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실패 롤러코스트 타는 손정의, 마지막 승부처는 AI
  • 임수택 객원편집위원(도쿄경영단기대학 객원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18 08:00
  • 호수 1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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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뱅크 그룹, 사상 최대 흑자와 최대 적자 모두 기록해
“손정의식 경영이 리스크” 지적도…투자자들은 안정적 기업 운영 요구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의 2023년 4~12월 연결 결산 보고서에 의하면 4587억 엔(전년 동기 -9125억 엔) 적자를 기록했다. 2기 연속 적자다. 그러자 여러 미디어에서 손정의 회장의 위기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일부에서는 ‘미다스의 손’이 ‘마이너스의 손’이 되었다고 조롱 섞인 비난도 한다. 손 회장은 과연 큰 위기를 맞고 있는 걸까. 그는 이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2022년 5월12일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 ⓒKyodo News

2000년 ‘IT 버블 붕괴’ 최악의 위기 극복

소프트뱅크 그룹은 1981년 창업 이래 그룹의 운명이 손 회장 한 사람에 의해 크게 좌우되고 있다. 그의 비전과 경영전략을 이해하는 것은 그룹의 미래와 운명을 이해하는 것이다. 소프트뱅크 그룹은 크게 5개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다. 투자 중심의 그룹 지주회사, 통신사인 소프트뱅크, 소프트뱅크비전펀드(SVF), 반도체 설계회사 암(ARM), 페이페이와 FORTRESS 등이다. 소프트뱅크 자회사로 Z홀딩스가 있으며 여기에 야후재팬과 라인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현재 소프트뱅크는 사업과 자금운용 면에서 안정적이다. ARM도 갈수록 그 가치와 이익이 커질 전망이다. 문제는 지주회사와 SVF다. 2022년 4~6월 결산 보고 자리에서 손 회장은 “시장 가치가 9조 엔인 회사가 3조 엔 적자가 됐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손 회장에게는 이보다 훨씬 더 심각했던 위기가 과거에 있었다. 2000년대 인터넷 버블 붕괴 시기였다.

당시 소프트뱅크 주가는 20조 엔을 넘어 시가총액 기준으로 토요타자동차에 이어 2번째 큰 기업이었다. 하지만 인터넷 버블 붕괴로 주가가 99% 정도 폭락해 거의 휴지 조각 상태가 되었다. 폭락 후 시가총액은 2800억 엔으로 추락했다. 야후재팬 때문이었다. 1996년 손정의 회장은 적자 벤처기업인 미국 야후에 150억 엔을 투자해 37%의 주식을 가지고 일본 야후를 설립했다. 일본 야후는 소프트뱅크의 자회사다. 한때 야후재팬의 주식 한 주가 1억 엔을 초과하기도 했다. 일본 증시 사상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이 야후재팬 주식이 인터넷 버블 붕괴의 직격탄을 맞고 급락한 것이다.

비난이 쇄도했다. 적지 않은 사람이 손 회장을 버블맨이라며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제조업 강국으로 자부심이 강한 일본 사람들에게 손에 잡히지 않는 인터넷 서비스라는 생소한 회사가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일본 국민은 야후를 정상적인 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당시는 손 회장이 지금처럼 여러 사업을 성공시킨 경험이 있었던 시절도 아니어서 그에 대한 비난은 더욱 거셌다.

그런 세간의 비난과 조롱을 겪으면서도 손 회장은 정보통신 혁명을 통해 세상을 바꾸어보겠다는 뜻과 신념을 굽히지 않고 2001년에 야후 브로드밴드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만 해도 일본에서 통신과 네트워크 사업은 NTT(일본전신전화공사)의 절대적 영역이었기에 그 누구도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런 공룡과 같은 회사를 상대로 신생 회사가, 그것도 인터넷 버블 붕괴로 최악의 상태에 놓여있던 회사가 NTT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표현은 그나마 ‘애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당시 소프트뱅크의 도전은 무모했다. 2000년 초반 도쿄 지오다구 나가타초 NTT 본사 앞에서 ‘야후B.B’라고 쓰인 빨간 옷을 입은 소프트뱅크 영업사원들이 ADSL 모뎀을 무료로 나누어주던 모습이 필자의 눈에 지금도 선하다.

소프트뱅크는 브로드밴드 사업 시작 4년 만에 가입자 수 1위로 등극했다. 계란으로 바위를 쳐 깨트린 것이다. 소프트뱅크는, 손정의 회장은 그렇게 다시 부활했다. 이후 ‘손정의 투자’ 신화는 계속된다. 2000년 알리바바에 대한 약 20억 엔 투자를 시작으로 2006년 일본에 진출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보다폰을 1조7500억 엔에 인수하며 일본 M&A 역사에 가장 큰 빅딜을 성사시키며 통신회사로서의 위상을 정립했다.

 

성공과 실패라는 경험과 교훈 속에서 성장

손정의 회장 특유의 마케팅 전략으로 지금은 일본에서 NTT도코모, KDDI와 함께 통신 3사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2013년에 미국 이동통신사 스프린트를 약 1조8000억 엔에 인수하고, 2016년엔 영국의 반도체 설계회사 ARM을 3조3000억 엔에 인수했으며, 2017년과 2019년 두 해에 걸쳐 약 1500억 달러 규모의 SVF를 설립했다. 소프트뱅크 그룹은 일본의 대기업을 넘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회사가 되었다. 하지만 야후, 알리바바 같은 성공적인 투자와는 반대로 최근 실패 사례들 또한 적지 않다. 약 100억 달러를 투자한 공유 오피스 위워크가 대표적이다.

소프트뱅크 그룹은 이런 성공과 실패 경험과 교훈 속에서 성장해 오고 있는 회사다. 2월8일 소프트뱅크 그룹 2023년 10~12월 결산 보고가 있었다. 단상에 선 소프트뱅크 그룹 CFO 고토 요시미쓰 전무는 1시간30분에 걸쳐 그룹의 경영 전반의 현황과 결산 보고 및 향후 전략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재무구조가 개선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고토 CFO는 그룹의 미래 성장 분야의 수익 창출에 대한 신념과 그룹의 자금 사정이 개선되고 있다며 주주들을 안심시키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영국의 반도체 설계회사 ARM에 대한 소개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ARM 투자를 보면 손정의 회장의 미래를 볼 수 있다. 소프트뱅크 그룹의 성장 발자취에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여러 번의 투자가 있었다. 야후, 보다폰, 알리바바 등이다. 하지만 이런 투자와는 차원이 다른 투자가 바로 ARM이다. 그룹의 최근 보유자산 구조를 보면 알 수 있다. 2019년 12월만 해도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가 그룹의 50%를 차지했지만, 지난해 12월말 기준으로 알리바바는 약 0.02%로 거의 존재가 없어졌고 대신 ARM 32%, SVF 38%로 그룹 전체를 ARM과 AI 기업으로 재편하는 모습이었다. 이는 손 회장의 마지막 승부처로 평가받고 있다.

소프트뱅크 그룹은 3조3000억 엔을 투자해 ARM 홀딩스의 주식 90%를 가지고 있다. 2월8일 결산 발표에서와 같이 지난해 9월경 51달러였던 주가가 최근 120달러까지 치솟았다. 2월13일 블룸버그 발표에 의하면 ARM의 시가총액이 23조 엔으로 상승했다. ARM 인수 시 손 회장은 “앞으로 20년 이내에 1조 개의 칩을 세상에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9월말 기준으로 ARM 베이스 칩 출하 누적량이 2800억 개를 넘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 크라우드 서비스용 CPU에 ARM 베이스 칩을, 일본 반도체 기업 르네사스 일레트로닉도 ARM의 기술을 채택하기로 하면서 그 수요가 점점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손정의 회장이 2017년 5월10일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ARM 인수에 따른 실적을 발표하고 있다. ⓒ
손정의 회장이 2017년 5월10일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ARM 인수에 따른 실적을 발표하고 있다. ⓒEPA 연합

자산 가치보다 낮은 시가총액, 신뢰도 때문

ARM의 성장 요인은 크게 3가지다. 로열티 수입, 복수의 IP 라이선스를 조합한 서브 시스템 그리고 AI 수요 확대다. ARM과 더불어 향후 소프트뱅크 그룹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게 AI 투자다. 실제 SVF는 그간 AI 분야에 1000억 달러 정도를 투자했다. 사실 수많은 AI 관련 회사에 천문학적 투자를 하고 있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예견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AI 기술은 고도화되고 시장은 점점 더 커지게 된다. 손 회장이 지난 40년 가까이 기술과 산업의 흐름을 미리 읽고 투자해 오며 세상을 놀라게 해온 결과를 유추해볼 때 AI 분야에서도 제2의 야후, 알리바바, ARM 같은 초거대 기업이 탄생할 가능성도 기대해볼 수 있다.

이렇듯 일본 기업 사상 최대 흑자와 최대 적자 기록을 모두 내며 롤러코스트를 타고 있는 소프트뱅크 그룹에 대해 일반 투자자들은 안정적인 기업 운영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손 회장은 어떤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며 기업을 운영해갈 것이라고 했다. 이번 결산 발표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그룹 회사 가운데 결제 시스템 회사인 페이페이(PayPay)를 올해 안에 상장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해 안정적으로 그룹을 운영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ARM이 과대 평가되어 있다는 측면도 향후 두고 볼 일이다.

또 일본은행의 금융정책에 따른 소프트뱅크 그룹의 리스크도 취약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소프트뱅크 그룹 자료에 의하면 1달러에 149엔이었던 지난해 9월말 기준으로 유동성 4조4000억 엔의 76%, 보유 주식 가치 18조4000억 엔의 84%가 달러 표시다. 만약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하고 엔고로 돌아서는 경우 환율의 순풍이 역풍이 될 수도 있다. 지난해 12월말 기준으로 순자산가치(NAV)가 19조2000억 엔을 유지하고 재무전략의 안정적인 운영 차원에서 적어도 2년에서 4년간 사채를 상환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시장의 경계심은 여전하다. NAV가 19조2000억 엔에 달하는데도 시가총액은 9조2000억 엔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주식값이 50% 정도 싼 이유는 무엇일까. 조 단위 흑자와 조 단위 적자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그룹에 대한 낮은 신뢰도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손 회장의 경영 스타일 리스크를 거론하기도 한다. 큰 흑자가 아니어도 되니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하는 회사가 되기를 바라는 목소리에 손 회장은 “자금의 문제는 방어할 수 있을 만큼 준비되었다. 드디어 반전의 기회를 맞이해 설레고 있다”며 다시 한번 비상에 대한 원대한 도전을 선언했다.

손 회장은 AI 시대를 맞아 인류의 삶을 바꿀 변화의 물결에 마지막 기업가의 인생을 걸고 있는 모습이다. “많은 날을 새벽까지 AI의 미래 사업 전략을 세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쓰나미처럼 닥쳐오는 기술과 산업의 변화 흐름 속에서 미래를 예측하고 확신하며 안정적인 경영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이런 격변의 투자 및 사업적 환경의 경험이 많은 회사들은 위기에 대처하는 내성이 그렇지 못한 회사보다 강할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경험이 많은 회사와 기업가가 바로 소프트뱅크 그룹이고 손정의 회장인 것이다. 2000년 IT 버블 붕괴로 인한 최악의 상황에서 기사회생한 손정의의 승부수는 과연 AI 투자에서 빛을 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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