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로 애플에 IT 왕좌 넘긴 MS, AI로 명예 되찾았다 [권상집의 논전(論戰)]
  •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0 11:00
  • 호수 1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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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가 애플 꺾고 시가총액 1위 탈환한 비결 주목…핵심경직성이 된 역량 버려야 주도권 확보도 가능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와 창업자 빌 게이츠는 1980~90년대 비즈니스 세계의 절대 우상이었다. 빌 게이츠는 그 시절에 세계 최고의 부자였으며, MS는 글로벌 IT 패권을 좌우하는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장기간 군림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2001년 국내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삼성그룹에는 천재급 인력은 없다”면서 “빌 게이츠같이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천재급 인력 3명을 찾는 게 목표”라고 밝혔을 정도다.

물론 MZ세대에게는 이런 내용이 모두 생소하게 다가올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최고의 기업은 애플이며, 세계 최고의 혁신가는 작고한 스티브 잡스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잡스, 애플, 아이폰을 연호하는 사이에 MS는 지난 10년간 흑역사만 남겼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오른쪽)가 1월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에서 더그 맥밀런 월마트 CEO와 AI 챗봇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오른쪽)가 1월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에서 더그 맥밀런 월마트 CEO와 AI 챗봇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연합뉴스

2년2개월 만의 ‘왕의 귀환’

IT 패러다임을 기존의 PC에서 모바일로 바꾸며 애플은 MS의 비즈니스 주도권을 빼앗았다. 모든 이의 우상도 자연스럽게 빌 게이츠에서 잡스로 바뀌었고 MS의 성장도 끝났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한 IT 전문가들의 주장을 반박이라도 하듯이 MS는 올해 화려한 복귀를 신고했다. 2024년 1월, 생성형 AI의 바람을 타고 글로벌 시가총액에서 애플을 밀어내며 MS는 1위 탈환에 성공했다. 2년2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MS는 오피스(MS-Office)와 윈도(Windows)라는 핵심역량으로 오랜 기간 동안 IT 산업의 흐름을 장악했다. 스마트폰 이전에 혁신의 상징은 PC였고, 해당 PC의 시작은 사실 MS가 아닌 매킨토시를 개발한 애플이었다. 그럼에도 애플은 PC라는 상징자본을 소유하지 못했고 그 자리를 MS가 차지했다. MS의 윈도는 여전히 다수 경쟁자가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있음에도 가정용 컴퓨터 시장 점유율에서 9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MS의 결정적 패착은 애플이 장악한 모바일 패러다임에서 경쟁했기 때문이다. MS의 윈도8은 모바일로 전환하기 위해 모바일과 PC의 통합을 무리하게 추진하며 오히려 완성도만 떨어뜨려 MS의 열성 고객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MS의 전임 CEO였던 스티브 발머는 애플, 구글, 아마존 등 각 분야에서 산업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며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기업들의 공습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 결과, 2014년 MS의 CEO에 오른 사티아 나델라의 등장에 주목한 이는 많지 않았다. MS는 애플과 구글의 전방위 압박에 이미 위세가 크게 휘청였다. 그러나 사티아 나델라는 전략적으로 현명한 의사결정을 내렸다. 첫째, 모바일 시장에서 애플과 전면전을 벌이지 않는다. 둘째, 기존 B2C 시장의 주도권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B2C 시장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B2B 시장에 기업의 핵심역량을 총동원한다. 그는 PC에서 모바일로 패러다임이 전환된 영역에서 애플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MS가 주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가 CEO에 취임하자마자 링크드인, 액티비전 블리자드 등 MS의 기존 사업과 무관해 보이는 기업을 대상으로 거금을 들여 인수합병(M&A)을 추진해 성공한 이유다. 그는 AI에 눈길을 돌려 화제의 기업으로 떠오른 오픈AI에 선제적으로 투자했다. AI는 IT의 새로운 변곡점이다.

《손자병법》을 보면, 지략가는 상대가 조성한 전쟁터(현대식 의미의 프레임)에서 싸우지 않고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 지형을 만들어 가장 우세한 전력으로 상대를 압도한다고 강조한다. 병법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지금까지 글로벌 시가총액 1위 또는 혁신의 대명사로 거론된 기업들은 상대가 설정해 놓은 패러다임에서 경쟁하지 않았다. 패러다임을 흔들어 경쟁사를 핵심경직성에 빠뜨리는 게 핵심이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도로시 레너드 교수(Dorothy Leonard-Barton)는 기업이 보유한 핵심역량은 오히려 신사업 추진의 걸림돌이 되는 핵심경직성(Core Rigidities)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논문으로 게재해 글로벌 석학이 됐다. 해당 산업에서 1위를 차지한 기업은 자신들의 핵심역량과 성과에 자아도취돼 변화 흐름을 읽지 못하고 스스로 정체된다는 얘기다. MS도 오랜 기간 핵심경직성의 대표 사례로 지적돼 왔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EPA 연합

먼저 버리는 쪽이 최후 승자 된다

MS는 모바일 패러다임의 전환에 적응하지 못하고 부침을 겪다가 결국 AI라는 패러다임 변화에 선제적으로 나서 주도권을 다시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MS는 일찌감치 오픈AI와 파트너십을 구축해 검색 및 학습에 사용되는 챗GPT 기능을 통합하며 AI 패러다임을 주도해 나갔다. 그렇다면 사티아 나델라가 CEO로 부임한 후 가장 노력을 기울인 중점 분야는 무엇일까. 그는 전략, 혁신이 아닌 문화에 포커스를 두었다. 그는 취임 후 9개월에 걸쳐 기업문화 혁신TF를 운영했다. 논의 끝에 혁신TF가 내린 결론은 차별화된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 구성원이 학습하고 다양성을 포용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당연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관료주의에 빠진 조직이 학습을 활성화하고 다양성을 감내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핵심경직성에서 빠져나오려면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사티아 나델라의 판단은 옳았다.

이후 그는 플랫폼 그리고 클라우드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조직으로 MS를 재정의했다. 기존 윈도 중심의 핵심역량을 과감히 폐기한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MS는 뒤이어 혼합현실, AI, 양자컴퓨팅에 자신들의 미래가 있다고 강조하며 해당 분야에 집중투자했다. 애플, 구글, 아마존 등의 핵심역량에 맞서 대립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길을 새롭게 개척하겠다는 일종의 시그널은 시장의 환호와 지지로 되돌아왔다.

시가총액은 말 그대로 시장의 기대치를 의미한다. 그리고 시장은 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산업을 변혁하는 기업에 가장 많은 기대를 부여한다. MS에서 애플 그리고 다시 MS로 패권이 돌아왔고 IT 산업은 PC에서 모바일 그리고 AI로 계속 진화하고 있다. MS는 경쟁사가 압도하기 전에 자사의 핵심역량을 먼저 폐기했다. 먼저 버리는 쪽이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된다. 산업은 변하지만 승자의 진리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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