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靑 백원우, ‘비리 수사’ 향군 회장 왜 만났나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유지만 기자
  • 박성의
  • 승인 2019.01.03 11:5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원우 민정비서관, 향군 수뇌부와 회동
이후 검찰 수사 받던 향군 회장 무혐의 처리되어

시사저널 취재 결과 백원우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2018년 5월,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 수뇌부와 회동을 가진 사실이 밝혀졌다. 김진호 향군 회장은 회동 당시 업무방해와 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었다. 사정(司正)을 담당하는 민정비서관이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향군 수뇌부와 회동을 가진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회동에서 향군의 민원이 담긴 서류가 전달됐고, 회동 이후 김진호 회장 사건이 검찰에서 무혐의 처리되면서 청와대가 향군의 지지를 약속받는 대신 김 회장의 비리를 무마해 준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 실제로 향군은 회동 직전, 기존의 입장을 바꿔 남북 정상회담을 지지하는 행사를 열었다.

지난해 5월15일, 청와대 측과 향군 수뇌부는 경복궁역 인근 한정식집에서 만났다. 향군은 회장·부회장 등 임원 12명이 모두 나왔고, 청와대에서는 백원우 민정비서관, 진성준 정무비서관(현 서울시 정무부시장), 최종건 평화군비통제 비서관 등 3명의 ‘실세’ 비서관을 비롯해 총 6명이 참석했다.

백 비서관은 ‘실세 중의 실세’로, 조국 민정수석을 제치고 청와대 민정라인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진 전 비서관은 ‘문재인의 호위무사’로 불릴 정도로 대표적인 친문 인사로 꼽힌다. 최 비서관은 대선 때부터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 브레인’ 역할을 해 왔고,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는 판문점 답사 일행에 속하기도 했다.

반면 시민사회수석실(당시 사회혁신수석실)에서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시민사회수석실은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위해 특별히 신설한 부서다. 수석 아래 사회조정비서관(당시 사회혁신비서관), 시민참여비서관(시민사회비서관), 제도개선비서관 등이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모아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연합뉴스
ⓒ 시사저널 임준선·연합뉴스

靑 비서관들, 향군 수뇌부와 단체 회동

회동 자리에는 민정수석실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했다. 백 비서관을 비롯해 백 비서관 아래(민정비서관실)에 있는 이아무개·문아무개 행정관이 함께했다. 민정수석실은 말 그대로 국가 사정 권력의 최정점이다. 검경 등 사정기관을 총괄하면서, 공직기강을 다잡고 사회 전반의 부패를 점검한다. 민정비서관·반부패비서관·공직기강비서관·법무비서관 등 4비서관 체제로 운영되는데, 민정비서관은 그중에서도 선임 격이다. 민정비서관은 민심 동향을 파악하고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향군은 민정수석실의 감독 대상이다. 민정수석실은 국가보훈처에 향군에 대한 감사를 지시할 수 있고, 보훈처장은 그 결과에 따라 향군 임원에 대해 직무를 정지시키거나 해임을 결정할 수 있다. 실제 김 회장 이전인 조남풍 회장 시절인 2015년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특별감사 요구로 보훈처가 향군에 대한 특별감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진호 회장은 “향군은 민정의 관리를 받아왔다. 관리하는 부서의 인사와 자리하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라는 해명을 내놨다.

김 회장은 인사 청탁 대가로 1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조남풍 전 회장의 뒤를 이어 2017년 8월11일 36대 향군 회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취임 직후부터 문제가 불거졌다. 김 회장은 향군 회장 선거에서 상대 후보의 동의 없이 “단일화에 성공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혐의(업무방해)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이어 지난해 초에는 경기도 여주의 한 장례식장을 법원 최저 경매가의 2배(86억원)를 주고 사들인 혐의(배임)로 또다시 고발됐다.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정기관 관계자 A씨는 “민정에서 이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면서 “알고도 만났다면 큰 문제고, 만약 몰랐다면 그것 또한 문제다. 한마디로 만나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관계 때문에 감독 역할을 하는 민정수석실의 비서관이 향군 관계자를 만난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향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전남도당 선대위 공동위원장을 지낸 노병성 전 향군 대의원연합회 공동대표는 “사정라인을 총괄하고 향군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민정수석실의 비서관이 수사 중인 향군 회장을 만난 것은 매우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비판했다. A씨는 “민정비서관이 피감기관 수뇌부와 단체 회동을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며, 문제가 될 소지가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회동에 참석한 청와대 인사들의 인식이다. 이들은 이날 회동의 부적절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진성준 전 비서관은 “회동은 선후배 관계나 여러 인연 때문에 이뤄졌다”며 “가볍게 점심식사를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성공을 기원하는 재향군인회 회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 뉴시스
2018년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성공을 기원하는 재향군인회 회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 뉴시스

향군 전 관계자 “회동에서 민원 서류 건네” 주장

더 큰 문제는 회동 자리에서 ‘사건무마 청탁’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회동 참석자들의 진술을 종합해 보면, 향군과 청와대 측 18명은 한정식집에서 1인당 3만원짜리 점심을 먹고 반주로 막걸리를 곁들였다. 청와대 측은 음식 값을 지불하고, 기념품 중 하나인 시계를 12세트 선물했다. 향군은 이에 대한 답례로 준비한 떡을 줬다. 이 과정에서 민원이 담긴 서류까지 건넸다는 것이다. 노 전 공동대표는 “참석자들의 얘기를 종합해 본 결과, 김 회장이 (회동에서) 현안 설명을 하고 민원서류를 건넸다. 이번 회동은 조국 민정수석까지 보고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회동 이후 김 회장에 대한 사건이 증거불충분으로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고 주장했다. 실제 확인 결과 서울동부지검은 지난해 8월27일 김 회장의 ‘업무상 배임수재죄’ 고발 사건을 ‘혐의 없음’ 처분했고, 이보다 앞선 5월30일에는 김 회장의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 백 비서관과 김 회장, 김 회장 사건 담당 부장검사는 모두 고려대 동문이다. 노 전 공동대표는 “향군 내에서 김 회장에 대한 반발이 심하다. 김 회장에 대한 고발이 끊이지 않는 이유”라면서 “청와대만이 이를 무마할 수 있다. 반대로 청와대 역시 향군의 지지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가 향군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향군이 회원 1000만 명의 국내 최대 안보단체이기 때문이다. 향군은 대표적인 보수단체로, 진보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와는 결이 다르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가장 공을 들이는 대북 사업과 관련해서 큰 차이점을 보인다. 향군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김 회장 역시 대북 강경파 중의 한 명이다. 김 회장은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이 터지자, 문재인 정부의 비핵화 정책과 달리 ‘전술핵 즉각 재배치’와 ‘자체적인 핵무장 공론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최근 문재인 정부를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향군은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존 입장을 바꾸고, 지난해 4·27 정상회담 당시 문 대통령에 대한 대대적인 환송 행사를 열었다. 향군은 회원 6000여 명을 동원했고, 문 대통령은 판문점으로 가는 도중 차를 멈춰 세우고 이들과 직접 악수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남북 정상회담은 향군의 지지로 ‘보수단체도 환영하는 회담’이라는 이상적인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김 회장은 보수진영으로부터 ‘변절자’라는 오명을 받았지만, 자신에게 제기된 비리 혐의는 모두 벗었다.

회동 참석자들은 일종의 ‘거래’ 의혹에 대해 부인했다. 진 전 비서관은 “세간에서 회동 시점에 대해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부적절한 언사나 행위는 없었다”며 “문재인 정부 민정수석실이 설마 그런 일을 했겠느냐”고 말했다. 최종건 비서관 역시 “그런 내용의 대화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답했다.

백원우 청와대 민정비서관(왼쪽)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2018년 11월2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3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백원우 청와대 민정비서관(왼쪽)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2018년 11월2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3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청와대측, “‘감사 차원’에서 향군 예우한 것”

일각에서는 향군의 환송 행사를 청와대와 사전조율을 통해 이뤄진 사실상의 ‘관제 행사’로 보고 있다. 향군이 극비인 대통령의 동선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향군은 회담 직전인 지난해 4월25일 환송 행렬 배치도를 작성했는데, 이것이 문 대통령의 이동경로와 일치했다.

5월15일 회동 자리에 민정·정무·국가안보실 등 여러 부서의 비서관들이 참석한 것도 사전조율의 증거로 거론되고 있다. 사전조율이 없었다면 다양한 부서 대신 담당 부서인 시민사회수석실만 참석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회동의 성격도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한다. 참석자들은 이날 자리가 실제 ‘치하’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향군이 친정부 성향의 입장을 취한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는 자리였다는 의미다. 진 전 비서관은 “당시 향군이 정권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해 주는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자리였다. 규모가 있는 단체인 향군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세 명의 비서관이 자리에 나간 것으로 기억한다. 나와 백 비서관은 정치인 출신이기 때문에 소통이 잘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겠느냐”라고 밝혔다.

함께 자리했던 최종건 비서관 역시 “향군이 군 출신 인사들로 이뤄진 단체이기 때문에 참석했다. 당시 남북 정상회담 등에서 향군이 정부를 지지해 준 데 대한 감사 인사 차원이었다”고 말했다. 진 전 비서관은 “보통 시민단체는 시민사회수석실에서 담당하는데, 향군을 담당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청와대 비서관실의 역할 분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해명했다.

백 비서관은 기자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여러 차례 휴대전화로 연락을 취하고 메시지를 남겼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회동에 참석한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라”는 메시지만 보내왔다. 

 

“감사 인사 차원이었을 뿐”

진성준 전 비서관 인터뷰

 

시사저널은 진성준 전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현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부터 지난해 5월15일 향군 측과의 회동에 대한 입장을 들었다. 다음은 진 전 비서관과의 일문일답.

5월15일 향군 수뇌부와의 회동은 어떤 자리였나.

“향군 측에 감사를 표하는 자리였다. 향군이 4·27 정상회담 당시 환송회에 참석하는 등 고마운 일이 있어 자리하게 됐다.”

당시 회동은 누구 제안으로 이뤄졌나.

“누가 제안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나 백 비서관이나 정치인 출신이다 보니 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이 있어 나가게 됐다. 선후배 관계도 있고 뭐도 있고 그러지 않겠는가. 향군을 예우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차원에서 나갔던 게 아닌가 싶다.”

당시 회동의 적절성에 대한 지적이 많다.

“자리가 적절했느냐에 대한 문제의식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간단한 점심과 함께 감사 인사를 하는 자리였다. 다만 세간에서는 적절성에 대한 오해를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김진호 회장이 당시 검찰수사 중이었던 것은 알고 있었나.

“몰랐다.”

회동에서 수사에 대한 얘기도 오갔나.

“수사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현 시국에 대한 얘기였다.”

청와대에 공식적으로 보고가 된 사안인가.

“잘 모르겠다. 자리가 있다고 해서 만났을 뿐이다.”

이런 만남이 과거에도 있었나.

“확실치는 않지만 향군과 그런 자리를 가진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청와대가 4·27 행사 당시 향군 참석을 사전에 조율했다는 의혹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어느 비서관실에서 담당했는지 모르겠지만 행사 후에 향군에 감사하는 차원에서 자리한 것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