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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적 캐릭터·사연으로 승부수 던진 ‘수녀 버디 무비’

금기이기에 더 어둡고, 간절하기에 한층 처절하다. 《검은 수녀들》은 2015년 개봉해 54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검은 사제들》의 스핀오프, 즉 새롭게 파생한 작품이다. 구마(사람이나 사물에 깃든 악령을 몰아내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의식)를 둘러싼 기본적인 세계관은 공유하지만 독자적 캐릭터와 사연으로 승부수를 띄운다. 오컬트의 불모지와 같았던 한국 영화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전작의 분위기는 이어가면서도, 《검은 수녀들》만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내려간 노력이 여실히 보인다. 사제가 아닌 수녀들. 빛의 영광이 아닌 지옥의 두려움을 껴안아야 하는 이들. 악령이 들린 소년을 살리기 위한 사람들의 금지된 사투는 밝은 빛이 아닌 깊은 어둠을 향할 수밖에 없다.  

영화 《검은 수녀들》 포스터 ⓒ(주)NEW 제공
영화 《검은 수녀들》 포스터 ⓒ(주)NEW 제공

2015년 개봉한 《검은 사제들》의 스핀오프

《검은 수녀들》의 유니아(송혜교) 수녀에게 구마는 ‘사람을 살리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명료한 사실이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 교리에서 금기시되는 것들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허용한다. 유니아는 소년 희준(문우진)의 몸에 깃든 12형상 중 하나인 악령을 쫓고 있다. 대사로 언뜻 제시되는 ‘김범신(《검은 사제들》에서 김윤석이 연기한 캐릭터)의 제자’라는 타이틀이 그가 속한 집단과 위치를 말해 준다.  

서품(교직자들에게 성직을 수여함)을 받지 못한 수녀는 구마 의식에 참여할 수 없다. 가톨릭 교리 내 가장 낮은 지위를 지닌 수녀이기에, 유니아는 구마를 둘러싸고 번번이 신부와 교주들의 은근한 무시와 불호령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유니아는 필요하지 않은 말들에 일일이 휘둘리는 인물이 아니다. 모두가 그에게 “명분”을 물을 때, 유니아는 강단 있게 대응한다. “사람을 살리는 데 무슨 명분이 필요해?”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방관도 살인입니다.” 

그런 그가 찾은 사람이 미카엘라(전여빈) 수녀다. 유니아는 미카엘라가 자신과 같은 부류의 영적 능력자임을 알아본다. 바오로(이진욱) 신부의 제자인 미카엘라는 부마(악령이 들리는 현상)를 의학적 치료가 가능한 병리적 차원으로 바라보고 접근하는 바오로의 입장을 고수하려 한다. 따라서 처음에는 유니아의 행보에 불편함을 드러내지만, 결국 유니아의 설득에 마음을 돌려 그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검은 사제들》이 서울 명동의 뒷골목과 밤을 밝히는 한강 다리를 가로지르며 낯설고도 흥미로운 풍경을 제시했듯, 《검은 수녀들》 역시 구마 의식을 동시대 한국 도심의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일로 끌어다 놓는다. 소년을 살리려는 안간힘으로 피와 땀을 흘리는 이들은 교구의 공식적 인정을 받을 수도, 구체적인 지원을 청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빛의 영광을 누리는 것이 아닌 어둠의 대항마를 자처하는 이들. ‘검은 수녀들’의 존재는 그렇게 탄생한다. 

유니아와 미카엘라의 결합은 그 자체만으로 영화 안팎에서 두루 공명하는 지점이 있다. 자신을 겁박하기 위해 듣기 힘든 욕설과 조롱을 내뱉는 악령의 입에 십자가를 박아 넣고 “짜증 나네”라는 말로 간단히 처리해 버리는 태도. 유니아의 이 결기는 작품의 세계관 안에서 그가 어떤 시간을 인내하며 살아온 캐릭터인지 그 생략된 영역을 보여주는 동시에, 수녀 캐릭터라는 데서 은연중에 자애로움을 상상했던 관객의 기대를 보기 좋게 깨뜨린다. 

가톨릭 교리의 법칙들이 서품을 받은 남성 중심의 질서로 돌아가듯 장르 영화, 그중에서도 오컬트 장르 내 여성 투톱이라는 구도 자체가 한국 영화계에 전례 없이 귀한 풍경이다. 관록의 송혜교, 기세 좋은 후배 배우 전여빈이 만들어가는 색다른 ‘수녀 버디 무비’의 행보는 모든 것을 사랑으로 품는 종교인의 고결한 여정이 아니라 하나의 목표를 위해 동료의식으로 끈끈하게 뭉친 파트너십에 의한 것임을 선언한다.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주)NEW 제공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주)NEW 제공

인정받지 못하는 자들이 만든 하나의 걸음 

작품이 지향한 분위기 자체는 《검은 사제들》에 비해 한층 어둡고 차분한 편이다. 《검은 사제들》은 조금은 헐렁한 매력의 ‘열두 번째 보조 사제’ 최부제(강동원)를 통해 극의 중반까지 그나마 유머의 숨구멍을 심어둔 편이다. 그는 김범신 신부와 구마 의식을 치르면서, 어린 시절 동생의 죽음을 어쩔 수 없이 방관했다는 과거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 한 뼘 더 나아간다. 그런 점에서 《검은 사제들》은 최부제의 성장 스토리이기도 하다. 

《검은 수녀들》의 경우는 유니아에게로 초점이 좀 더 분명하게 맞춰져 있다. 어린 시절 ‘귀태’, 즉 악령과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저주받은 아이라 일컬어지는 존재였던 미카엘라의 과거 사연이 등장하는 데 반해 유니아의 전사(前史)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 《검은 사제들》의 부마자 영신(박소담)은 김범신 신부가 아끼는 신도였던 것에 반해, 《검은 수녀들》의 유니아와 희준 사이에는 별다른 사연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유니아에게 소년을 살리는 일은 생의 마지막에서 그간 자신이 종교인으로서 걸어왔던 모든 시간을 걸고 완수해야 할 과업에 가깝다. 그의 걸음과 뒷모습이 비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분 역시 따지지 않겠다는 유니아의 말처럼 구마 의식에는 모든 종교를 넘나드는 온갖 방법이 동원된다. 과거 동료이자 수녀 출신 무당(김국희)의 법당에 찾아가 희준의 상태를 진단하는가 하면, 물의 속성을 지닌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 바닷가에서 굿판을 벌이기도 한다. 미카엘라는 어린 시절 큰 트라우마를 남기고 떠난 친구로부터 받은 타로카드를 소중히 보관하고 있으며, 필요한 순간 이를 이용해 점괘를 보며 유니아를 보조한다. 모두 가톨릭 교리의 전통적 관점에서는 터부시되는 것들이다.  

마지막 구마 의식 장면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자들’의 움직임이 소년을 살리기 위한 하나의 걸음이라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건물 바깥에선 무당의 신아들이 경문을 외며 북을 울리고, 안쪽에선 십자가와 성수를 쥐고 간절하게 기도문을 읊는 수녀들의 사투가 벌어진다. 불필요한 점프 스케어(공포영화에서 관객을 갑작스럽게 놀라게 하기 위해 만든 장면) 대신 진득한 에너지로 쌓아올린 장면의 무게감이 가볍지 않다.  

아기돼지의 몸속에 악령을 가둔 뒤 강물에 던지는 방식으로 의식을 치렀던 《검은 사제들》과 달리 《검은 수녀들》은 악령의 봉인을 둘러싸고 조금은 과감한 선택을 한다. 남성 사제와 달리 수녀가 주인공이 됐기에 만들 수 있는 결말이다. 여성 신체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택했다는 데 약간의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오컬트 공포 장르 안에서의 익숙한 클리셰로서 용인되는 지점도 있다. 삶 전체를 종교적 교리에 바치는 숭고한 선택을 한 자들임에도 모두가 숭고하게 경배하는 마리아는 될 수 없는 수녀들의 아이러니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영화 전체의 맥락과도 연결되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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