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도시 전체가 미술관이 됐다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9 16: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기도 화성시 ‘도시는 미술관’ 프로젝트
미술 매개로 도시의 사람‧자연‧역사 연결해내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소다미술관에서 추진하고 있는 '도시는 미술관' 프로젝트에는 지역의 자연과 역사를 대표하는 장소들이 포함돼 있다. ⓒ김지나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소다미술관에서 추진하고 있는 '도시는 미술관' 프로젝트에는 지역의 자연과 역사를 대표하는 장소들이 포함돼 있다. ⓒ김지나

경기도 화성시 곳곳에 미술관이 생기고 있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이나 시크한 현대미술관과는 거리가 멀다. 어떤 곳은 한때 찜질방이었던 건물이고, 어떤 곳은 병인박해 순교지에 세워진 웅장한 성당이며, 어떤 곳은 한국전쟁 때 미군의 사격지였던 벌판이다. 이 미술관의 이름은 바로 ‘도시는 미술관’이다.

‘도시는 미술관’은 화성시에 자리한 한 사립미술관에서 주관하고 있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현재까지 9개의 장소가 이 프로젝트에 포함돼 있다. 모두 화성시를 대표하는 자연 경관이나 역사적인 장소들이다. 공공미술 프로젝트라고는 하지만 조각 작품들을 여기저기 설치해놓는 식의, 우리가 흔히 아는 그것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인다. 오히려 ‘여행 프로그램’이라 소개하는 프로젝트의 핵심은 도시 장소들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경기 남부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도시로서 화성시는 그만큼 다양한 경관과 역사를 품고 있다.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 사람이든 장소든 서로 쉽게 이어지기 힘들기도 한 것이 특징이다. ‘도시는 미술관’ 프로젝트는 이런 도시에 새로 생긴 미술관으로서 그 역할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나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춘 트렌디함으로 미술관 흥행만을 쫓는 대신, 도시와 공생하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건축가, 지질학자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과 손을 잡았다. 거대하지만 소통이 부족한 도시의 외로움을 달래고자 예술과 건축에서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도시는 미술관'에 포함된 장소 중 하나인 '궁평 오솔 아트파빌리온'. 2019년 경기만 에코뮤지엄 사업으로 조성됐다. ⓒ김지나
'도시는 미술관'에 포함된 장소 중 하나인 '궁평 오솔 아트파빌리온'. 2019년 경기만 에코뮤지엄 사업으로 조성됐다. ⓒ김지나

도시의 아픔마저 귀중한 소장품

9개의 장소들은 딱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저마다의 사연과 특징을 갖고 있다. ‘궁평 오솔 아트파빌리온’은 궁평항 해안길에 만들어진 권순엽 건축가의 작품이다. 2019년 경기만 일대에 생태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자원들을 발굴하는 ‘에코뮤지엄’ 사업으로 조성됐다. 서해바다의 물결을 닮은 듯, 이곳에 유명한 해송을 본 딴 듯, 바닷가를 찾는 이들에게 쉼터가 돼주고 있다.

한편, 우정읍 매향리에는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의 작품이 있는 공원이 있다. 지금은 ‘평화생태공원’이라는 이름이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밤낮없이 폭탄과 총격 소리로 주민들을 괴롭히던 주한미군 사격 훈련장이 있던 곳이다. 자원을 발굴하고, 매력을 드러내고, 아픔은 치유하는 과정 모두가 화성시의 귀중한 소장품이라는 것이 ‘도시는 미술관’ 프로젝트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다.

2022년 전시된 '도시는 미술관'의 첫 번째 파빌리온 '기차, 마차 같은 휴게소' ⓒ김지나
2022년 전시된 '도시는 미술관'의 첫 번째 파빌리온 '기차, 마차 같은 휴게소' ⓒ김지나

 

작년부터는 지역이 가진 자원을 바탕으로 소통을 이끌어내기 위해 ‘파빌리온'이라는 방법을 도입했다. 파빌리온은 본래 ‘임시 건축물’을 의미하는데 최근에는 머무를 수 있는 형태의 공공미술을 가리킬 때가 많다. 이런 작품은 단순히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용하고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됨으로써 여러 가지 경험과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 첫 번째 시도가 동탄 신도시 공원들에 전시됐던 <기차, 마차 같은 휴게소>다. 이 파빌리온은 한자리에 고정되지 않고 도시공원 3군데를 이동했으며 각각 단 3일씩만 머물렀다. 끝난 후에는 원도심 쪽에 위치한, 찜질방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 야외공간으로 옮겨졌다. 작품 제목처럼 기차 혹은 마차 같은 이 휴게소를 따라 사람들이 도시 곳곳을 여행해보도록 유도한 것이다. 마치 섬처럼 동떨어져, ‘화성’이라는 지명보다 ‘동탄’으로 더 유명한 신도시에서 첫 번째 파빌리온이 시도된 이유이기도 하다.

우음도에 전시 중인 두번째 파빌리온 'Faraway: man made, nature made' ⓒ김지나
우음도에 전시 중인 두번째 파빌리온 'Faraway: man made, nature made' ⓒ김지나

저마다 다른 배움 얻고 가는 미술관 여행

얼마 전 우음도에 두 번째 파빌리온 <Faraway: man made, nature made>가 만들어졌다. ‘멀리 떨어진: 사람이 만든, 자연이 만든’이라는 뜻이다. 우음도는 약 19억년 전부터 형성된 암석이 있는 지질공원이자, 시화호 간척사업 이후 육지가 된 섬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섬이었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지만 거세게 부는 바람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번 작품을 맡은 김사라 건축가는 여기서 영감을 받아 주변 소리를 모아주는 장치를 파빌리온 한쪽 끝에 만들었다. 좁고 긴 터널 같은 공간을 지나 이 장치가 있는 지점에 다다르면 우음도 바람소리가 만들어내는 풍경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 ‘바람소리’를 매개로 우음도가 지나온 시간에 대해 사색해보길 제안하는 공간이다. 지질공부를 하기 위해 찾은 누군가는 낯선 조형물에서 다른 방식으로 우음도에 축적된 시간을 느끼고, ‘도시는 미술관’ 자취를 따라온 누군가는 지역 역사와 자연에 대해 배우고 간다. 그렇게 도시가 서로 소통하고 연결되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우음도 파빌리온 또한 약 두 달여 전시기간이 끝나면 철거가 예정돼 있다. 한 작품의 전시가 마무리되면 또 다른 관점으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임시건축물 프로젝트의 장점이다. 면적이 넓고 다양한 역사적 층위를 가진 화성시이기에 더욱 안성맞춤인 전략일 테다. 세 번째로 준비 중인 매향리 평화기념관 파빌리온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가 시작될지, ‘도시는 미술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세 번째 파빌리온이 예정돼 있는 매향리 평화생태공원. 평화의 소녀상 뒤로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매향리 평화기념관이 보인다. ⓒ김지나
세 번째 파빌리온이 예정돼 있는 매향리 평화생태공원. 평화의 소녀상 뒤로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매향리 평화기념관이 보인다. ⓒ김지나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