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끝이 쉽게 보이지 않는 이유
  • 박노벽 전 러시아·우크라이나 대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2.18 08:05
  • 호수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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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극명히 다른 전쟁 지향점과 상호 신뢰 부재 뿌리 깊어
크림반도 공방이 화약고 될 듯

전쟁이 시작된 지 10개월째로 접어들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교전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겨울 들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요충지인 바흐무트에서 러시아군의 집중포화와 우크라이나군의 대응 공격이 격화하고 있다. 지난 10월초 이래 러시아 측은 크림반도로 이어지는 교량 폭파 이후 우크라이나의 전력망 200여 곳을 공습했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국민 600여만 명이 단전과 단수, 난방 중단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군은 사기 저하는커녕 러시아군이 재충전할 수 있는 잠정적인 휴전마저 거부하며 전의를 다지고 있다. 심지어 러시아군이 점령한 도네츠크의 수도관과 송전선을 폭파하는 맞대응을 하고 있다. 이러한 우크라이나군의 대응으로 러시아는 지난 2월 교전 이후 점령했던 지역의 상당 부분에서 물러났다. 우크라이나군은 여세를 몰아 서방으로부터 무기와 겨울나기 지원을 받아 겨울철 동토를 이용해 기계화 부대의 동원전투를 전개할 의지를 갖고 있다.

11월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차시우야르에서 한 주민이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를 지나치고 있다. ⓒAP 연합

서방의 우크라 지원 지속 가능 여부가 관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조기에 끝나지 못하고 장기화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은 정치적 신념과 가치 측면에서 전쟁 지향점이 다르다.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지도부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제국과 구소련 시대에 걸쳐 자신들의 역사적 영향권에 속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독자적 정체성과 국가로서의 타당성을 부인하고 있다. 더욱이 우크라이나가 나토 영향권에 놓일 경우 안보에 위협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크렘린은 우크라이나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세계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한 서방의 획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지도자들과 국민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러시아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30년간 쌓아온 주권과 자유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 서방국가들은 주권과 독립, 영토 보존에 대한 국제법 원칙, 그리고 국가 정책으로서 무력 사용을 포기한다는 약속을 무시한 채 국경을 마음대로 바꾸려는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행동을 강력히 응징해야 더 큰 전쟁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호 타협하는 현실 정치 논리가 들어설 여지는 없다.

둘째, 전쟁을 수행 중인 쪽에선 타협보다 전쟁을 통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게 되면 대개 전쟁을 지속하기 마련이다. 푸틴은 군사작전이 긴 과정이 될 것이며, 제정 러시아 시절의 페테르 대제가 스웨덴 왕국에 대한 승전으로 이룬 영토 확장이나 아조프해로 나아가기 위해 추구했던 활동이 지금의 전쟁 목표 수행과 유사하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최근 러시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대체로 전쟁을 지지하는 의견(25%)보다 평화협상 개시를 선호하는 견해(55%)가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여론을 근거로 푸틴을 향해 정책의 변경을 요구할 정도로 러시아 내 조직화된 정치세력은 보이지 않는다.

셋째, 각 전쟁 수행국들이 자국의 전력에 대한 평가와 한계에 대해 명확한 인식을 갖기 어려운 불확실한 상황에선 전쟁이 지속되기 마련이다. 크렘린은 18만 병력을 배치해 시작한 특별군사작전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지난 9월에는 30만 명의 부분 동원령을 내렸다. 동원된 예비군들이 훈련 이후 모두 충원되는 오는 3월경에야 그 효과 여부를 제대로 판별할 수 있다.

반면 서방의 무기와 경제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전력은 서방 각국의 국내 정치 상황에 달려 있다. 미국 중간선거 결과 공화당의 하원 장악과 유럽연합의 우크라이나 대규모 지원에 대한 헝가리의 반대 사례처럼, 지원의 지속 여부는 우크라이나가 앞으로 러시아군을 완전히 퇴각시킬 수 있느냐를 가름할 핵심요소다. 이에 대해 G7 국가들은 지난 10월 러시아군 철수와 우크라이나의 정의로운 평화(a just peace) 달성을 위해 지속적인 군사·재정·외교·법적 지원을 다짐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양국은 평화협정 체결 시 이를 지속할 수 있는 상호 신뢰의 기반과 방식을 갖지 못하고 있다. 8년 전 발생한 돈바스 분쟁을 타개하기 위해 휴전과 함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정치적 타협을 위한 민스크 국제 합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전쟁이 발생했다. 이러한 나쁜 선례는 양국이 평화협정 개시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하며, 타협 방안을 찾는 과정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러시아의 재침공을 막기 위해 이젠 중립에서 벗어나 헌법상에 명기된 나토 가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공격이 주요 분수령

앞으로 전개될 긴 전쟁 과정에서 여러 불확실한 요소가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크림반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공격과 푸틴의 전술핵무기 사용 문제는 향후 전쟁 전개에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가 자국 영토인데 러시아에 의해 불법 점령돼 있다고 본다. 반면 푸틴과 대다수 러시아 국민은 2014년 크림반도 합병으로 러시아의 역사적·정신적 영토를 되찾았다고 본다. 그러면서 그것이 푸틴의 정치적 치적일 뿐 아니라 흑해함대 주둔 지역으로서 전략적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크림반도에 대한 공방이 있을 경우 양측 간 격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푸틴의 핵무기 언급은 지속적으로 국제적 관심을 촉발해 왔다. 다행히도 푸틴은 10·27 국제외교전문가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정치적·군사적 의도가 없다고 언급했다. 또한 그는 “러시아를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경고한 것은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한 영국 측 발언에 따른 대응이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핵무기로 공격받는 경우뿐만 아니라 국가 존립에 위협이 되는 재래식 공격에 대해서도 핵무기를 사용하는 독트린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무엇이 이에 해당하는지는 여전히 푸틴의 판단, 그리고 그가 러시아 내 강경파 입장을 얼마나 억누를 수 있을지 여부에 달려 있다. 미국 등 서방과 러시아는 핵무기 사용 시 발생할 파국적 결과에 대해 충분히 교감하며 핵무기가 사용되지 않도록 억제하는 협의를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측면에서 G7과 유럽연합은 지난 12·10 대러시아 제재조치를 강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러시아산 원유 구매에 대해 배럴당 60달러로 가격 상한제를 도입, 그 이상으로는 구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러시아는 이에 반발해 원유 생산량을 줄이며 가격 상승을 유도하려 했으나, 유가는 12월 현재 배럴당 70달러 선으로 하락해 있다. 유가 변동은 전쟁 외에도 코로나19 여파가 있으며, 특히 중국의 코로나19 제로 정책이 더디게 완화되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전쟁 지속으로 인해 세계 질서는 점차 분절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 전개되는 세계는 미국 외에 중국·유럽연합·러시아·인도 등이 국제적 영향력 확대를 두고 경쟁하는 다극화 시대다. 강대국 간 전략적 경쟁에서 신(新)냉전과 같은 블록화된 대립 구도가 출현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로선 바람직하다. 우리도 합의된 규범에 기초해 국제평화와 한반도 안정을 이루기 위해선 관련국들과 교류를 갖고 나름의 역할을 해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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