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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균 게이트, ‘김건희 공천 대가’ 의혹으로 불붙어…“텔레그램이 판도라의 상자”
‘유죄 판결 날까’ 불안감 커지는 이 대표…“1심 전에 정권 끌어내리겠다” 과속

윤석열 정권을 겨냥한 야당발(發) 탄핵 바람의 속도와 강도가 심상치 않다. 오랜 시간 ‘구호’에만 그치던 정권 퇴진과 조기 대선 시나리오가 점차 구체화된 행동으로까지 나타나고 있다. “끝장을 보겠다”는 최근 민주당 의원들의 발언이 그저 수사(修辭)가 아닌 ‘정권을 끝장내겠다’는 실질적 결기로 드러난 것이다.

야당은 10월을 탄핵 정국의 분수령으로 삼았다. 국정감사 심판대 한가운데 김건희 여사를 세우려 하고 있고, 탄핵과 관련한 각종 조직화에도 나섰다. 11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1심 선고 이전, 정권의 가장 약한 고리를 무너트려 탄핵 분위기를 단단히 굳혀두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김건희 리스크와 사법 리스크, 어둡고 무거운 그림자를 각각 짊어진 윤 대통령과 이 대표 중 과연 살아남는 자는 누가 될까. 대한민국의 정치 시계를 움직일 가장 중요한 변수가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필리핀, 싱가포르 국빈 방문 및 라오스 아세안 정상회의를 위해 10월6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출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필리핀, 싱가포르 국빈 방문 및 라오스 아세안 정상회의를 위해 10월6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출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명태균·김대남 녹취록이 정권 위기에 기름 부어

임기의 절반도 넘기지 않은 정권을 향한 탄핵 공세는 대개 강한 ‘역풍’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지지율 등 여러 지표만 봐도 현재 탄핵 역풍은 미풍, 나아가 무풍에 가깝다. 이 평범치 않은 현상의 중심엔 김건희 여사가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김 여사 논란들이 야당의 탄핵 행보에 쉼 없이 명분과 동력을 주고 있다는 평가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김건희’란 이름 석 자가 윤석열 정부의 국정 동력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품백 수수 의혹을 매듭짓지 못하던 차에 연달아 터진 ‘김대남·명태균 녹취록’이 정권 위기에 기름을 부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두 녹취록의 공통분모 역시 김 여사, 구체적으로 김 여사가 공천과 당무에 오랜 기간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이다. 이미 공개된 내용보다 더한 폭로들이 국감장에서 추가 공개될 가능성이 제기돼 여권 내에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녹취록 공개 이후 언론을 통해 연일 폭탄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의 입은 정가의 ‘태풍의 눈’으로 자리 잡고 있다. 명씨는 김 여사는 물론 윤 대통령과 수시로 연락을 나누고 만남을 갖는 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난 총선은 물론 대선 과정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도 강조했다. 2021년 대선 경선 당시엔 약 6개월간 아침마다 김 여사가 전화를 했고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언제 입당해야 되는지도 물었다’고 폭로했다. 

파장의 시작점이었던 김 여사의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 공천 개입 논란에 대해서도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명씨가 대선 당시 윤 대통령에게 이른바 ‘조작된 여론조사’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김 전 의원이 2022년 6월 경남 창원의창 재보궐 선거에서 공천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야당은 ‘대가성 공천’임이 입증될 경우 명백한 ‘국정 농단’이자 ‘대통령 탄핵 사유’라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런 와중에 명씨는 “나를 수사하면 (윤 대통령이) 한 달 안에 하야하고 탄핵될 텐데 감당할 수 있느냐”는 발언을 일삼으며 추가적인 ‘논란’을 암시했다. 정치권에선 검찰이 압수해간 명씨의 휴대전화 6대 속 텔레그램 문자 내용이 윤석열 정부를 옥죌 ‘판도라의 상자’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 여사와 관련된 녹취록엔 급기야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데자뷔를 일으킬 ‘십상시’ 용어까지 등장해 야당의 ‘탄핵’ 주장에 또 한 번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김대남 전 행정관은 녹취록에서 “젊은 십상시 4인방이 김 여사와 네트워킹이 돼 (자신들의 상관인) 수석을 빼버리고 (국정을) 쥐었다 폈다 한다”고 폭로하며 4인의 실명까지 거론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위증교사 혐의 관련 1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김건희 측근 ‘8상시’가 정진석 비서실장마저 패싱”

복수의 취재원에 따르면, 녹취록 속 4명을 포함해 대통령실 내 김 여사의 지휘를 받고 움직이는 참모는 8명가량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주니어 4명, 시니어 4명으로 분류돼 ‘8상시’로도 불리며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 등 ‘윗선’마저 곧잘 패싱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상 대통령실 내 업무 및 보고 체계가 ‘김건희 팀’에 의해 흐트러져 있다는 지적이다.

여당에서도 이 같은 김 여사 문제로 엎친 데 녹취록까지 덮치면서 ‘참담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여당 관계자는 “김 여사가 대통령의 탄핵 시계를 가장 재촉하고 있는 것 같다”고도 토로했다. 바깥으로 나가면 안 되는 기밀들이 최근 언론 등을 통해 속속 폭로되는 현상을 두고 이미 현 정부가 ‘레임덕’에 접어들었음을 방증하는 증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김 여사 리스크는 당내 ‘김 여사 손절’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김 여사의 ‘사과’를 제안해온 비윤(非윤석열)·친한(親한동훈)계에서는 이젠 “사과도 늦었다”며 대통령실에 추가 행동을 압박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급기야 “검찰 기소가 최선”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다음번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 땐 지금까지와 다른 규모의 ‘이탈표’가 발생할 거란 경고 섞인 예고도 들려온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당장 김 여사 사과는 어려우며, 특검법 등 김 여사 관련 공세에 강경하게 맞서겠다는 기조를 여전히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야당에 ‘공격 빌미’를 열어주고 탄핵 분위기만 더 키워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여권에선 정권 초반부터 윤 대통령이 여사와 관련한 ‘쓴소리’엔 귀를 닫아버리고 때때로 격노도 한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최근 윤 대통령이 ‘여사 리스크’를 해소하라는 검사 선배들의 조언에 “제가 집사람한테 그런 말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다는 일화가 알려지기도 했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 사이의 이 같은 ‘관계성’ 탓에, 윤 대통령이 등에 짊어진 무거운 김 여사 리스크를 자발적으로 내려놓을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는 회의론이 여권 안에 적지 않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월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월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李 사법 리스크, 탄핵 민심 주저케 하는 ‘심리적 방지턱’ 돼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 탄핵의 ‘연료’가 김 여사라면, 야당의 탄핵 가속에 ‘심리적 방지턱’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이 아이러니하게도 이재명 대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권 심판과 김 여사 수사를 원하는 중도 민심이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르는 데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발목을 잡는다는 얘기다. 한 보수 인사는 “보수 지지층에서도 윤석열 정권이 빨리 끝나고 새 리더가 세워지길 바라는 사람이 정말 많다”면서 “그럼에도 탄핵과 조기 대선까진 반대하는 건, 이렇게 될 경우 차기 주자로 이재명 대표가 유력하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현재 민주당의 정치 시계는 온통 11월 이 대표의 1심 선고에 맞춰져 있다. 탄핵 정국을 서두르는 대외적 이유는 쌓이는 김 여사 리스크와 정부의 실정이다. 그러나 “10월에 끝장을 보겠다”며 유독 속도를 높이는 이유엔 최근 빨라진 이 대표의 ‘사법 시계’가 자리 잡고 있다.

민주당의 탄핵 및 조기 대선 의지는 한층 ‘노골화’됐다. 민주당은 10월 들어 ‘김건희 심판본부’와 ‘이재명 집권플랜본부’를 당내에 정식 출범시켰다. 전자로 현 정권을 무너트리고 후자로 ‘이재명 정부’를 준비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에 앞서 9월27일엔 강득구 민주당 의원 주선으로 한 시민단체가 국회 안에서 ‘탄핵의 밤’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에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10월8일 시사저널TV에서 “사실상 대선캠프를 꾸린 것이며 이미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에 돌입한 셈”이라며 “10월 국감에서 큰 걸 터뜨려 11월 이 대표 1심 선고 전에 정권을 끌어내리고 ‘조기 대선 모드’로 가겠다는 빌드업”이라고 봤다.

박근혜 때와 달리 보수층 ‘탄핵 기류’는 약해

이러한 ‘탄핵 과속’은 이 대표의 ‘유죄 선고’에 대한 민주당 내 불안을 방증하는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검찰은 9월20일과 30일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위증교사 혐의에 대해 각각 징역 2년과 3년을 구형했다. 대법원 양형 기준 상한선을 꽉 채운 것으로, 의원직 상실·5년 피선거권 박탈에 해당하는 ‘유죄’ 선고 가능성이 한층 커진 것이다.

이 대표의 메시지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이 대표는 구형이 나오기 전인 지난 9월초만 해도 측근들에게 “대통령 탄핵은 인위적으로 하기 정말 쉽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10월5일 10·16 인천 강화군수 보궐선거 지원유세 현장에선 “선거를 기다릴 정도가 못 될 만큼 일을 제대로 못하면 도중에라도 끌어내리는 것이 민주주의고 대의정치”라며 사실상 탄핵을 암시했다.

당내에 탄핵 추진이 급하면 체할 수 있다는 ‘신중론’이 없진 않다. 지금까지는 역풍이 적었다 하더라도 이 대표 선고의 ‘방탄’ 성격으로 탄핵에 속도를 낸다는 인식이 퍼질 경우 반감을 키울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 탄핵의 ‘당위성’과 ‘현실성’ 사이 괴리도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탄핵 공감대가 높더라도 ‘현실성’, 즉 실질적인 탄핵에 필요한 중대한 위법행위 입증이 현재로선 부족하기 때문에 속도 조절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근혜 탄핵’ 때와 정치권 내 분위기가 다르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당시는 보수에서도 탄핵에 대한 찬성 여론이 우세해 빠르게 바람을 탔지만, 지금은 여당이나 보수 지지층 사이에서 그와 같은 기류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여야가 어느 때보다 극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는 데다, 길고 어두운 ‘탄핵의 강’을 건넜던 ‘학습효과’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탄핵에 동조할 가능성은 더욱 적다는 분석도 나온다.

진중권 교수는 “한동훈 지도부가 비록 김건희 특검법 등에 대해 대통령실과 입장을 달리할 순 있겠지만 그렇다고 대통령 탄핵에까지 찬성할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며 “설령 국회에서 탄핵이 되더라도 대부분 사유들이 정치적 공세에 가깝기 때문에 (헌법재판소) 인용 가능성도 현재로선 낮다”고 내다봤다. 한 야권 관계자도 “민주당이 민심을 앞질러가면 안 되는데 자꾸 민심보다 빠르게 탄핵을 외치고 있어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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