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생계형 의사 양성관의 유쾌한 분투기 《의사란 무엇인가》

의대 증원 문제가 의료 시스템에 혼란을 불러오기 훨씬 전부터 지역·공공 의료 붕괴, 필수과 기피 등 한국 의료 시스템은 위기에 몰려 있었다. 의사가 사람을 살리기보다 자기의 배를 불리는 데 급급하다는 비난도 들어야 하는 위기의 시대, 우선 의사에 대한 본질적 질문으로 되돌아가야 할지 모른다. 현직 의사 양성관씨는 《의사란 무엇인가》란 책을 펴내며 진솔하고 진정성 있는 태도로 시대적 질문에 답했다.

“사람들은 의사를 힐러(healer), 즉 치료자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전사(fighter)에 가깝다. 각종 질병과 싸우는 게 주된 일이지만, 때로는 환자나 보호자와도 다투게 된다.”

그렇게 양씨는 의사가 다루는 게 단지 병뿐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사람을 설득하는 건, 막힌 혈관을 뚫거나 암을 도려내는 수술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질환을 고치는 건 의학적 ‘기술’이지만, 사람을 움직이는 건 ‘마음’이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의사는 성적만 보지 말고, 인성도 봐야 한다’고. 하지만 하루 80~100명의 환자를 보는 진료실에서, ‘인성’은 지속될 수 있을까? 진료실엔 따뜻한 말 대신 차가운 숫자가, 진찰 대신 검사가, 사람 대신 질병만 남는다. 한국의 1인당 외래진료 횟수는 연 14.7회로 OECD 평균 5.9회의 2.5배다. 의사 1인당 연간 진료 환자 수 역시 세계 1위. 한국은 6989명, 그다음이 터키와 일본이다.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진찰료가 낮아 진료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양씨는 20여 년간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며 겪은 씁쓸한 경험들은 물론, 매출을 걱정하며 양심과 다투기도 하는 현실 의사의 고민과 함께 우리 사회의 의료체계 문제도 진솔하게 풀어냈다. 현재 시스템에서 의사가 많은 환자를 빠르게 진료하지 않으면 병원은 살아남을 수 없다. 또한 낮은 수가는 ‘검사 중심 진료’를 유도한다. 병원들은 ‘시간이 부족하니 증상을 듣기보단 검사로 먼저 확인하고’ 매출을 일으킨다. 그에 더해 각종 민원과 의료소송 리스크는 의사의 치료 의지를 더욱 위축되게 만든다. 양씨가 주장하는 바는 명확하다. 환자와 충분한 대화를 통해 편안한 진료가 가능하도록 의료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진료는 주치의로서 한 사람당 15분씩 진료하는 것이다. 출생부터 지금까지의 건강 이력, 현재 증상부터 미래에 조심해야 할 질병이나 고쳐야 할 습관까지. 말 그대로 ‘주치의’로 진료와 상담, 더 나아가 인생을 함께하는 진료다. 하지만 이 방식대로 병원을 운영하면, 나는 이미 망해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