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갈래로 갈라진 ‘조계종 종단’의 민낯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0.22 10:58
  • 호수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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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원장 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뿌리 깊은 갈등…직선제 놓고 대립

국내 최대의 불교 종단인 조계종이 우여곡절 끝에 제36대 총무원장을 선출했지만 여전히 내홍을 겪고 있다. 지난 9월28일 치러진 총무원장 선거에서 전 중앙종회 의장인 원행 스님(65)이 당선됐다.

조계종 최고 의결기구인 원로회의는 10월2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회의를 열고 원행 스님 총무원장 인준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이로써 신임 원행 총무원장은 4년의 임기를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지난 선거기간에 있었던 종단 내 갈등은 쉽게 봉합되지 않고 있다. 24개 재가단체 모임인 불교개혁행동 등은 선거 결과에 반발하며 투표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선거의 정당성을 문제 삼고 있다.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진 갈등의 골을 메우기는 당분간 쉽지 않아 보인다.

 

9월28일 서울 조계사에서 치러진 제36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서 당선된 원행 스님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막강한 ‘불교광장’의 영향력

조계종 종단 내의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총무원장 선거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어김없이 반복됐다. 평소에 잠재돼 있던 문제들이 총무원장 선거를 통해 수면으로 떠오르며 갈등이 표면화되는 모양새다.

후보들은 ‘폭로전’으로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재가단체 등 불교계 재야 세력은 갈등의 근원을 ‘총무원장 선거의 구조적 문제’라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현행 총무원장 선거를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꾸고, 근본적인 종단 개혁에 나서라고 촉구하고 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주류와 기득권을 혁파해 개혁을 이루려는 비주류가 부딪치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두 번의 선거에서도 같은 양상이 재연됐다. 이번에도 이전처럼 ‘폭로전’ 양상을 띠었다. 지난해 치러진 제35대 총무원장 선거에서는 유력 후보였던 설정 스님(76)에 대한 폭로전이 집중됐다. 학력 위조와 100억대 사유재산, 은처자(숨겨 놓은 아내와 자식) 의혹 등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런 의혹들이 선거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불교계의 국회’라고 할 수 있는 중앙종회의 최대 종책 모임인 ‘불교광장’이 설정 스님을 지지하면서 압도적인 표 차로 당선됐다. 이로써 불교광장의 영향력이 다시 한번 과시됐다.

설정 스님은 총무원장에 취임했지만 은처자 의혹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발목을 잡았다. 이에 대해 “명쾌하게 소명하겠다”고 밝혔지만, 제대로 해명하지 못했다. 급기야 지난 5월 MBC 《PD수첩》을 통해 다시 한번 의혹이 제기되자 더욱 궁지에 몰렸다. 사퇴 압박도 거세졌다. 여기에 설조 스님이 종단 개혁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에 들어갔고, 농성이 41일간 이어지면서 사회 이슈로 부각됐다.

궁지에 몰린 설정 스님은 기자회견을 열고 “종도들의 뜻을 수용해 조속한 시일 내에 사퇴하겠다”고 했지만 정확한 일정은 밝히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이 교시를 통해 총무원장의 명예로운 퇴진을 요구했다. 조계종에서 ‘종정’은 정신적지주이다. 종무 행정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지만 종단의 미래를 제시하는 구심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설정 스님은 기존의 ‘조기 사퇴’를 번복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가 고립을 자초했다. 조속한 시일 내에 사퇴하겠다는 말을 뒤집고 종정 스님의 교시를 거역하는 모양새로 비쳐지면서 지지 세력을 잃고 말았다. 종단 내 그를 지지해 온 지지층이 등을 돌리면서 중앙종회에서조차 불신임이 가결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결국 총무원장에 취임한 지 294일 만에 자진 사퇴하는 형식으로 물러났다. 임기 4년 중 1년도 채우지 못한 사실상 불명예 퇴진이다.


종단 재야단체 ‘선거 무효’ 주장

이후 조계종은 제36대 총무원장 선출을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후보로 총 4명이 등록했다. 부산 감로사 주지인 혜총 스님, 중앙종회 의장인 원행 스님, 구룡사 회주인 정우 스님, 원로회의 의원인 일면 스님이다.

불교광장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겉으로는 4파전 양상으로 치러지는 듯했다. 하지만 종단 내에서는 ‘해보나 마나’라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불교광장이 중립을 선언했지만 중앙종회 직전 의장인 원행 스님을 암묵적으로 지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는 간접선거다. 종회의원 81명과 24개 교구본사별(각각 10명씩)로 선출된 선거인단 240명, 총 321명이 선거인단을 구성하게 된다. 종회의원, 교구본사 주지 등을 장악하고 있는 주류 측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불교광장의 경우 투표권을 가진 종회의원 50여 명이 소속돼 있다. 따라서 불교광장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총무원장 선거의 승패가 가려지는 형국이다. 불교광장만 등에 업으면 총무원장은 사실상 따놓은 당상이라는 것이다

불교광장은 제33·34대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 스님과 맥이 닿아 있다. 자승 전 총무원장은 과거 화엄회·법화회 등으로 분열돼 있던 종책 모임을 2013년 7월 불교광장으로 통합했다. 여기에는 자승 전 총무원장의 최대 지지 계층인 화엄회가 주축이 됐다.

자승 전 총무원장은 2009년 33대 선거에서 당시 최대 계파인 화엄회 등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4년 뒤 치러진 34대 때는 불교광장의 추대를 받은 후 출사표를 던져 무난하게 당선됐다. 지난 선거를 보면 자승-설정-원행 스님으로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런 기류와 판세가 이어지자 원행 스님을 제외한 3명의 후보가 동반 사퇴하는 초유의 상황이 연출됐다. 이런 현실에서 선거는 ‘요식행위’이며 자신들은 ‘들러리’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선거 구조상 판세가 이미 굳혀져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동기자회견문을 통해 “이권만 있으면 불교는 안중에도 없는 기존 정치세력 앞에 종단 변화를 염원하는 저희들의 노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통감했다”며 “이번 선거가 현재대로 진행된다면 종단 파행은 물론이거니와 종단은 특정 세력의 사유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 후보가 사퇴하면서 36대 총무원장 선거는 원행 스님 단독 후보로 치러졌고, 이변은 없었다. 불교개혁행동 등은 ‘종단 기득권 세력의 각본대로 치러진 선거’라며 선거 무효를 주장했다. 이들은 종단의 개혁을 위해서는 총무원장 선거의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시각이다.

이를 위해 현재의 간선제 대신 직선제를 통한 선거 혁신이 우선 과제라고 보고 있다. 또 자승 전 총무원장과 기득권 세력을 타파 대상 1순위로 지목하고 있다. 이들이 선거기간 동안 “자승 전 원장은 종단 개입 중지하라”는 구호를 외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선거가 끝난 후에는 ‘자승 2기’ ‘허수아비 종권으로 돌려막기’라고 비판했다. 박정호 불교개혁행동 공동대표는 “원행 스님을 총무원장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며 “이권만 있으면 불교는 안중에도 없는 기득권 정치세력의 음모와 각본대로 치러진 선거”라고 규정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가 치러진 9월28일 서울 조계사 앞에서 불교개혁행동 관계자들이 제36대 총무원장 선거 무효 긴급기자회견을 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조계종 승려 80% 직선제 찬성

현재 조계종 종단은 둘로 갈라져 있다. 9월26일 조계종 총본산인 조계사 앞에서는 지금의 상황을 보여주는 각각 성격이 다른 행사가 열렸다.

출가자 200여 명과 재가단체 등이 중심이 된 ‘승려대회’와 중앙종회·본사주지협의회 등이 중심인 ‘교권수호대회’는 6차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승려대회 참가자들은 ‘총무원장 간선제 폐지’ ‘중앙종회 해산’ ‘비상종단개혁위원회 구성’ ‘재가 불자의 종단 운영 참여’ 등을 촉구했다. 이에 반해 교권수호대회는 ‘교권수호’와 ‘종헌 질서 확립’을 강조했다. 현재 상황에서 갈등 봉합은 쉽지 않아 보인다. 주류와 비주류의 입장이 워낙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타협점’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종단 내 갈등을 막고 화합을 위한 원행 총무원장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그도 현재의 상황을 심각한 위기로 보고 있다. 취임 직후 ‘소통’과 ‘화합’을 강조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원행 총무원장은 “소통과 화합위원회를 만들어 총무원이 먼저 듣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종단 내에서는 갈등 해소의 선행조건은 ‘총무원장 직선제’라고 의견을 모은다. 재야단체도 직선제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소통과 화합은 물 건너갔다’는 시각이다. 주류 입장에서 ‘간선제 포기’는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무시하고 총무원장 혼자 결단을 내리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 이면에는 총무원장이 갖고 있는 막강한 권한이 있다. 조계종 종단을 이끄는 행정수장인 총무원장은 인사와 예산 집행, 3000여 개 사찰 주지 임면권을 가지고 있다. 총무원장 선거 과정에서의 논공행상과 문중, 종책 모임 간 안배 등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작용할 수밖에 없다.

주류와 비주류의 이해관계를 떠나 조계종 승려들도 직선제를 압도적으로 선호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중앙종회는 2016년 10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승랍(출가 햇수) 10년 이상의 비구(534명)·비구니(466명) 등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80.5%가 직선제에 찬성한다고 답변했다. 특히 승랍 10년 이상 스님 중 비구 중덕, 비구니 정덕 이상의 스님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하는 직선제 특위의 안에 대해서는 84.3%가 찬성을 표시했다. 중덕과 정덕은 3급 승가고시에 합격한 스님을 말한다.

이처럼 대다수 승려들이 직선제를 선호하는 것은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금권선거’와 ‘관권선거’ ‘계파나 문중 파벌싸움’ ‘과도한 폭로전’ 등에 식상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선거인단이 적다 보니 특정 세력에 의해 선거가 좌지우지되는 것도 간선제의 폐단으로 제기된다.

자승 전 총무원장도 2013년 총무원장 재선을 앞두고 ‘총무원장 선거 방식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며 사실상 ‘직선제 찬성’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2016년 기존 입장을 바꿔 “직선제는 종단이 제2의 분규로 가는 것”이라며 반대 의견으로 돌아섰다.

이제 종단이 화합하느냐 아니면 갈등이 계속되느냐는 원행 총무원장의 몫으로 남았다.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조계종의 미래가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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