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대 기업 주식부자 상위 10명 중 6명이 범삼성가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10.29 12:05
  • 호수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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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대 기업 오너 일가 주식 가치 전수조사 결과
여성 주식 부자 1, 2, 3위는 홍라희·이부진·이서현

시사저널은 매년 재벌가 오너 일가의 주식 가치 변화를 조사해 왔다. 오너 일가의 주식 평가액이 그해 기업의 실적이나 주가의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이다. 전체 순위는 그해 기업의 실적이나 주가에 따라 일부 변동이 있었다. 하지만 여성 주식 주자 순위는 그동안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삼성가(家) 세 모녀가 항상 1, 2, 3위를 지켰다.

지난해 초 이들 세 모녀는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지분을 대거 상속받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각국 정부가 금리 인하와 함께 유동성을 공급할 때였다. 시중에 돈이 풀리면서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증시와 부동산 등이 동반 상승했다. 삼성가 세 모녀의 주식 평가액 역시 전년 대비 250%나 증가했다.

삼성가 세 모녀 주식 가치 6조원대 증발

올해 상황은 달랐다.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주가 하락으로 국내 증시가 꽁꽁 얼어붙었다. 삼성가 세 모녀의 주식 가치도 22조4705억원에서 16조879억원으로 연초 대비 28.4%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삼성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의 평가액이 18.7% 감소한 것과 대조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시사저널이 기업 분석 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의뢰해 국내 500대 기업 오너 일가 1902명의 주식 가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이 중 여성 주식 부자 수는 383명이고, 주식 가치는 21조2379억원이다. 연초(28조8072억원) 대비 26.3%나 감소했다. 불과 9개월 만에 7조6000억원이 증발한 것이다. 상위권으로 갈수록 감소 폭이 더 컸다. 100억원 이상 주식을 보유한 오너 일가는 76명, 1000억원 이상 부호는 12명이다. 이들의 주식 가치 하락률은 30%에 이른다.

그럼에도 삼성가 세 모녀의 영향력은 여전히 건재했다. 올해 조사에서 1조원 이상 주식 부자는 모두 13명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조사 때(25명)보다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그나마 여성은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3명이 전부다. 이 덕분에 삼성가 세 모녀는 올해 주가 하락장에서도 여성 주식 부자 순위에서 1, 2, 3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들 세 명의 평가액이 나머지 1899명을 합한 것보다 세 배 이상 높게 나왔다. 전체 주식 부자 순위에서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전통적인 재벌 총수와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 장병규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 등 신흥 부호들을 제치고 2, 3, 4위를 차지했다.

신세계 이명회 회장과 정유경 사장 순위 교체

범위를 10위권으로 넓혀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삼성 세 모녀를 포함해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5위),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6위), 홍라영 전 리움미술관 총괄부관장 등이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여성 주식 부자 10명 중 6명이 범삼성가인 셈이다. 이들의 주식 가치는 모두 합하면 17조1343억원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인사가 있다. 바로 신세계그룹 정유경 총괄사장이다. 이명희 회장은 2018년 신세계 계열인 신세계조선호텔과 신세계푸드, 신세계건설 등의 지분을 모두 처분했다. 지난해에는 핵심 계열사인 신세계 지분마저 정 총괄사장에게 8.2% 증여했다. 물론 이때까지도 이 회장은 신세계의 최대주주였다. 주식 부호 순위도 이 회장이 5위, 정 총괄사장이 6위였다.

하지만 2021년 이 회장은 또다시 정 총괄사장에게 신세계 지분을 증여했다. 정 총괄사장 역시 장내 매수를 통해 꾸준히 지분을 매수했다. 그 결과 신세계 최대주주가 이 회장에서 정 총괄사장으로 바뀌었고, 여성 주식 부호 순위도 5위로 한 계단 상승했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올해 조사의 키워드 중 하나가 지분 승계다. 상당수 기업의 총수들이 자녀에게 지분을 승계하면서 주식 평가액이 요동쳤다”면서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과 정유경 사장도 그런 케이스다”라고 설명했다.

범삼성가 외에 10위권에 든 여성 주식 부호로는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4위),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7위), 정성이 이노션 고문(9위), 김주원 DB그룹 부회장(10위) 등이 있다. 최기원 이사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여동생이다. 현재 SK그룹 지주회사인 SK(주)의 지분 6.86%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조사에서 최 이사장은 비삼성 가문으로는 유일하게 ‘1조원 클럽’에 들었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주가가 23% 하락하면서 지분 가치는 9423억원을 기록했다. 이노션 최대주주이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누나인 정성이 고문, 김남호 DB그룹 회장의 누나인 김주원 부회장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유한 주식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평가액이 각각 24%, 1% 감소했다.

이화경·홍라영 등 2명만 주식 가치 상승

10대 여성 주식 부호 중에서 평가액이 증가한 인사는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1%)과 홍라영 전 삼성미술관 총괄부관장(14%)이 전부다. 특히 이 부회장은 현재 남편인 담철곤 회장과 함께 그룹의 지주사인 오리온홀딩스 지분 60%를 보유하고 있다. 핵심 계열사인 오리온 지분도 4.08% 보유하고 있다. 올해 오리온이 해외에서 고르게 성장하면서 매출뿐 아니라 영업이익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주가도 좋은 흐름을 보이면서 이 부회장의 평가액은 소폭이나마 상승했다.

이 밖에도 김성권 씨에스윈드 회장의 장녀 김승연씨와 부인 이명애씨,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 현정은 현대그룹 이사장, 함영준 오뚜기 회장의 누나와 여동생인 함영림·함영혜씨, 삼성가 방계 3세인 이유정씨, 최창영 고려아연 명예회장 부인 김록희씨 등이 여성 주식 부호 2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주식 가치 오른 인사는 383명 중 72명

카카오 임원 김윤진씨 716%↑ vs 메리츠家 장녀 조효재씨 73%↓

올해 조사에서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결과가 있다. 증시 하락장에서도 주식 가치가 상승한 여성 부자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조사 대상 383명 중 72명의 여성 주식 부자 평가액이 증가했다. 주식 평가액 1억원 미만은 배제하고 분석한 결과, 주식 가치가 가장 많이 상승한 인사는 카카오의 임원이자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의 특수관계인으로 분류된 김윤진씨다. 김씨는 최근 카카오 지분을 꾸준히 매입하면서 지분 가치가 1억8300만원에서 14억2600만원으로 716%나 상승했다.

세계 1위 풍력타워 제조사인 씨에스윈드 김성권 회장의 특수관계인으로 분류된 김혜진씨가 2위를 차지했다. 김성권 회장은 8월19일 장남인 김창헌 씨에스에너지 상무에게 씨에스윈드 주식 40만 주를 증여했다. 이날 종가(6만4500원) 기준으로 258억원에 이른다. 이 덕분에 김 상무의 지분은 4.74%에서 5.69%로 늘었다. 최대주주인 김 회장에 이은 2대 주주다. 이 과정에서 김 회장은 혜진씨에게도 씨에스윈드 지분 2만 주를 증여했다. 김씨의 지분 가치는 연초 1억8300만원에서 9월말 12억4300만원으로 680%나 상승했다.

이만득 삼천리 명예회장의 세 딸인 이은희·이은남·이은선씨와 유상덕 ST인터내셔널 회장(옛 삼탄)의 누나인 유혜숙씨가 공동 3위를 차지했다. 삼천리와 ST인터내셔널은 창업자가 동업해 설립한 회사다. 상장회사인 삼천리는 이씨 가문이, 비상장회사인 ST인터내셔널은 유씨 가문이 각각 경영을 맡아왔다. 최근 그룹이 3세 체제에 접어들면서 지배 구조가 급변했고, 주식 가치는 연초 대비 192%나 상승했다.

이들과 반대로 상당수 기업 오너 일가의 주식 가치는 크게 하락했다. 불과 9개월여 만에 주식 가치가 50% 이상 하락한 인사만 40여 명에 이른다. 40% 이상 주식 가치가 하락한 인사까지 포함하면 모두 86명이다. 여성 주식 부호 4명 중 1명꼴로 주식 가치가 40% 이상 떨어졌다는 얘기다.

주식 가치가 가장 많이 하락한 인사는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의 장녀 조효재씨다. 조씨는 현재 메리츠금융지주와 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메리츠금융지주와 계열사 주가가 동반 하락하면서 조씨의 주식 가치는 89억5900만원에서 23억5000만원으로 9개월 만에 73%나 떨어졌다.

하이브 산하 레이블 어도어(ADOR)를 이끄는 민희진 대표의 주식 가치도 크게 하락했다. 민 대표는 최근 신인 걸그룹 뉴진스를 앞세워 국내외 스트리밍 시장을 휩쓸고 있다. 하지만 하이브 주가가 30만원대에서 10만원대로 폭락하면서 평가액이 62%나 감소했다. 이 밖에도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의 부인 정승혜씨와 정몽규 HDC 회장의 부인 김 줄리 앤(KIM JULIE ANN·한국명 김나영)씨와 누나 정숙영씨, 어머니 박영자씨의 주식 가치가 56% 하락했고, 송인애 크래프톤 감사와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처형인 이상희씨, 김남호 DB그룹 회장의 고모 김명희씨의 주식 가치도 각각 55%, 54%, 53%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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