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트럼프, 유럽을 강타하다
  •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20 14:26
  • 호수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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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와 싸우는 트럼프…“EU는 적” 그 속에 숨은 ‘미국 우선주의’

 

“‘미국 우선주의’를 모토로 삼는 트럼프는 다른 국가를 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떻게 오랜 동맹을 적으로 돌리나, 오히려 국가 이익에 반하는 일이다.”

 

최근 미국 내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일단이다. 7월16일(현지 시각) 핀란드 헬싱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끝으로 마감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럽 순방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사고뭉치’ ‘기행의 달인’으로 불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순방 과정에서도 “EU(유럽연합)는 적(foe)이다”라는 발언으로 동맹국은 물론 세계를 뒤흔들었다.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선 탈퇴를 협박하며 회원국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독일에선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향해 독일이 러시아의 가스 도입을 위해 추진하는 사업을 언급하며 “독일이 러시아의 포로가 됐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영국에선 테리사 메이 총리의 정치적 반대파이자 최근 사임한 보리스 존슨 전 외무부 장관을 “훌륭한 (차기) 총리감”이라며 메이 총리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마지막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선 미국 정보기관의 평가도 무시하며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며 한목소리로 부인했다. 또 푸틴 대통령을 ‘경쟁자’라고 부른 것은 칭찬의 의미였다고 말해 동맹국들의 눈을 더욱 번쩍 뜨이게 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우방 국가들을 향해 날 선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6월9일 캐나다에서 열린 G7 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의 표정은 최근의 분위기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AP 연합


 

미국 내에서도 ‘후폭풍’에 직면한 트럼프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 대통령이 다녀간 유럽은 마치 허리케인이 지나간 듯한 혼란에 빠졌다. EU에 속한 국가들은 큰 충격에 빠진 상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 가까이 미국의 우방이었던 유럽 국가들을 ‘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우방에 폭탄을 던진 셈이다. 

 

반면 오랜 적국인 러시아 대통령하고는 ‘짬짜미’를 한 듯 우호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지만 뾰쪽한 대응책 마련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 대통령이 싫다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에 등을 돌린다면 러시아의 안보 위협을 방어해 줄 마땅한 우산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 소련의 영향권에 있다가 서방 민주주의를 향해 나온 동유럽 국가들은 나름 속앓이만 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오락가락 행보는 유럽 국가들을 더욱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NATO 탈퇴를 협박했다가 회원국들이 방위비 분담 약속 이행 의사를 밝히자 다시 칭찬으로 돌변했다. 유럽연합을 ‘적’으로 규정했다가도 통상(trade) 관점에서 한 말이라며 “이들 국가를 좋아한다”고 해명했다. 메이 영국 총리를 비난했다가도 막상 정상회담 자리에선 “존경한다”고 말한 것은 약과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두둔했다가 후폭풍이 거세지자 미국에 귀국해선 “내가 말을 잘못했다”며 다시 러시아 책임론을 강조하기도 했다. 

 

현실적인 적국인 러시아가 아니라 기존 동맹국인 유럽 국가들을 뒤흔들고 온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이 미국 내에서도 혹평에 휩싸이는 것은 당연하다. 후폭풍은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다. 코츠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성명을 통해 “러시아가 2016년 대선에 개입했다는 우리의 평가는 분명하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미 정보기관의 현직 수장이 자국의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평소 친(親)트럼프 매체인 폭스뉴스의 진행자도 “미국 대통령이 우리의 가장 큰 적, 상대국, 경쟁자에게 최소한의 가벼운 비판조차 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야당인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2013년 모스크바 방문 당시 성관계 동영상을 러시아 정보당국이 갖고 있다는 이른바 ‘트럼프 X파일’ 의혹을 다시 부각시키려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언가 러시아에 책을 잡힌 게 회담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집권 공화당도 싸늘한 시선으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혹평 대열에 가담했다. 공화당 서열 1위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리 동맹국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며 “러시아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와 이상에 적대적”이라고 지적했다. 

 

7월12일(현지 시각)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탄 헬리콥터가 영국에 있는 미국 대사관저에 착륙 중인 가운데, 반(反)트럼프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AP연합


 

사업가식 ‘마이 웨이’, 성공할까

 

평소 트럼프 비판 진영의 매체들은 더욱 극렬한 비난을 쏟아냈다. 뉴욕타임스(NYT)도 칼럼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미합중국의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취임 선서를 버렸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CNN 방송의 앵커도 “미국 대통령으로선 가장 수치스러운 행동 가운데 하나”라고 맹비난했다. 유럽 순방 결과를 놓고 예상외의 거대한 후폭풍이 몰아치자 백악관 참모들도 상당히 당황한 분위기다. 더구나 트럼프 지지층에서도 혹평이 이어지자 트럼프 대통령도 처음으로 ‘말실수(misspeak)’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파문 차단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적인 말실수를 되풀이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의 머릿속엔 온통 ‘미국 우선주의’라는 개념하에 모든 것을 ‘협상(deal)’으로 간주하는 기본적인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오직 협상만을 염두에 두는 트럼프 대통령에겐 동맹도 적도 없고 경쟁자만 있다”고 분석한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순방에서 기행에 가까운 언사와 행동을 한 이유는 간단하다. 나토 방위비 증액 요구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이익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산업 보호라는 명분으로 관세 폭탄을 가해 무역전쟁을 촉발하는 그의 ‘벼랑 끝 전략’이 이제는 자국 산업에도 피해를 몰고 오고 있다.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의혹을 피하고자 푸틴 대통령마저도 두둔하는 자세에 이젠 지지층도 ‘굴욕 외교’라며 반발하는 모양새다. 어쩌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전 세계를 상대로 펼치는 그의 도박이 이제 제대로 시험대에 오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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