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열차’의 질주는 계속된다  [2023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08.11 15:05
  • 호수 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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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예술계 인물]
대외활동 뜸했어도 5년째 1위 수성…BTS·박찬욱·김연아·조수미 2~5위

시사저널-한국갤럽, 전문가·일반국민 1000명 설문조사…‘시대의 희망·요구·과제’ 상징하는 ‘대한민국 권력 지도’

지금 대한민국은 누가 움직이고 있을까. 2023년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판을 떠받치고 움직이는 그 역동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면밀히 읽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시대적 요구를 파악할 수 있다. 민심이 가리키는 시대의 희망과 과제도 찾아낼 수 있다. 마침내 신호와 소음을 구분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는 과정은 시대상을 담아내는 일이다. 한국을 움직인다는 말은 민심에 가장 빠르고 예민하게, 그리고 가장 국민이 원하는 방식으로 반응한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희망과 요구, 과제들이 담겨 있다.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도도한 민심의 흐름과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인물들을 살펴보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시사저널이 1989년 창간 이후 34년째 매년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영향력 조사를 이어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봉준호 감독은 ‘한국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그는 2019년 72회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가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은 《기생충》이 처음이다. 이듬해 《기생충》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이전까지 아카데미는 한국 영화에 ‘난공불락 요새’처럼 여겨졌다. 시상은커녕 후보작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기생충》은 작품상과 함께 감독상, 각본상, 외국어영화상 등 4관왕을 휩쓸었다. 영화를 연출한 봉준호 감독은 물론이고, 한국 영화의 글로벌 위상 역시 크게 높아졌다.

ⓒ뉴스1

언론 노출 없어도 ‘봉준호 월드’는 건재

봉 감독이 칸과 아카데미에서 잇달아 상을 받고 3년여가 흘렀다. 하지만 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건재했다. 봉 감독은 시사저널이 매년 실시하는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의 문화예술인 부문에서 5년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해 조사에서 그는 전문가 지목률 30.8%, 일반국민 지목률 18.6%를 획득했다.

주목되는 사실은 봉 감독의 활동이 최근 뜸했다는 점이다. 그는 현재 영화 《미키17》 제작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출간된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7》이 원작이다.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로버트 패틴슨이 이 영화의 주인공 미키 역할을 맡았다. 현지시간으로 8월8일 미국에서 테스트 스크리닝을 가지며 주목받았지만, 그뿐이었다. 언론 노출도, 외부활동도 없는 상황에서도 그가 영향력 1위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기생충》이 칸과 아카데미에서 잇달아 수상한 것은 한국 문화사에서 대사건이다. 그만큼 봉준호 감독의 예술적 성취를 인정해준 것”이라면서 “일반 연예인의 활동기와 공백기로 봉 감독을 평가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 영화사의 변곡점에는 항상 봉준호 감독이 있었다. 그는 2003년 개봉한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단숨에 스타 감독 반열에 올랐다. 《살인의 추억》은 작품성과 함께 흥행성을 인정받으며 말 그대로 대박을 터트렸다. 2006년 개봉한 《괴물》에서 그는 자신의 색깔을 작품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할리우드 영화 규칙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영화 장르를 시도했고, 또다시 대박을 터트렸다. 그해 《괴물》은 관객 수 1300만 명을 돌파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도 ‘괴물류’의 판타지 영화가 통할 수 있다”는 인식을 영화계에 각인시켰다.

봉 감독은 2013년 《설국열차》를 통해 할리우드의 문을 두드렸다. 이 영화는 그해 베를린국제영화제와 도빌미국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됐을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봉 감독은 2013년 미국 보스턴영화비평가협회 최우수 작품상과 디렉터스 컷 어워드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흥행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설국열차》는 그해 국내에서 93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아쉽게 천만 돌파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해외에서 선전하면서 8600만 달러의 글로벌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봉준호 감독은 2017년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옥자》를 통해 플랫폼 확장을 시도한 것이다. 반발이 적지 않았다.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3사가 당시 극장 상영을 거부했다. 메가박스가 2019년 넷플릭스 최신 영화를 극장에서 개봉하고, 쿠팡의 OTT 서비스 쿠팡플레이가 극장 상영작을 무료로 공개하는 서비스 ‘쿠플시네마’ 론칭을 준비 중인 지금의 모습과 대비된다.

전문가가 뽑은 문화예술인 영향력 2위(11.2%)는 방탄소년단(BTS)이 차지했다. 지난해 박찬욱 감독에게 빼앗겼던 2위 자리도 올해 되찾았다. BTS는 최근 멤버들의 순차적인 군 복무로 단체활동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개인활동을 하면서도 단체활동 못지않은 성적을 냈다. 제이홉과 진, RM, 지민, 슈가, 정국이 낸 솔로 앨범이 잇달아 좋은 반응을 보였다. 특히 정국이 최근 내놓은 첫 솔로 싱글 《세븐(SEVEN)》은 글로벌 음악차트를 석권했다. 세계 최대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 글로벌 차트 진입과 동시에 1위로 직행한 것이다. ‘BTS 공백’을 우려했던 소속사 하이브도 한숨을 돌리게 됐다. 올 1분기 하이브의 연결 기준 매출은 4106억원, 영업이익은 525억원을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1분기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박찬욱 감독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한 계단 떨어진 3위(7.4%)를 차지하긴 했지만 영향력은 건재했다. 박 감독은 지난해 《헤어질 결심》으로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올드보이》(2004), 《박쥐》(2006)에 이어 칸에서만 세 번째 수상이었다. 하지만 박 감독의 진면목은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지난해 아이폰 하나만으로 단편영화 《일장춘몽》을 연출해 주목을 받았다. 거장 반열에 오른 후에도 망설이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연합뉴스

장미란 문체부 2차관, 처음으로 톱10에

박 감독은 지난 5월 유튜브를 통해 중고차 판매앱 헤이딜러 ‘중고차 숨은이력 찾기’ 광고 영상을 공개했다. 배우 한소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1분짜리 광고로, 그동안 박 감독이 연출한 영화를 오마주해 제작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공개 하루 만에 조회 수 7만 건을 넘겼다. “광고가 아니라 영화 예고편 같다” “광고가 아니라 단편영화를 본 것 같다”는 댓글이 쇄도했다. 헤이딜러 앱을 통한 누적 거래액은 최근 10조원을 돌파했다.

이 밖에도 전문가가 뽑은 문화예술계 영향력 톱10에는 전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7.0%), 성악가 조수미(6.6%),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5.6%), 개그맨 유재석(3.6%), 피아니스트 조성진(3.6%), 역도선수로 최근 문화체육부 2차관에 임명된 장미란(2.6%), 드라마 작가 김은희(2.4%) 등이 이름을 올렸다. 특히 장미란 차관의 경우 처음으로 톱10에 이름을 올려 주목된다. 

‘2023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어떻게 선정됐나

시사저널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설문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 의뢰해 조사했다. 그동안은 행정관료·교수·언론인·법조인·정치인·기업인·금융인·사회단체·문화예술인·종교인 등 10개 분야에서 각 100명씩 전문가 총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는데, 지난해부터 비중을 조정해 10개 분야에서 50명씩 총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대신 일반국민 조사를 신설해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올해 조사는 7월3일부터 7월21일까지 진행됐다. 전문가 조사방법은 리스트를 이용한 전화면접 여론조사로 이뤄졌다. 일반국민 조사는 패널을 활용한 온라인 조사로 실시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4.4%포인트다. 올해 6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통계 기준으로 가중값을 부여했다. 두 조사 모두에서 구조화된 질문지를 조사도구로 활용했다. 문항별 최대 3명까지 중복응답을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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