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을 이유로 대법원장을 쫓아낸다? 대한민국 삼권분립을 뿌리째 뒤흔들어
‘이재명 재판’을 대선 전에도 대선 후에도 하지 말라? 특정인을 위한 위헌적 입법
12·3 비상계엄으로 시작되었던 대한민국의 혼란과 위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으로 파면된 이후에도 이재명 후보의 사법 리스크와 이를 막기 위한 민주당의 사법부 압박이 대한민국의 위기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안 그래도 한덕수 총리에 이어 최상목 경제부총리까지 사퇴하면서 이주호 교육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고, 이를 바라보는 주변 국가들의 우려도 계속 커지는 상황이다. 그런데 대법원이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이래 민주당의 사법부 압박이 도를 넘고 있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이재명 판결이 대선 개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사법부의 판결이 대선 개입이라면 대선 전에는 아무런 재판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게 말이 되는가?
‘법 앞의 평등’ ‘법률의 일반성’ 붕괴
이재명 후보의 다른 사건들은 차치하더라도,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재판하지 말라는 것은 공직선거법에 따른 각종 제한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자는 것이 된다. 관권선거나 금권선거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나? 그런데 21세기에 그에 못지않은 심각한 문제로 인정되는 가짜뉴스 유포에 대해 선거가 끝나기 전에는 재판하지 말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이제는 아예 노골적으로 대선 전에도 재판하지 말라, 대통령으로 당선되어도 재판하지 말라, 결국 사실상 유죄가 확정된 상태에서도 대통령 임기를 보장하라는 것이 민주당의 주장이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되면 법 앞의 평등은 깨어지고, 법률의 일반성도 무너진다. 특정인을 위해 법률을 만드는 것이 공정할 수 없다는 상식조차 사라지고 있는가?
대법원이 5월1일로 선고기일을 지정했을 때, 민주당은 이에 대해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았다.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무죄 판결을 내릴 것으로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민주당은 대법원이 충분한 심리 없이 졸속으로 결정했다거나, 대선 개입을 위해 무리하게 서두른 판결이라는 등의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결국 판결 결과의 유불리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미 오래전부터 정치인 관련 사건에서 재판 지연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매우 높았다. 그런데 재판 지연이 아닌, 헌법상 요구되는 신속한 재판을 한 것이 대선 개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민주당이 대법원 판결을 문제 삼아 대법원장 및 대법관들에 대한 탄핵소추를 강행할 경우에는 대한민국의 삼권분립을 뿌리째 뒤흔들게 될 것이다. 이미 민주당의 탄핵소추 남발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쌓여 있다. 박근혜·윤석열 대통령 사건을 제외한 모든 탄핵소추는 헌법재판소에서 각하 또는 기각되었다. 그중에는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한덕수 총리에 대한 것도, 감사원장이나 행안부 장관, 법무부 장관 및 검사들에 대한 것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기각되었지만, 탄핵소추로 인한 직무정지가 국정 혼란의 큰 원인이었던 점을 부정할 수 없다.
탄핵소추를 위해서는 헌법 제65조 제1항에 따라 대법원장 및 대법관들이 직무집행에서 위헌·위법한 행위를 했어야 하는데,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재판한 것이 위헌·위법이라면 도대체 사법의 독립성과 중립성, 공정성이 어떻게 지켜지겠는가? 그런데 대법원장과 대법관 탄핵소추로 사법부까지 직무정지로 인한 기능 마비에 빠뜨리겠다는 것은 대한민국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정치와 사법의 ‘긴장 속 균형’ 깨져
민주당은 대법원을 압박하기 위해 재판소원 도입과 대법관 증원까지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하필 이 시기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사법제도 개혁을 위한 진지한 논의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면,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인정할 수도, 이에 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맥락에서 이런 주장들이 나왔는지가 너무 분명하다. 얼마 전 ‘문형배·이미선 임기 연장법’이라 일컬어지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 또는 대통령 당선인에 대해 재판을 정지시키는 내용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마찬가지로 특정인을 위한 입법은 ‘법 앞의 평등’에 위배되는 것이며, 위헌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재판소원 도입 주장은 이를 위한 현실적 전제조건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우리 헌법재판소의 모델이 된 독일의 경우 연방헌법재판소는 각기 8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되는 2개의 부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개의 부가 각기 활동하면서 재판소원 사건들까지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재판소원을 도입할 경우,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우리 헌법재판소가 폭증하는 사건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재판소원을 도입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는 헌법 개정을 통해 독일처럼 헌법재판소의 구성을 최소 2개의 부로 나누면서 업무처리능력을 배가하는 것이다. 현 상태에서 재판소원을 도입하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기능 마비를 초래할 것이다.
이는 마치 수도 이전 공약과도 비슷한 공약(空約)이 될 우려가 크다. 앞뒤 따지지 않고 일단 밀어붙이자는 식의 입법은 실패가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수도 이전에 따르는 세계 각국 대사관 및 외교관저, 기업 및 언론사의 이전 등 추가적 수요, 비용 등에 대한 정밀한 득실 계산 없이 일단 추진하는 것이 성공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민주당의 압박에 사법부가 이미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5월15일로 기일을 정했던 파기환송심에서 기일을 6월18일로 연기했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재판 지연을 막겠다고 집행송달을 특별히 주문했던 재판부가 이렇게 태도를 바꾼 것이 민주당의 압박과 무관하다고 볼 수 있을까?
정치적 압력에 굴복해 기일을 늦추는 재판부가 판결 내용에는 정치권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믿을 수는 없다. 이미 기일 변경으로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다시금 심각하게 추락했고, 정치 불신과 사법 불신이 중첩되면서 대한민국의 위기도 탈출구를 찾는 것이 더 어렵게 되었다.
정치와 사법은, 나아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긴장 속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다수결을 앞세워 정치가 사법을 압박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합리적 긴장관계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자기부정, 자기모순이 된다. 그러한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장래는 매우 어두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