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힘든 과정을 지도자가 함께하면 선수들도 진심을 느낀다”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18 16:00
  • 호수 1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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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원로 감독 김성근이 후배 지도자에게 전하는 당부
“단 한 명만 훈련에 나와도 낙담하지 말고 선수한테 기회를 만들어줘야”

야구 원로 김성근 감독(82)이 요즘 챙겨 보는 드라마는 《고려거란전쟁》(KBS 2TV)이다. 전쟁을 앞둔 이들의 치열한 머리싸움이 흥미롭다고 했다. 《고려거란전쟁》에서는 양규처럼 용맹한 고려 장수가 소수의 군사로 거란의 대군을 물리치는 장면도 나온다. 김 감독 또한 프로 사령탑 시절 하위권 전력에도 상위권 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곤 했다. 그는 현재 JTBC 예능 《최강야구》에서 최강 몬스터즈 팀을 이끌고 있다. 프로구단이 아니어서 대충 할 법도 하지만 김 감독의 지도철학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선수들이 없어도 홀로 훈련장을 지켰다”는 그의 투혼은 최근 축구계에서 근무 태만으로 큰 논란을 야기하고 있는 클린스만 국가대표 감독 사례에 비춰볼 때 깊은 울림을 준다.

ⓒJTBC 제공

은퇴한 프로야구 선수와 아마추어 선수들이 함께하는 최강 몬스터즈 야구팀을 이끌고 있다. 프로팀과 몬스터즈의 다른 점은.

“제일 다른 점은 프로팀 경기는 (시즌이) 끝나도 다시 할 수 있지만 몬스터즈는 승률 7할 이상이 아니면 다음 시즌이 없다. 숫자가 있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된다. 한두 번 지면 압박감이 온다. 집에 가서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많다. 제작진을 포함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인원이 200~300명인데 전부 내가 책임져야 한다. 공동운명체라는 생각에 없던 책임감도 생긴다.”

프로야구 시즌 중 경기가 없는 월요일에는 《최강야구》를 본다는 사람이 많다.

“《최강야구》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은 맞는 것 같다. 야구 안 좋아하는데 《최강야구》 보다가 야구팬 된 사람도 많아졌다고 한다. 시청층이 꽤 폭넓더라.”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이끌 때와 비교하면 어떤가.

“고양 원더스 때는 우리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선수들을 아침부터 밤까지 가르칠 수도 있었고, 프로 갈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어 1년 동안 이틀 이상 훈련을 쉰 적이 없었다. 하지만 몬스터즈 선수들은 스케줄이 겹쳐 훈련에 못 나올 때가 많다. 처음에는 화가 났는데 다른 밥벌이 활동도 해야 하니까 이제는 이해한다. 지난 1년간 참는 법을 많이 배웠다.”

날씨가 많이 추운 날에도 아마추어 선수를 위해 운동장에 나오신다고 들었는데.

“지난 1년간 훈련일에 가장 많이 나온 이가 나였다. 선수들이 한두 명 나왔을 때도 나는 내 자리를 지켰다. 몸살로 3일을 입원했는데도 다음 날 야구장에 나왔다. 아프다는 것을 겉으로 표현하는 이는 어른이 아니다. 작년에 몬스터즈 두 명의 아마추어 선수가 프로 입단을 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아이(김 감독은 선수를 ‘아이’라고 표현한다)를 잘 만들어서 미래를 주고 싶다. 아이의 손을 먼저 놓고 싶지는 않다. 단 한 명만 훈련에 나와도 낙담하지 말아야 한다. 그 순간이 그 아이한테는 기회일 수 있고, 그 기회 안에 미래가 있을 수 있다. 어른이 아이들한테 기회를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지도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목표치를 설정하고 나아갈 때 선수들은 반항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힘든 과정 속에 지도자도 함께하면 선수들이 ‘진심으로 가르쳐 주는구나’ 느끼더라. 그리고 나중에는 함께한 과정을 하나하나 돌아보게 된다. 과정의 힘은 세다. 몸으로 배우고, 머리로 배우고, 경험하며 배우는 것은 오직 그 선수만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친 선수가 많은 팀이 결국 강한 팀이 된다. 선수가 헤맬 때 몇몇 지도자는 ‘걔 못 쓴다’고 얘기한다. 평가는 쉽다. 하지만 아이들이 안 좋을 때 어른들이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느냐. 결국 필요한 것은 어른, 지도자의 각성이다. ‘내가 잘못 가르쳤구나’ 하는. 그 과정을 되짚어봐야 한다.”

JTBC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에 감독으로 합류한 김성근 감독이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두산 베어스와의 이벤트 경기를 앞두고 박찬희의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JTBC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에 감독으로 합류한 김성근 감독이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두산 베어스와의 이벤트 경기를 앞두고 박찬희의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감독은 계속 고민하는 자리…오래 하려 해선 안 돼”

과거 프로구단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 때를 돌아보면 《고려거란전쟁》처럼 약한 전력을 갖고 강팀을 상대했었다.

“쌍방울 시절 선발투수가 1회에 공 5~6개 정도 던지는 것을 보고 좋지 않으면 바로 불펜에 다른 투수를 준비시켰다. 모두가 미친 야구라고 했다. 하지만 그 준비 때문에 쌍방울은 살 수 있었다. 100원짜리 전력으로 1000원짜리 전력의 상대를 이기려면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하고 움직여야만 한다. 순간 속에 들어가면 길이 보인다. 상대 벤치의 움직임을 간파하면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매 경기마다 고민했다. 문제에 부닥쳤을 때 피하려고 하는 사람은 ‘하지 말자’라고만 한다. 하지만 맞서려는 사람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내려고 한다. 순간순간에 부닥쳐야만 해결책이 나온다.”

한국 프로야구 얘기로 돌아오면,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아시아 선수 포스팅 최고액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이 아시아 내야수 최초로 골드글러브도 받는 등 국내 출신 선수들의 기량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1991년 한일 슈퍼게임을 할 때만 해도 한국 야구가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 베네수엘라로 국제경기를 하러 가서 야구를 배워 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국내에서 야구로 돈을 벌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돈만 봐서는 안 된다. 그 자리까지 가기 위해,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해당 선수들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살펴봐야만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돈에 가까워지면 명예도 생각해야 한다. 야구가 아니라 돈에만 가까워지면 안 된다.”

KIA 타이거즈가 최근 이범호 감독을 선임하면서 1980년대생 프로 사령탑이 등장했는데(이범호 감독은 1981년생이다).

“세대가 바뀌는 흐름이다. 올 시즌 그라운드가 꽤 활발해질 것 같다. 일본 소프트뱅크 호크스 코치고문으로 있을 때 코치 연수를 온 이범호 감독을 본 적이 있다. 굉장히 공부를 많이 하더라.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어떻게 야구를 해갈지 흥미롭다. 하지만 다른 감독들보다 2주 늦게 스타트를 끊어서(스프링캠프 도중 감독에 선임됐기 때문) 부담이 많이 될 것이다. 지금부터 시즌 구상을 해야 하니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선수들도 부담을 느낄 것이고.”

프로 사령탑으로 첫발을 떼는 이범호 감독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

“감독은 계속 고민하는 위치에 있다.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야구를 했으면 좋겠다. 감독 자리를 오래 하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처음부터 살려고만 하면 방법이 안 나온다. 조마조마해지고 초조해진다. 부담이야 누구나 있는 것이다. 그 부담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가 문제다. 하나하나가 편한 점이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고통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장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올해 프로야구를 살짝 예상해 준다면.

“제일 좋은 팀은 LG와 롯데다. LG는 작년 우승팀이고 롯데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야구를 할 것이다. 어느 순간까지 그 흐름을 이어갈지가 문제다. KIA는 감독 바뀌기 전후가 다르기 때문에 물음표다. 한화는 흐름을 타면 재밌는 팀이 될 것이다. 올해는 10개 구단이 모두 불안한 상태에서 시즌을 시작한다. 페넌트레이스 흐름을 어떻게 타는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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