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라진 ‘청년론’, 제3지대가 다시 불 지필까 [임명묵의 MZ학개론]
  • 임명묵 작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3 16:05
  • 호수 1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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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대선 캐스팅보트였던 청년층, 이번 총선에선 양당 모두로부터 외면
부동층인 MZ세대는 신당의 주 타깃…어떤 의제 끌어낼지 관심

2024년이 밝아오면서 22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한 이야기가 활발히 오가고 있다. 이번 총선은 2022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러니 만큼 총선 결과에 따라 2027년까지 남은 임기의 국정 방향도 결정될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청년층은 이번 총선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지난 대선에서 청년층은 승패를 좌우하는 캐스팅보트로서 위력을 떨쳤다. 

사실 이번 총선과 2년 전 대선 사이에서 관찰되는 가장 큰 차이는 ‘청년론’과 ‘세대론’이 갑작스럽게 실종되었다는 것에 있다. 물론 당시 청년층에 관한 논의가 활발했던 것은 2022년 선거가 훨씬 더 국가적인 관심이 모이는 대통령선거였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지난 선거에서 ‘MZ세대론’이나 ‘이대남-이대녀론’이 받은 관심을 생각하면 2년 만의 변화는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 선거의 본질을 생각하면 변화의 이유는 굉장히 간명할 수 있다. 총선을 앞두고 청년층 논의가 사라진 것은 거대 양당이 청년층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필요를 못 느낌과 동시에, 청년층 자체에서도 정치적인 목소리가 급격하게 작아졌기 때문이다.

2022년 대선은 이와는 정반대 상황이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근 15년간 선거 경향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원래 연령 단위로 보았을 때 20대와 30대는 전통적으로 진보진영의 강력한 지지층이었다. 2007년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17대 대통령선거 이후에 주요 선거에서 20대와 30대는 모두 민주당에 표를 더 많이 던졌다. 자연스럽게 진보진영에서는 자신의 주요 지지층인 청년층을 향한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했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더 젊은 정당’으로 삼을 수 있었다.

상황이 바뀐 것은 청년층 표심에 변화가 관찰된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부터였다. 소위 ‘이대남’을 중심으로 보수정당 몰표 현상이 관찰된 것이다. 첫째로는 세대의 변화가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0년, 15년 전 무렵에 20대, 30대였던 유권자들이 나이를 먹고 30대, 40대로 이동했다. 새로운 청년층은 1990년대와 그 이후에 태어난 유권자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10년 전의 청년층과는 다른 환경에서 성장해 다른 집단적 기억과 서사를 가진 이들은 보수진영에 표를 던지는 일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가칭 ‘개혁신당’ 창당을 선언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가 1월6일 대구 수성구 수성못에서 이기인, 허은아, 천하람(왼쪽부터) 공동 창당준비위원장과 함께 길거리 당원 모집에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2년 동안 사라진 청년 의제

둘째로는 청년층 내부, 특히 20대에서 성별에 따른 표심 분리가 있었다. ‘문화 전쟁’의 맥락에서 20대 남성은 보수진영을, 20대 여성은 진보진영을 지지하면서 정체성에 따른 갈등이 폭발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40·50대와 60·70대가 각각 진보와 보수의 기반이 되는 세대인 가운데, 청년층의 표심은 캐스팅보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청년층 내부의 갈등은 물론이고 기성세대를 향한 불만도 상당한 수준으로 표출되었기 때문에, 양당은 이들의 요구를 청취하고 선제적으로 메시지를 내면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초박빙이었던 2022년 대선에서 20대 남녀의 표 차는 예측보다는 작았지만, 그래도 선거 결과에 영향을 주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2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기에 청년 의제가 빠르게 실종되었던 것일까. 청년 의제가 사라진 첫 번째 원인에는 윤석열 정부 자체의 의제 부재가 가장 컸다. 직전인 문재인 정부만 하더라도 그 성공과 실패 여부를 떠나 정권 초반에 강력한 정책 집합을 추진했고, 이 모든 의제는 정권 내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그 이유가 정권 철학의 부재이든, 혹은 여소야대의 국회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든 국민에게 각인될 대표 의제를 여태까지 추진하지 못했다. 게다가 야당 또한 지난 선거의 패배를 딛고 일어설 새로운 의제와 메시지를 개발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정치권의 의제 대부분은 양당의 주요 인물에 관한 공격이 차지하게 되었다.

두 번째 이유는 청년층의 내부 갈등, 특히 젠더 갈등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면서 청년층 자체의 의사표현도 잦아들었다는 데 있다. 2022년에 주거·일자리·외교 등 다양한 이슈가 경합하던 청년층 의제는 선거가 다가오면서 최대 이슈인 젠더 갈등으로 수렴되는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당시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 전혀 진전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여당 주류가 ‘이대남의 대변자’를 자처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갈등을 빚자 젠더 갈등은 일시적인 소강 상태를 맞이했다. 이 외의 다른 요구가 없는 가운데 양대 정당은 청년층에 어떤 이슈로 소구해야 할지 파악하기 어려워졌다.

마지막으로 2020년대 들어 한국 정치가 양극화되면서 의제 개진의 필요성 자체가 줄어들었다. 상반된 지향점을 바탕으로 정책에 대해 토론하는 경쟁이 민주정의 이상이지만, 상대 정파를 관용하지 않고 정치의 목적 자체를 상대 정파의 집권을 막는 데 두는 정치적 양극화가 이제는 세계적인 대세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양당이 각자의 핵심 지지층인 중장년층과 노년층을 최대한 투표장에 더 많이 동원하는 것이 승리를 위한 최적의 전략이 됐다. 게다가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청년층 또한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까닭에, 청년층 표심도 흑색선전과 고정 지지층 동원의 하위 문제로 분류될 수밖에 없었다.

 

제3당은 청년 표심을 끌어올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는 존재가 제3당 출현이다. 금태섭 전 의원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선택’, 양향자 의원의 ‘한국의희망’, 이준석 전 대표의 가칭 ‘개혁신당’이 현재 양당 구조에 균열을 내겠다고 천명한 상태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도 1월11일 신당 창당을 공식화했다. 제3당 입장에서는 절반 가까운 유권자가 부동층인 청년층을 주로 공략해 소수라도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기존 양당보다는 청년 의제에 더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여기서도 본질적인 문제는, ‘청년층에게서 어떻게 호응을 얻어내는가’가 될 것이다. 지난 대선의 젠더 이슈만큼 폭발력 있는 의제를 내걸기는 총선의 특성을 고려할 때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양당 구조를 깨고 새로운 정치를 열겠다는 구호만으로는 과거 안철수와 국민의당의 전철을 되밟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청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서는 양당이 세대 공략에 무관심한 가운데 청년층으로부터 ‘기세’를 끌어낼 만한 새로운 미디어 전략과 내러티브, 의제가 필요하다. 총선을 약 3개월 앞둔 시점에서 과연 이런 재료들이 충분히 준비되었을지는 불투명하다. 만약에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청년층 의제가 다시 등장하는 것을 보기 위해 우리는 2027년까지 기다려야만 할 것이다. 

임명묵 작가
임명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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