘특별’한 국회의 10월이 다시 돌아왔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모습이다. 그동안 이렇다 할 존재감 없이 지내온 21대 국회가 세 번째로 맞은 국정감사에서도 별 소득 없이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로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국민이 간절히 바라는 ‘민생 국감’은 온데간데없고 날 선 정쟁만 국감장에 넘쳐난다. 익히 알다시피 국정감사는 1년에 한 번 국회가 본연의 기능인 행정부 감시를 작정해서 해보라고 국민들이 다 볼 수 있게끔 별도의 무대를 만들어놓은 자리다.

이렇듯 중요한 무대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국회의 1년 성적표도 달라질 수 있다 국회의원 개개인에게는 자신의 역량을 국민 앞에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국정감사 기간에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 이른바 ‘국감 스타’로 불리며 지명도를 높인 정치인이 적지 않다. 멀게는 김영삼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랬고, 가까이는 2018년 사립유치원의 재정 비리를 폭로한 후 관련법의 개정안을 발의해 통과시키는 데 앞장선 박용진 의원이 그랬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2022년 10월7일 국회 과방위 국감에서 김제남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을 향해 "차라리 혀 깨물고 죽지"라고 한 발언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2022년 10월7일 국회 과방위 국감에서 김제남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을 향해 "차라리 혀 깨물고 죽지"라고 한 발언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10월4일 시작된 올해 국정감사는 어떤가. 아무리 살펴봐도 정부 및 정부 산하 기관이 지난 1년간 맡은 임무를 반듯하게 수행해 냈는지, 국민의 세금을 허투루 쓰지는 않았는지, 기강이 흐트러진 경우는 없었는지를 제대로 알고 싶은 국민들의 마음과는 동떨어져 있는 모습이다. 대신 국가 살림살이와는 크게 관련이 없는 목소리들만 속절없이 이어졌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특히 눈길을 끈 이슈는 엉뚱하게도 ‘말’이다, 말의, 말에 의한, 말을 위한 싸움이 국감을 지배했다. 권성동 의원은 국감장에 출석한 김제남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의 전력을 거론하며 “이 둥지 저 둥지 옮겨가면서 사는 뻐꾸기인가? 나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겠다. 차라리 혀 깨물고 죽지 뭐 하러 그런 짓을 하는가”라고 몰아붙여 폭언에 가까운 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책임한 태도로 인해 논란을 부른 경우도 있다. 국감에 출석해 “윤 대통령이 백신 피해를 반드시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아느냐”는 질문을 받고 “언론에서 봤다”라고 답한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이 그 한 사례다. 그리고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의 발언으로 촉발된 때 아닌 색깔 논쟁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정권교체 이후 실시되는 이번 국감은 전 정부의 임기와 현 정부의 임기를 동시에 다루는 만큼 정치 공방이 불가피한 점은 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은 국회에 특별한 시간이다. 국정운영의 전반을 잘 살펴보라고 헌법과 법률로 정해 할애해준 금쪽같은 ‘한정판 기간’이다. 그리고 정쟁은 국감 기간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틈만 나면 시도 때도 없이 해온 일이다. 한 달도 채 안 되는 이 귀중한 시간을 그 신물 나는 정치 공방으로 다시 허비할 수는 없다. 이 기회를 놓치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 ‘민생’의 살고 죽음이 이 국감에 달렸다는 각오로 남은 기간에라도 전체 국회의원이 심기일전해 주기를 바란다. 시간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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