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탄핵·청문회·특검 강공? ‘중도 확장’ 전략에 큰 방해 된다”
사법 리스크 불확실성 줄인 李…“이제 남은 변수는 이재명 자신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또 한번 반전의 계기를 맞았다. 서울고등법원이 5월15일로 예정됐던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 파기환송심의 첫 공판을 대선 이후인 6월18일로 연기하면서다. 5월1일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단 이후 고속으로 움직이던 사법 리스크의 시계가 대선 때까지 멈춰서면서 이재명 후보를 위협하던 최대 변수가 제거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제 대선의 시계는 이 후보를 중심으로 더욱 빠르게 돌고 있다.
당초 민주당은 서초동 분위기를 심상치 않게 보고 있었다. 대법원의 이례적인 속도전 직후 서울고법도 대선을 보름 이상 남긴 5월15일 이 후보의 파기환송심 첫 공판 일정을 잡으면서 대선 전 유죄 확정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팽배했다. 만일 대선 전에 서울고법에서 벌금 100만원 이상 유죄를 선고하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할 경우 공직선거법에 따라 이 후보가 대선에 나서지 못하게 되는 최악의 경우의 수다. 이 후보로선 지난 3월 선거법 2심 무죄로 대권 가도에 탄력을 받던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지뢰밭을 만난 셈이었다.
李 재판 연기에도 野는 여전히 “탄핵” 거론
그러나 이 후보의 재판 연기 신청을 서울고법이 전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불확실성은 일순간에 해소됐다. 이어서 서울중앙지방법원 역시 대장동 의혹 관련 재판 일정을 대선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정치권에선 일단 이 후보가 최대 약점이자 장애물로 꼽힌 사법 리스크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여전히 확정 판결이 나오지 않은 5개의 재판이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이제 더 이상 대선 전 사법 리스크가 이 후보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긴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이 후보가 날개를 달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는 사법 리스크가 살아있는 상황에서도 독주를 이어갔다. 뉴스1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5월4~5일 전국 유권자 10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선후보 선호도 여론조사(전화 면접 방식, 95% 신뢰수준에 ±3.1%p, 응답률 15.8%,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이 후보는 50%의 지지를 얻으며 선두에 섰다. 21%로 2위를 기록한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와의 격차는 29%이고, 이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14%,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5% 순으로 나타났다. 고법의 공판 연기 결정 이전에 실시된 조사 결과다. 다른 조사에서도 대부분 비슷한 추세가 나타났으며 사법 리스크 해소로 이 후보의 독주엔 더욱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대선까지 이 후보 앞에는 어떤 변수가 남았을까. 우선 재판 상황을 비롯한 외부의 변수들은 대부분 힘을 잃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능성이 남아있는 외부 변수로는 범(汎)보수진영과 일부 진보진영까지 함께할 수 있는 반(反)이재명 빅텐트 구성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빅텐트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도 전에 김문수 후보와 한덕수 예비후보 간 협의에서부터 파열음이 크게 나면서 동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설령 빅텐트가 구성된다 해도 앞에서 거론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단일화 변수는 이 후보를 크게 위협하진 못하고 있다. 3자대결이나 양자대결 등으로 구도와 상대를 달리해도 이 후보는 모두 과반 지지를 얻으며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다만 몇 가지 내부적인 변수가 여전히 남았다는 관측이 있다. 본선 과정에서 자칫 태도나 말에서 상대에게 역전의 빌미를 허용할 수 있다는 지점에서다. 특히 이른바 ‘이재명 포비아’라고 표현되는 공포감과 거부감 등에서 비롯되는 비호감도 관리가 가장 큰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 후보 측과 민주당 내부에서도 핵심으로 꼽는 대선 과제이기도 하다. 이 후보가 대선 정국에서 ‘우클릭’ 행보를 보이며 중도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건 정치권의 공공연한 분석이다. 경선 승리 이후로는 ‘보수 책사’로 평가되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상임총괄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는 등 더욱 파격적인 확장 전략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 선고 이후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이 후보와 민주당의 극단적인 사법부 압박 장면을 두고 지금까지 공들여온 확장 전략에 제동을 걸었다는 지적이 당 안팎에서 나왔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물론 대법관 전체와 서울고법 판사에 대한 탄핵까지 거론하면서 사법부를 몰아세우고, 또 대통령 당선 시 진행 중이던 재판이 임기 동안 중단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강행하는 장면 등이 이재명 포비아에 대한 인식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재명의 태도·메시지가 마지막 변수
이재명 후보도 서울고법의 재판 연기 결정이 나기 전날인 5월6일 직접 사법부를 겨냥해 “사법살인” “3차 내란” 등 맹폭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 후보는 충북 증평군의 전통시장에서 시민들을 만나 “농지개혁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경제체제를 만든 훌륭한 정치인 조봉암도 사법살인이 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 일도 없이 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일이 있다”며 “12·3 내란도 이겨냈고 지금 계속되고 있는 2차, 3차 내란 시도도 아니 내란 그 자체도 곧 우리 국민의 위대한 손길에 의해 정확하게 진압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재판 연기 결정이 난 이후에는 약간의 수위 조절은 있지만, 민주당 내에서 여전히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청문회·특검·탄핵까지 계속 언급되는 등 강경 대응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내부적으로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민주당 중앙선대위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이제 사법 리스크는 사실상 해소됐기 때문에 탄핵과 같은 얘기들은 본선에서 최대한 자제돼야 한다. 중도 확장에 큰 방해가 될 수 있다”며 “이재명 후보와 당의 전략도 투트랙으로 확실하게 분리시켜야 한다고 본다. 이 후보는 최대한 발언 수위를 낮추는 것이 통합 행보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라고 견해를 밝혔다.
사법 리스크 해소와 국민의힘 내홍 등 복합적인 호재로 이 후보가 대선의 9부 능선을 넘었다는 관측까지 나오는 가운데 앞으로 몇 차례 이어질 TV토론 등 본선 과정에서 이 후보의 각종 약점과 리스크를 두고 경쟁자들의 공세가 쏟아질 전망이다. 이미 노출될 대로 노출된 리스크 그 자체보다는 이 후보 자신과 민주당이 그에 어떻게 대응하고 관리하느냐가 대선 승패에 마지막 변수가 될 것이란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런 맥락에서 일각에선 “이재명의 남은 적은 이재명 자신뿐”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