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길’ 걷는 한동훈, ‘한동훈의 길’ 막는 윤석열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02 10:00
  • 호수 1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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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공천 전쟁’…한동훈, 尹의 ‘보완재’ 대신 ‘대체재’ 되길 원해
‘운동권 심판론’ 명분, 유승민·윤희숙·호준석·김경율 등 전진배치도

‘검찰총장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팔 할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라는 말이 있다. 살아있는 권력에 물러서지 않고 정권의 ‘역린’을 끝까지 파고들어 국민에게 ‘공정과 상식’이라는 정치적 자산을 부여받았다는 서사다. ‘법무부 장관 한동훈’을 집권여당의 수장(비상대책위원장)까지 끌어올린 것도 민주당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재명의 민주당’과 사법 리스크 등으로 끊임없이 맞붙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대위원장 한동훈’을 미래 권력으로 만들고 있는 장본인은 누굴까. 다른 누구도 아닌 윤석열 대통령이다. 초유의 ‘윤석열-한동훈 대충돌’은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갈등을 빚는 구도를 만들어냈다. 역설적이다. 살아있는 권력이 된 윤 대통령은 지키는 자가 됐고, 누구도 건드리지 말라는 ‘역린’을 만들어냈다. 미래 권력으로 떠오른 한 위원장은 파고드는 자가 됐고,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던 역린을 짚어내고 있다. 지금 ‘윤석열의 길’과 ‘한동훈의 길’은 교차하고 있다. 

1월23일 화재 현장인 충남 서천군 서천특화시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현뉴스
1월23일 화재 현장인 충남 서천군 서천특화시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미래 권력’ 한동훈을 만든 건 ‘현재 권력’ 윤석열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윤석열-한동훈 대충돌’은 “이러다 공멸한다”는 우려에 서둘러 봉합되는 수순을 밟았다. 이른바 ‘3인 회동’(1월21일)으로 촉발된 초유의 당정 충돌 사태가 ‘충남 서천 회동’(1월23일)과 ‘2시간37분 용산 회동’(1월29일) 등으로 정리된 것이다. 국민의힘은 물론 대통령실에서도 “지금 한동훈 체제를 뒤집으면 총선은 해보나 마나”라는 위기감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현재 권력 윤석열과 미래 권력 한동훈의 운명은 묘하다. 총선이 치러지는 4월10일까지는 운명공동체다. 2인3각 공조로 총선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 모두에게 최선의 시나리오다.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한 지붕 두 가족’ 동거는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시간을 두고 ‘질서 있는 권력 이양’ 시나리오도 가능해질 수 있다. 

총선에서 패배한다면 경우의 수는 복잡해진다. ‘공동 책임’에 내몰릴 수도 있지만, ‘레임덕’이라는 권력 누수 현상을 걱정해야 할 윤 대통령이 입을 정치적 내상이 훨씬 더 크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계속되는 ‘여소야대’ 상황에 여당은 재차 비대위 체제로 운영될 것이며, 새로운 여권의 구심점을 두고 한 위원장과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안철수 의원, 원희룡·나경원·유승민 전 의원 등 차기 대권주자들 간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때 한 위원장이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하며, 윤 대통령을 넘어서려는 시도도 펼쳐질 수 있다. 특히 한 위원장이 ‘김건희 리스크’ 같은 윤 대통령의 역린을 정면 겨냥하며 살아있는 권력과 맞붙는 ‘윤석열의 길’을 걷는다면 정국은 요동칠 수 있다. 막강한 현재 권력과 맞붙기 위해 한 위원장이 유승민 전 의원 같은 차기 대권주자와 ‘전략적 동맹’을 맺고 ‘한시적 동거’를 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충돌하는 시간은 총선 후가 아니라 총선 전에 올 여지도 있다. ‘윤석열의 사람들’과 ‘한동훈의 사람들’을 두고 공천 전쟁이 펼쳐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4·10 총선은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정치적 명운을 가를 게 틀림없다. 두 사람 모두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양보 없는 공천 전쟁을 해야 하지만, 총선까지는 서로에게 서로가 필요하다. 아직 헤어질 결심은 이르다. 총선 후에는 그 결과에 따라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뒤바뀔 수도 있다.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정면충돌이 예상보다 빠르게, 강도 높게 펼쳐질 수도 있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다양한 경우의 수와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 있다. 두 사람의 운명은 한국 정치의 앞날에도 중대한 변수다. 시사저널이 그 앞길을 미리 펼쳐본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이 1월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왼쪽 두번째), 윤재옥 원내대표(맨 왼쪽) 등과 오찬을 함께하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첫 번째 화약고, 한동훈의 공천 ‘마이웨이’ 

여권에서는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총선 과정에서 ‘공천’을 두고 다시 정면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을 많이 내놓는다. 이판사판 갈등의 끝을 보기엔 총선에서 공멸의 위험성이 너무 커 서둘러 봉합했지만, 두 사람 모두 공천 문제는 양보할 수 없는 이슈이니만큼 더 큰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갈등의 화약고는 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사천(私薦)’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정면충돌했던 1월말이나 갈등이 봉합된 이후인 2월초나 공천 문제에서는 계속 ‘마이웨이’를 고집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친윤계가 계속 요구하던 김경율 비대위원에 대한 조치를 여전히 취하지 않고 있다. ‘90도 폴더 인사’(태도)와 ‘침묵 모드’(디올백 논란) 등 갈등의 불씨가 다시 커지지 않게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대신 한 위원장은 ‘싸움의 기술’을 바꿨다. 한 위원장은 ‘마이웨이 공천’ 기조는 유지하면서도 ‘프레임 전환’을 통해 윤 대통령과의 확전은 피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한 위원장이 원희룡 전 의원과 김경율 비대위원을 각각 인천 계양을과 서울 마포을에 사실상 공천하겠다고 내비쳤을 때는 별다른 싸움의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와 정청래 최고위원이라는 상대방을 고려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한 위원장은 ‘86 운동권 심판론’이라는 명분과 구도를 앞세우며 마이웨이 공천을 계속 시도하고 있다. 야당의 정권심판론에 맞서 운동권 심판론(명분)을 내세우면서 자신이 원하는 인물(실리)들로 하여금 86 운동권 대표주자들에게 도전장을 내게 만드는 식이다. 대표 사례가 바로 서울 중·성동갑에 출마하는 윤희숙 전 의원이다. 한 위원장은 “임종석과 윤희숙 (중에) 누가 경제를 살릴 것 같은가”라고 했다. 

이런 흐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영입인재로 최근 입당한 호준석 전 YTN 앵커는 이인영 전 통일부 장관의 지역구인 서울 구로갑에,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은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 김민석 의원의 서울 영등포을 출마를 각각 선언했다. 출마 선언 시기와 지역구 선정이 절묘한데, 이런 맞춤형 공천은 한 위원장이 주도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각을 세워왔던 유승민 전 의원도 끌어안아 ‘중수청’(중도층·수도권·청년층)에 어필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유 전 의원은 5선의 안민석 민주당 의원의 지역구인 ‘험지’ 경기 오산 출마도 거론되고 있다. 여권의 전략통들은 한 위원장의 이런 싸움의 기술이 여러 포석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봤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한 위원장이 추후 대통령실과 검찰 출신 친윤 인사들에게 ‘운동권 심판론이라는 절대적 기준에 맞는 지역구에 가야지, 왜 영남권 양지로만 몰리냐’라고 묻는다면 친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2023년 11월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가 공개한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 영상의 한 장면 ⓒ서울의 소리 유튜브 화면 캡쳐

尹의 역린 ‘김건희 리스크’ , 韓 ‘정면돌파’ 여부 주목

총선 전후에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결별한다면, 그 갈등의 핵에는 ‘김건희 리스크’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윤석열-한동훈 대충돌’의 근본 원인도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에 대한 대응 방향의 차이였다. 갈등이 봉합 수순에 접어들었지만, ‘디올백 논란’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등에 대한 이견 조율 없이 상황이 정리된 만큼 여론의 추이에 따라 양측의 갈등은 언제든 다시 비화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여권 내부에서는 양측이 김건희 리스크를 바라보는 시선부터 문제 해결 방식까지 모두가 평행선을 달리는 만큼 뇌관이 터진다면 예상보다 크게 터질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디올백 논란’은 의도적인 ‘함정 몰카’ 공작이고, 이런 공작에는 정부의 국정을 흔들려는 의도가 있다는 데 방점을 찍는다. “김 여사는 피해자”라는 친윤계의 메시지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당연히 대응도 ‘사과’보다는 ‘해명’에 무게중심이 실린다. 반면 한 위원장은 ‘국민 눈높이’에 집중한다. 여론조사에서 읽히듯 국민 상당수가 부정적 입장을 가진 만큼 사과가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 

이런 온도차에는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가진 정치적 자산의 차이도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현재 한 위원장의 지지층은 크게 보면 두 세력으로 압축된다. 윤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한 위원장을 동시에 지지하거나,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철회했지만 한 위원장에게는 호감을 보이는 세력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후자에는 중도보수와 중도층이 포함돼 있다. 미래 권력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한 위원장으로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정치적 영토다.

무엇보다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중도층을 포섭하는 외연 확장은 필수적이다. 한 위원장 입장에서는 ‘명분’과 ‘실리’ 모두를 챙길 수 있는 카드지만, 윤 대통령의 분명한 ‘역린’을 건드린다는 리스크도 고려해야 한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한 위원장이 ‘윤석열의 길’을 걷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서야만 이 문제를 정면돌파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총선 이후 여권의 잠룡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전략으로 ‘김건희 리스크’를 들고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만약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한다면, 한동훈 위원장은 물론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안철수 의원, 원희룡·나경원·유승민 전 의원 등 차기 대권주자들의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질 수 있다. 이 순간 ‘여당 안의 야당’으로서 꺼내들 수 있는 카드가 김건희 리스크 대응에 소극적인 윤 대통령에 대한 공세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여권의 잠룡으로 평가되는 인물 대다수는 윤 대통령과 정치적 거리감이 상당하다. 딱히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빚을 진 게 없는 만큼 이때의 공세는 예상보다 강하고 날카로울 수도 있다. 원희룡 전 의원 정도만 예외다. 

한 여권 관계자는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간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역사적 필연”이라면서 “한 위원장 입장에서는 ‘우리 국민이 두 번 연속 검사 출신 대통령을 뽑을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고 싶을 거다. 그렇다면 한동훈의 길은 정해져 있다고 봐야 한다. 시기의 문제다. 그는 언제고 윤석열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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