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중근 처벌” 주장 탄원인, 부영이 접촉해 회유 시도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8.11.30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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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관계인 정보 유출 정황…주체가 법원이면 형사소송법, 경찰이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

 

“이중근 부영 회장을 엄벌해달라”며 탄원서를 법원에 낸 사람의 신원을 부영 측이 파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적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사건 관계인의 개인정보는 비공개 대상인데, 피고인인 부영이 이를 알아냈기 때문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부영 측은 탄원인에게 회유를 시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경남 창원시에 거주하는 A씨는 11월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이순형 부장판사 앞으로 “부영건설과 이중근을 엄벌에 처해 사법정의를 구현하여 주시기를 강력히 탄원합니다”란 내용의 탄원서를 등기우편으로 보냈다. 이순형 판사는 올해 초부터 이중근 회장 재판을 이끌어오고 있다.

 

 

수천억 원대 횡령·배임과 임대주택 비리 혐의 등으로 기소 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10월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 보석(보조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 뒤 열린 결심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올라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탄원인 찾은 부영, “도울 일 있으면 연락 달라”

 

이후 11월9일 A씨는 다니던 교회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윤아무개씨가 당신과 얘기하고 싶다면서 연락처를 남겼다”는 내용이었다. 이날 오후 A씨는 윤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A씨에 따르면, 윤씨는 전화로 “당신 집에 찾아갔었다”면서 “법원에 서류 제출한 게 일반 시민 입장으로서 한 일인가”라고 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A씨는 윤씨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고 한다. 

 

윤씨는 이어 “내가 도울 일 있으면 연락 달라”며 “나는 부영에서 근무한다”고 덧붙였다. 그제서야 A씨는 윤씨가 언급한 ‘서류’가 탄원서임을 직감했다. 부영 측에서 탄원인의 이름과 주소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A씨는 이후 윤씨와의 통화내용을 녹음한 파일을 기자에게 보내왔다. 여기엔 윤씨가 “법무법인 율촌으로부터 서류 제출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율촌은 이중근 회장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중 한 곳이다. 

 

형사소송법상 재판 당사자 또는 법률대리인은 법원에 재판기록을 열람 신청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탄원서의 접수 사실도 알 수 있다. 실제 율촌은 A씨의 탄원서가 법원에 접수된 11월2일 재판기록 열람 신청을 했다. 

 

탄원인 A씨가 11월1일 우편 등기로 이순형 부장판사에게 탄원서를 보냈음을 증명하는 접수 영수증 ⓒ A씨 제공



법원이 탄원인 신원 유출시 ‘형사소송법’ 위반

 

그런데 법원이 재판기록을 공개하면서 탄원인의 개인정보까지 알려주는 건 위법 소지가 있다. 형사소송법은 ‘사건 관계인의 명예나 사생활 또는 안전이 침해될 경우’를 재판기록 공개 제한 사유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재판기록 열람에 있어 형사소송법상 비공개 원칙은 정보공개법에 의한 공개 원칙보다 우위에 있다. 이는 지난해 3월 대법원이 내린 결론이다.

 

사건 관계인의 정보 유출은 수사 대상이 된 적도 있다. 지난 2010년 검찰은 “서울 서부지법 판사가 성추행 혐의를 받는 피고인에게 피해자의 신원정보를 보여줬다”는 진정을 접수해 수사에 나섰다. A씨는 “억하심정을 가진 피고인이 탄원인의 이름과 주소를 알아낸다면, 해코지할 가능성이 없다고 어떻게 장담하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이중근 회장에 대한 재판부의 담당 실무관은 “탄원서는 비실명화 과정을 거쳐 공개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수차례 실명을 밝히기 거부했다. 율촌 관계자도 “법원에서 받은 재판기록엔 탄원인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런데 윤씨는 어떻게 A씨의 신원을 알아낸 걸까. 



경찰이 흘렸다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윤씨는 11월28일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율촌이 아니라 부영 본사로부터 (탄원인의 이름과 주소를) 들었다”고 말을 바꿨다. 그는 “본사에서 어떻게 (탄원인에 대해) 알았는지는 모르겠다”며 “나는 본사의 지시로 탄원인이 실존하는 사람인지 확인하려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A씨를 도우려는 취지로 말을 건넨 게 전부”라고 했다. 윤씨는 부영 영남본부 임원이다. 

 

반면 부영 본사 홍보팀 관계자는 “탄원인의 이름이나 주소는 우리도 모른다”고 했다. 본사와 지사의 입장이 엇갈리는 부분이다. 다만 본사 관계자는 “탄원서에 창원시와 관련된 언론기사가 첨부돼 있어 해당 지역본부에 사실여부를 확인해보라고 전달했다”며 “첨부된 기사를 토대로 지역본부 임원이 (탄원인의 이름과 주소를) 유추한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법원이 재판기록 열람을 허가할 때 사건 관계인의 성(姓)까진 공개한다. 즉 단서는 탄원인 A씨의 성과 ‘창원시’란 지역명 뿐이다. 그럼 어떻게 이 정보만으로 A씨의 이름과 주소를 파악할 수 있었던 걸까. 이와 관련해 경찰 신원조회의 도움을 빌렸을 거란 추측이 나온다. 

 

사실이라면 행정부(경찰)가 민간(부영)에 개인정보를 흘린 것이 된다. 이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따르면, 2011년부터 약 5년 간 경찰이 사건 관계인 개인정보를 유출해 징계를 받은 건수는 총 103건이다. 공교롭게도 A씨와 접촉한 윤씨는 지방경찰청에서 신원조사를 담당하는 정보과장 출신으로 확인됐다. ​ 

 

한편 이중근 회장은 4300억원대 횡령·배임 등 혐의로 기소됐다. 11월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는 검찰 구형량(징역 12년·벌금 73억원)보다 낮은 징역 5년·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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