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승부수⑤] 트럼프, ‘주한미군 전격 철수’ 카드 꺼낼까
  • 김원식 한국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07 11:00
  • 호수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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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의 미묘한 기류 변화…북·미 협상 맞물려 현실화 가능성

“국방부는 ‘현재’ 주한미군의 숫자를 감축하는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크리스토퍼 로건 미 국방부 동아시아 담당 대변인이 최근 주한미군의 전격 감축·철군 가능성에 관해 기자에게 내놓은 답변이다. 기자는 본능적으로 그의 답변에서 ‘현재(currently)’라는 단어가 눈에 확 들어왔다. 사실 2년 가까이 기자와 질의·응답을 반복해 온 로건 대변인은 어떤 질문에 어떠한 답변을 내놓을 것이라고 예상할 정도로 익숙하다. 그가 보낸 위의 답변도 그냥 넘어가면 되지만, 기자는 그럴 수가 없었다. 물론 그는 “(한·미) 동맹은 강하다”는 말도 잊지는 않았다. 하지만 2년 전만 하더라도 한·미 관계에 관한 질문이라면, ‘철통같은(ironclad)’을 강조하던 때와는 사뭇 뉘앙스가 달랐다. 그만큼 주한미군의 감축·철군 가능성이 ‘말도 안 되는(ridiculous)’ 질문에서 어느새 ‘미묘한(delicate)’ 질문으로 바뀌고 만 것이다.

그 중심에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 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미 국방부는 시리아 주둔 미군의 감축은 물론 철군 가능성에 관해서도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두세 달도 지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은 전격 철군을 명령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한미군 감축·철군 문제를 답변해야 하는 로건 대변인 나름의 고충이 묻은 답변이었다.

 

최근 주한미군 철군 가능성을 둘러싼 백악관의 미묘한 변화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 AP 연합
최근 주한미군 철군 가능성을 둘러싼 백악관의 미묘한 변화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 AP 연합

주한미군 전격 감축·철군 가능 증거들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집무실에 불려간 미군 장성들이 일관되게 말하는 내용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겐 도저히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군부 장성들이 ‘전략적 동맹’의 이해관계를 설명해도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구름 잡는 이야기 그만하라’는 식으로 몰아붙인다는 것이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주둔이 중국 견제를 통해 장기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해도 “중국과의 무역적자가 얼마, 일본·한국과의 무역적자가 얼마인데 당신 월급으로 감당하겠느냐”고 일축한다는 것이다.

최근 시리아 주둔 미군의 전격 철군 사태를 둘러싸고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이 “동맹을 중시하라”며 사표를 던진 것이 이러한 사실을 대변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주둔 미군의 전격 철군을 명령하자, 세계의 시선은 북·미 협상의 소용돌이에 서 있는 주한미군의 위상에 쏠리고 있다. ‘한다면 한다’는 그가 어쩌면 북·미 협상의 진행과 맞물려 주한미군 감축·철군 카드를 전격적으로 꺼내 들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고 있는 셈이다. 

과연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철군 카드를 꺼낼까. 이 질문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증거는 차고도 넘친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이나 공약의 ‘호불호(好不好)’가 아니다. 그는 지지자들에게 한번 내뱉은 말을 공격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파리기후협약 탈퇴나 이란과의 핵협정 파기가 대표적이다. 이미 대선후보 시절부터 “중동의 경찰 노릇은 그만두겠다”며 약속한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를 전격 단행했다. 이어 아프간 주둔 미군마저 줄이고 있다. 최근엔 “세계 경찰 노릇을 관두겠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이미 대선후보 시절인 2016년 3월에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나 일본이 (방위비) 증강에 상당한 기여를 하지 않을 경우, 미군을 철수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 그런 일이 행복하지는 않지만, 나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같은 입장을 줄기차게 펼치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 펜타곤(국방부)에 주한미군 병력 감축 옵션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보도까지 나와 파문이 일었다. 이는 단순히 주둔 비용 부담금 인상만을 요구하는 목적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필요할 때 항공모함으로 가면 되지, 주둔해야 할 이유를 설명해 보라”고 군부 장성들을 다그쳤다는 말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한마디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입장에서 미국 내부 문제에 우선해야지, 굳이 미군을 주둔시키면서까지 타국 방어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2018년부터 시작된 북·미 관계 개선 기류는 주한미군 철군·감축 카드에 기름을 부은 것으로 분석된다. 그는 6·12 북·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언젠가는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싶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물론 “당장은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국이 주둔 비용을 과다하게 부담하고 있다는 토를 달기는 했다. 주한미군의 전격 감축·철군 가능성에 관해 워싱턴의 한 외교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이만큼 흥미 있는 카드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 카드가 한반도 상황과 맞물려 돌아간다면, 더블 스코어를 줄 수 있다”며 “평화를 달성했다는 이미지와 함께 해외 주둔 미군의 본토 복귀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격 감축·철군 카드’ D데이는?

트럼프 대통령은 과연 이 카드를 언제 써먹으려고 할 것인가. 대다수 전문가들은 그가 재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따라서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펼쳐지는 2020년을 앞두고 이 카드를 사용할 가능성이 유력하게 전망된다. 그동안 그의 발언 내용을 잘 살펴본다면, 최근 한국과 논란이 되는 주둔 비용 인상 문제는 문젯거리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한화로 몇천억원이나 몇조원 단위의 승부에 집착할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미국 측이 주한미군 방위비 협약 기간을 기존 5년에서 1년으로 하자고 했다는 보도가 매우 의미심장한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인상해 주지 않으면, 그냥 1년짜리 협약만 하라”고 말했을지 모른다. 내심 더욱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미 후보 시절부터 주장해 온 주한미군의 전격 감축·철군 카드를 재선을 위해 써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북·미 협상이 성과를 나타내고 대선과 맞물린다면, 전격적인 최종 합의를 발표하면서 내놓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에 관해 다른 외교 전문가는 “미국 내부는 물론 당사국 한국이나 우방의 반대도 없는 매우 역사적인 상황이 될 것”이라며 “한국이 주한미군 철수 이후를 대비해야 하는 것은 가정이 아니라, 현실이 돼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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