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공격, 중동 패권 쥐려는 이란의 對美 선전포고?
  • 이동진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0.14 14:05
  • 호수 1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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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파 초승달 지대’ 연결해 지중해 진출하려는 야망
미국의 ‘이란 고립 정책’에 위기의식 느껴

1973년 10월6일. 이집트와 시리아 등 아랍연합국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당시 유대교 절기 중 가장 중요한 ‘욤키푸르’(속죄의 날)를 지내고 있던 이스라엘은 기습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정확히 50년이 지난 2023년 10월7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로켓 수천 발을 발사하며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다. ‘욤키푸르의 악몽이 재현됐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하마스의 공격이 개시된 날은 토요일로 이스라엘 사회 전체가 안식하는 안식일이었으며 그날은 유대교 절기 중 하나인 초막절의 마지막 날을 축하하는 큰 축제의 날이었다. 이스라엘이 방심한 틈을 타 하마스가 기습적으로 공세를 퍼부은 것이다. 이스라엘은 즉각 선전포고를 하고 하마스에 대한 반격에 나섰고, 이로 인해 양측 사망자는 이미 수천 명을 넘겼다.

ⓒAFP 연합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 하마스가 10월11일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를 발사했다. ⓒAFP 연합

“유엔 결의안 무시하고 팔레스타인인 집 철거”

하마스라는 이름의 의미는 ‘이슬람 저항 운동’으로 1988년 당시 팔레스타인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에서 분리되어 나온 강경파 집단이다. 이들은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에 대해 아주 회의적이며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보다는 무장봉기를 통한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추구하고 이스라엘 국가의 파괴를 목표하고 있다. 2005년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정부에 최소한의 자치권을 보장해 주기 위해 모든 자국민을 가자지구에서 강제 철수시킨 다음 해인 2006년, 하마스가 선거를 통해 가자지구의 통치집단으로 등장했고,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하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서로 크고 작은 공격들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특히 2021년 5월에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겨냥한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감행해 13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다. 이에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를 공습했고 최소 256명의 가자지구 주민이 희생됐다. 이 일 이후에도 여러 차례 미사일이 오고 갔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싸움은 역대 최대 규모 전투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마스의 이번 기습 공격은 미사일 수천 발이 동원됐고, 이스라엘 역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박멸’을 목표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로켓 공격 후 하마스는 성명을 통해 “2021년 이후 18개월간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도시 공습, 예루살렘 알아크사 사원에서의 폭력, 유대인 정착민들의 팔레스타인인 공격 증가, 16년간 가자지구 봉쇄 정책 등 일련의 행동에 대한 보복 차원”이라며 이번 공격을 정당화했다. 다만 하마스의 주장이 실제 팔레스타인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일부 반영한다는 시각도 있다.

며칠 전 열린 유엔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발표된 토르 웨네스랜드 유엔 중동특사의 보고서는 이스라엘의 대(對)팔레스타인 정책을 향한 강한 비판의 시각이 담겼다. 보고서에 따르면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자치 구역 내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을 중단하라는 유엔 이사회 결의안을 무시하고 이스라엘 정부는 현재까지 서안지구 내에 1만 개 정도의 건물을 건설 중이며, 동예루살렘에서는 3850가구의 주택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

동시에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집을 철거하고, 그들의 부동산을 아직도 압수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보고서 작성 기간인 6월15일부터 9월19일까지 3개월 동안 268채의 집이 철거됐고, 총 180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삶의 터전을 잃었으며 그중 91명은 어린아이들이라고 기록됐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이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이스라엘 정부의 해당 조치가 명백한 국제법 위반 행위임을 강조했다. 특히 이러한 이스라엘 정부의 기조는 지난해 말 극우 성향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극우 연정’이 출범한 이후 가속화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4월에는 중동의 대표적 화약고인 알아크사 사원 내부에 이스라엘 군경이 이례적으로 들어가 라마단 예배 중이던 팔레스타인인들을 건물 구석에 몰아놓고 몽둥이로 때리는 영상이 인터넷에 급격히 퍼지기도 했다. 알아크사는 동예루살렘 성지 밀집지인 옛 시가지에 있는 구역으로 이슬람교와 유대교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장소 중 하나로 꼽힌다. 100여 년 전 체결된 합의에 따라 현재는 이슬람교도만이 이 건물에서 기도할 수 있다. 해당 논란 직후 하마스는 두 차례에 걸쳐 로켓을 발사했고, 6월20일에는 하마스 소속 무장 괴한 2명이 서안지구에 위치한 이스라엘 정착촌을 급습해 이스라엘 민간인 4명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UPI 연합
10월7일 가자지구에서 하마스 무장대원들 뒤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인한 폭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UPI 연합

서방 “하마스의 공격, 이란이 계획한 것”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 정책이 하마스가 장기 통치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시각도 있다. 2007년부터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철저히 고립시켰다. 프랑스 언론들은 가자지구를 ‘지상 감옥’이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장벽을 세워 가자지구 주민들의 이동의 자유를 박탈하고 생필품 반입을 제한하는 강력한 봉쇄 정책을 펼쳐왔다. 360㎢ 면적에 230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당 6000명으로 세상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유엔인구기금(UNFPA)은 2020년 가자지구를 거주 불능 수준으로 판단한 바 있으며, 2030년에는 가자지구 내 인구가 약 31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봤다. 이스라엘의 강력한 봉쇄 정책이 가져온 열악한 환경이 지역 내 무장 조직 하마스의 영향력을 키웠다는 것이다.

현재는 가자지구 인구의 절반가량이 이스라엘의 공습과 지상군 투입을 피해 피난길에 올랐지만,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완전 봉쇄해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 군 당국은 10월10일 오전,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이집트로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라”고 경고한 후 바로 가자지구와 이집트 국경에 포격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도 테러는 정당화될 수 없다. 기습 공격과 납치 등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하마스의 만행들은 테러에 가깝다. 하마스는 10월7일 이스라엘 남부 지역에 침투해 수백 명의 민간인을 살해했다. 야간 음악축제에 난입해 젊은이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하기도 했다. 축제장에선 시신 260구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마스는 인질 150여 명도 잡아갔다. 이 중엔 미국인 등 외국인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마스는 현재 이스라엘과 서방을 향해 인질 살해 협박을 하고 있다. 하마스는 이미 인질 몇 명은 처형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하마스로 인해 최소 14명의 미국인과 1000명 넘는 민간인이 학살됐다면서 “하마스의 잔인함, 피에 대한 갈증은 ISIS(이슬람국가)에 의한 최악의 만행을 떠올리게 한다”고 비난했다.

이번 공격을 두고 서방세계에서는 하마스의 배후에 이란이 있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보도를 통해 테헤란이 하마스를 도와 이번 공격을 계획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미국 백악관 고위급 참모들은 이에 대한 명백한 증거는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하마스가 ‘외부 지원’을 받았을 수도 있다며 이란의 개입설을 거론했다. 다만 그도 “증거가 없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서방 리더들이 이란을 주목하는 이유는 이번 일을 중동 지역 패권 다툼의 일환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서쪽으로 자신의 종파인 시아파 세력을 확장 중에 있다.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그리고 가자지구의 하마스까지 현재 이란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들을 지정학적 개념으로 ‘시아파 초승달 지대’라고 부른다. 이란은 시아파 초승달 지대를 연결해 지중해 쪽 출구를 확보하고 중동의 패권국가로 성장하려는 야망을 갖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AP 연합
10월10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가자지구 건물 잔해 속에서 팔레스타인 어린 소녀가 구출되고 있다. ⓒAP 연합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이란 시각 적지 않아

이에 반해 미국의 주도하에 이스라엘은 이란과 대립 중이다. 중동 지역에서 이란을 고립시키기 위해 아랍국가들과 외교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다. 2020년에는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모로코가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했고 올해 들어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 작업 중에 있었다. 로이터통신은 하마스의 이번 공격이 미국 중심의 중동으로 분위기가 변화하는 데 대한 위기 의식 때문에 일어났다고 분석한다. 그 뒤에 이란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쟁이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정말 지역 패권 다툼에 따른 대리전쟁인지 아닌지는 아직 섣불리 판단하기 힘들다는 게 유럽의 중동 전문가들의 대체적 입장이다. 앞으로 시리아와 레바논의 무장 정파 헤즈볼라, 이란 등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헤즈볼라는 이번 하마스의 기습 공격 직후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골란고원을 향해 로켓과 박격포를 발사하며 하마스 지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헤메네이는 이번 전쟁의 이란 배후설에 대해 전면 부인하면서도 “우리는 능숙하고 총명한 작전 설계자들과 팔레스타인 젊은이의 이마와 팔에 입을 맞춘다”며 하마스에 대한 지지를 표했다.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위해 제럴드 포드 항모전단을 동지중해에 이동 배치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F-35, F-15, F-16, A-10 등 역내 전투기 편대를 증강하기로 했고, 탄약과 군사 장비 등은 이미 이스라엘에 인도하기 시작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현지시간으로 10월10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우리(미국)는 이스라엘과 함께할 것임을 분명히 한다”며 이스라엘 지원을 위해 추가적인 군사 자산을 투입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바이든 대통령은 모든 확전 시나리오에 대한 비상계획 수립을 지시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필자 이동진 프랑스 통신원은 파리 이날코대학에서 아랍·국제관계학을 전공했고 현재 파리 팡테온 소르본1대학에서 국제관계학 석사에 재학하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 등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교환학생으로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에서 수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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