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은 한동훈의 ‘뒷배’인가 ‘빌런’인가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2 15:00
  • 호수 1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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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불통·고집 이미지 부활 형국…여당의 존재에 대한 대통령 인식 바꿀 필요 있어

결국 황상무는 사퇴했고 이종섭은 귀국했다. 당장 총선을 치러야 하는 국민의힘에는 천만다행과 만시지탄이라는 표현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어울릴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중도층이나 수도권 표심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을 것이다.

대선이나 총선 같은 전국 단위의 큰 선거가 치러질 때면 대개는 판세가 몇 번은 출렁이곤 한다. 특히 여야 정당 간 우열이 확연하지 않고 경합 추세를 보이는 선거에서는 악재에 대한 반응도가 한층 민감하게 나타난다. 이번 22대 총선도 그러하다. 지난해 가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했을 때만 해도 이번 총선 또한 정권심판론이 이어져 국민의힘의 참패로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여당의 구원투수로 조기 등판해 ‘한동훈 효과’가 나타나고, 민주당에서 ‘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 파문이 벌어지면서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민주당을 앞서는 골든크로스가 여러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국민의힘의 승리를 예상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수도권 위기론’이 재점화되었다.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의 주요 경합 지역에서 국민의힘이 공격적으로 공천한 후보들이 민주당 후보에게 밀리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속속 나왔다. 특히 부동층이 많은 서울에서는 한 주 사이에 지지율이 10%포인트 이상 급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1월23일 화재가 발생한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섭·황상무’ 사태, 용산이 시간 끌 일이었나

잠시 안도하던 국민의힘에는 다시 비상이 걸렸다. 그래서 과거 ‘막말’ 논란을 빚은 도태우·장예찬 후보에 대한 공천을 취소하면서 악재에 단호한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거를 불과 20여 일 앞두고 최대 악재로 부상한 ‘황상무-이종섭’ 논란이 시간을 끌면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여권 세력에 대한 민심이 급격히 악화됐다. 이에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용산(대통령실)과 각을 세우는 목소리를 내고 국민의힘 안에서 “용산이 결자해지해야 한다”는 아우성들이 터져나오자 결국 윤 대통령은 당의 요구를 수용했다. ‘윤-한의 2차 갈등’은 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 때문에 윤 대통령이 뒤로 물러서는 방향으로 일단 정리된 셈이다.

한 위원장은 “최근에 있었던, 여러분이 실망하셨던 황상무 수석 문제라든가 이종섭 대사 문제, 결국 오늘 다 해결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사람에 관한 문제는 해결됐는지 모르지만,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사이의 갈등, 대통령실과 여당 사이의 관계는 고질적인 문제로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황상무-이종섭 두 사람의 문제는 대통령실이 이렇게까지 시간을 끌 일이 아니었다. 선거판 여론을 악화시킬 이유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이 대사 즉각 귀국 요구에 대해 “공수처가 조사 준비가 되지 않아 소환도 안 한 상태에서 재외공관장이 국내에 들어와 마냥 대기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수사 대상인 사람을 주호주대사로 임명하고 곧바로 출국금지 조치를 해제한 것은 전례가 없는 특혜였다. 또한 시민사회수석이 출입기자와의 식사 도중에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하며 겁박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여당에서 대통령실을 향한 항변과 요구가 터져나오기 전에 윤 대통령이 곧바로 정리했어야 할 문제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대통령실은 한 위원장과 여당 후보들의 요구를 일축하는 모습을 내내 보였다. 대신 “우리 정부는 과거 정권들과 같이 정보기관을 동원해 언론사 세무사찰을 벌인 적도 없고, 그럴 의사나 시스템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황 수석의 사퇴를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즉각 부인하며 선을 긋기도 했다. 이종섭 대사 논란에 대해서도 공수처에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만 보였다. 상식 있는 보통의 유권자들이라면 황상무와 이종섭 문제라는 2대 악재가 말도 안 되는 사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당장 총선을 치러야 하는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의 입장과 정면 대립하는 발언들을 이어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선거와 정치엔 국민감정이란 변수 큰 영향

이번 논란에 대한 대통령실의 강경 대응 배경이 ‘윤심(尹心)’임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실제로 ‘친윤’이던 김은혜 후보(분당을)와 이용 후보(하남갑)가 ‘이 대사 즉각 귀국, 황 수석 사퇴’ 의견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데 대해 윤 대통령이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 수석 사퇴에 대해서도 일부 참모는 필요성을 거론했지만 윤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선을 그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니 다시 윤 대통령의 ‘불통’과 ‘고집’ 이미지가 부활하는 형국을 맞은 것이다. 지난해 가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의 참패를 낳은 바로 그 원인이다.

윤 대통령이 매번 간과하는 것이 있다. 선거와 정치에는 논리만이 아니라 국민감정이라는 변수가 큰 영향을 끼친다. 큰 선거 때가 되면 여야 정당들이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작은 잘못에 대해서도 엄정한 처분을 내리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다시 윤 대통령의 고집스러움이 부각되었던 일련의 상황은 국민의힘이 가까스로 만들어놨던 ‘한동훈 대 이재명’ 구도를 ‘윤석열 대 이재명’ 구도로 원점 회귀시키는 것이었다. 정권 심판의 표심을 확산시키는 구도가 여당에 절대적으로 불리함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경험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았다. 이쯤 되면 윤 대통령은 한동훈 위원장의 ‘뒷배’가 아니라 ‘빌런’이라는 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이종섭 사태가 완전히 일단락된 건 아니고, 여당 내에서는 여전히 악화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이 대사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일단은 ‘윤-한 갈등’이 가까스로 진정되는 국면이다. 하지만 여당이 특히 수도권에서 겪은 정치적 출혈은 이미 너무 크다. 당초 여론의 지지를 받던 의대 정원 증원 문제도 의료 공백 사태가 장기화하고 출구가 보이지 않자 국민의 피로감이 커져 여당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총선 결과에 따라 한동훈의 위상과 거취가 정해지겠지만, 차기 대선까지 가는 길에서도 용산과 여당의 갈등은 계속 분출될 구조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은 자신과 민심의 가교 역할을 하는 여당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큰 선거 때마다 윤 대통령이 ‘빌런’ 아니냐는 시선을 자기 진영 내부에서 받는 광경은 정상적이지 않다. 총선 결과는 알 수 없지만, 그 이후에라도 여당은 민심을 받들고 대통령은 그런 여당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정치가 절실하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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