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연쇄 성폭행범 박병화 집 앞에 밥과 김치 가져다주겠나”
  • 구민주·김종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3.01.06 10:35
  • 호수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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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창배 수기3리 이장 “제발 집 밖에 나오지 말라는 마음에서”
“신입생들 몰려와 방 구할 시기인데 ‘박병화 논란’에 온통 ‘빈 방’뿐”
“대책 마련 시급…악순환 끊으려면 출소 후 갱생시설서 머물게 해야”
이창재 화성시 수리3리 이장을 비롯한 시민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해 12월27일 국회에 방문해 연쇄 성폭행범 박병화의 퇴거를 요구하는 건의문을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재 화성시 수리3리 이장을 비롯한 시민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해 12월27일 국회에 방문해 연쇄 성폭행범 박병화의 퇴거를 요구하는 건의문을 제출하고 있다. ⓒ화성시

박병화가 오고 나서 모든 게 변했다. 연쇄 성폭행범 박병화가 출소한 지 세 달째가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그가 머물고 있는 경기 화성시 주민들은 불안과 고통 속에 지내고 있다. 화성시 주민들과 학부모들은 그의 거주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계속해서 내고 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의 집을 24시간 지켜보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뾰족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시사저널은 1월3일 박병화가 머물고 있는 화성시 봉담읍 수기3리의 이장을 맡고 있는 이창배씨를 인터뷰했다. 이씨는 밤낮으로 박병화 집 근처를 순찰하고 국회와 법무부 등을 찾아 대책 마련을 촉구하다보니 건강이 많이 상했는데, 많은 주민들이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특히 원래 이 지역은 인근 대학의 학생들이 다수 거주하는 원룸촌인데 박병화 논란 때문에 신학기임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계약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빈 방이 수두룩하다고 토로했다.

박병화의 현재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나.

“두문불출하고 있다. 누가 왔다 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부모가 가끔씩 들러서 먹을 것을 넣어주고 가는 것 같다. (기가 차다는 듯) 주민들이 박병화한테 김치도 가져다주고 있다. 문 앞에 놓고 온다. 누가 좋아서 이렇게 하겠나. 제발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마음인 것이다. 박병화의 현관문이 보이도록 근방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두고 늘 돌아가면서 모니터링하고 있다. 살짝 문을 열고 주민들이 두고 간 음식을 가지고 들어가는 모습은 몇 번 보였다.”

지역주민들의 고통과 피해가 클 텐데.

“심적·경제적 고통은 말도 못한다. 제일 큰 타격은 동네가 원룸촌인데 빈 방이 많이 생겼다는 것이다. 외부에서 집을 보러 동네에 왔다가도 곳곳에 걸려 있는 (박병화 퇴거 요구) 현수막을 보고서는 다 돌아가 버린다. 지금 한창 대학 입학 예정인 신입생들이 이 동네에 방을 보러 오는 시기다. 그런데 한 사람도 안 온다. 최근 이 일대에 신규 부동산 계약 자체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빌라 주인들이 울고 싶을 것이다.”

집회는 계속 진행 중인가.

“박병화 출소 직후 지난달까지 두어 달 동안 단체 집회를 꾸준히 했다. 하지만 집회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민원도 계속 접수돼서 지금은 중단한 상태다. 집회를 매일 연다고 해서 자동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 일단 중단했다.”

어떤 대책을 마련해 두었나.

“골목골목마다 초소를 네 군데나 설치해뒀다. 지금 경찰들은 인근 수원대 주차장에 기동버스를 주차해놓고 하루 종일 인근에 보초를 서고 순찰을 돌고 있다. 그 한 사람 때문에 드는 사회적 비용이 대체 얼마인가. 동네를 다니다보면 항시 경찰들과 마주친다. 박병화 집도 CCTV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 비용은 또 얼마인가. 다 세금이다. (그럼에도) 연쇄 성폭력범이고 프로파일러들이 박병화의 재범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는 상황에서 주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1월3일 오전 박병화가 거주하는 경기도 화성 봉담읍 소재 대학가 원룸촌 인근에 특별치안센터가 설치돼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1월3일 오전 박병화가 거주하는 경기도 화성 봉담읍 소재 대학가 원룸촌 인근에 특별치안센터가 설치돼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지역주민들은 박병화가 여기로 온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나.

“출소 당일까지도 정말 까맣게 몰랐다. 원룸 주인 이야기를 들어보니 출소 날 아침 갑자기 까만 차가 들어와서 몇 명이 잠시 서서 이야기하더니 그대로 박병화가 들어가서 살기 시작했다는 거다. 박병화가 누군지 그제야 알게 된 거다.”

갈등이 심각했겠다.

“며칠 전에 부모가 대신 계약할 때도 전혀 알 수 없었다. 주인도 지금 나가라고 소송을 걸었는데 쉽지 않은 것 같다. 일단 1년 계약을 했으니 1년 뒤 재계약 시기에 나가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렇게 나가면 또 어디로 가겠나. 걱정이 계속 되는 거다. 빨리 대책을 세워줘야 한다. 출소 예정인 성범죄자들이 상당히 많은데, 그때마다 지금 우리 동네 상황이 여기저기 반복되면 안 되지 않나.”

무조건 쫓아내는 게 답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당연하다. 박병화가 다른 동네로 옮겨가면 그 동네가 또 쑥대밭이 되지 않나.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결국 법과 제도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출소하면 갱생시설 같은 곳에서 머물게 하면서 확실히 감시하면 지금 우리 주민들처럼 불안에 떨며 피해보는 경우가 없어지지 않을까 한다. 다른 동네로 가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건데 그게 (근본적인) 답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지역주민들이 국회를 찾았다.

“최근 우리 지역주민들이 국회를 방문해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 전에는 법무부도 방문했다. 제가 박병화 때문에 체중이 급격하게 빠졌다. 하도 신경을 쓴 것도 있고, 밤낮으로 순찰 돌고 지켜보고 여기저기 다니다보니 지난 두 달 동안 몸이 많이 상했다. 많은 주민들이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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