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시 단일화 ‘약속 번복’ 金, ‘협상력 부재’ 韓, 당 지도부는 ‘정치력 상실’
김문수 지원사격 나선 홍준표-안철수, 한덕수 띄우는 친윤
“당이 날 대선후보로 인정하지 않는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
“김문수, 단일화 약속 어기면 국민 배신.”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단일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정말 못 할 일을 하는 것.” (한덕수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
마주 보고 돌진하는 두 열차가 충돌하기 일보 직전이다. 범보수 빅텐트를 위한 단일화 열차 이야기다. 서로 ‘양보는 없다’며 강 대 강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김문수 후보와 한덕수 후보에, 국민의힘 지도부까지 초강수로 대응하면서 당초 기대됐던 감동적인 단일화 상승 효과 시나리오는 물 건너간 분위기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분석이다.
그사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공직선거법 사건의 선고일이 선거 이후로 미뤄지면서 사실상 사법 리스크를 제거하고 대선 레이스를 나홀로 활주 중이다. 출발선에 세울 후보조차 못 정한 국민의힘의 조급함이 최고조에 달한 이유다. 양측 모두 ‘반(反)이재명 빅텐트’ 외에 왜 범보수 연대가 필요한지의 명분과 가치를 사실상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설사 깜짝 합의를 도출하더라도 극적인 시너지 효과는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金·韓 연이어 ‘빈손’ 회동…국민의힘은 내분
6·3 조기 대선까지 남은 시간은 25여 일. 단일화 방식을 놓고 불거진 국민의힘 안팎의 내홍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단일화 논의는 김 후보와 한 후보가 치킨게임 같은 갈등을 빚는 동시에, 김 후보가 국민의힘 지도부와 내전 같은 충돌을 하는 다층적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다. 김 후보와 한 후보가 담판 회동을 전후해 여론전을 펼치는 동시에, ‘당무 우선권’에 방점을 찍은 김 후보와 모든 결정을 국민의힘에 일임한 한 후보의 대리인 격으로 ‘쌍권’(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이 충돌하는 형국이다.
단일화의 세 축은 서로에게 혼란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김 후보는 ‘경선 승리 시 즉시 단일화’라는 약속을 뒤엎고, 급할 게 없다며 단일화 시한을 대선 입후보 마감일인 5월11일 이후로 설정하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 후보와 5월7일 첫 회동을 마친 뒤에도 “(무소속으로라도) 후보 등록을 할 생각이 없는 분을 누가 끌어냈느냐”며 당내 친윤(親윤석열) 세력의 ‘한덕수 차출론’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지난 경선 과정에서 “나는 김덕수(김문수+한덕수)”라며 단일화 의지를 내세워 친윤 등 당내 지지를 얻은 것과 달리 선출 이후 달라진 태도를 보이면서 분란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표출되는 강경한 모습과 달리 내부적으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낙관과 무리수 사이에서 당초 그리던 그림이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쌍권 체제’ 권영세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5월3일 김 후보 확정 당일 밤부터 자당 대선후보를 지원하기보다는, 곧바로 “단일화를 시작하자”는 압박부터 가했다. 경선 때부터 ‘한덕수 띄우기’ 밑작업에 들어갔던 친윤 세력도 돌변한 김 후보의 태도에 당황한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급기야 권성동 원내대표는 단일화를 촉구하며 단식 투쟁 등으로 김 후보를 압박하고 있지만, 당 내부에서는 전략 부재와 협상력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후보는 김 후보에 맞서 5월11일까지 단일화를 이루지 못하면 ‘무소속 출마’를 포기하겠다는 배수진을 쳤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김 후보의 모습에 스텝이 꼬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수진영에서는 오히려 대권에 대한 책임감 부족이라는 쓴소리가 뒤따랐다. 여기에 한 후보를 향한 ‘부전승’ ‘무임승차’ 꼬리표도 여전히 부담이다. 김 후보가 총 3억원의 기탁금을 내고 당 경선에 참여해 약 20일간 11명의 후보자 중 최후의 1인이 되기까지 치열한 경선을 치른 것과 달리, 한 후보는 당원과 국민으로부터 대선후보로서의 검증 자체를 받지 않았다.
서로를 향해 마주 달리고 있는 단일화 열차는 점차 충돌 직전까지 다가서는 모습이다. 두 후보가 5월8일 국회에서 진행한 2차 회동 역시 빈손으로 끝났다. 김 후보는 한 후보가 즉각 입당해 경선을 치르면 바로 응하겠다고 강조했지만, 한 후보는 ‘선(先)단일화 후(後)입당’ 입장을 고수했다. 한 후보는 경선이 끝나고 뒤늦게 출마를 선언한 이유로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미국 관세 등 국정 현안에 대응해야 했던 점을 들었다. 단일화 무산 가능성이 커지자 당 내부에선 친윤 세력을 중심으로 탈당을 해서라도 한 후보를 대선후보로 만들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문수와 당 중 누가 굴복하나’ 치킨게임 양상
감동적인 단일화가 무산되면서 극적으로 단일화가 이뤄져도 그 시너지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지금 보수 후보들은 지지율을 다 합쳐도 이재명 후보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당이 내전 끝에 단일화에 성공해도 ‘이재명 대항마’ 효과가 미미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그 이유로 ①이전투구식 단일화 과정으로 중도층에 호소할 감동과 원칙이 사라졌고 ②지지 세력이 겹치는 두 후보 간 단일화로 인해 ‘1+1’ 효과가 나타날지 미지수라는 점을 대체적으로 짚었다.
6월3일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보수 지지층과 중도 지지층에 이번 단일화 과정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면서 ‘감동의 단일화’ 서사는 무너졌다는 지적이다. 김문수 후보조차 5월8일 입장문에서 당을 향해 “이런 식의 강압적 단일화는 아무런 감동도 서사도 없다. 단일화는 시너지가 있어야 한다”며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공멸의 길이다. 단일화를 해봤자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도 못한다”고 날을 세웠다.
여기에 ‘후보 교체’ 논란도 더해져 양측의 갈등은 소송전으로 번진 상태다. 당 지도부가 김 후보와 상의 없이 전당대회·전국위원회를 소집한다는 공고를 내자 김 후보를 지지하는 원외 당협위원장들은 ‘개최 중단’을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5월7일 전국위 소집 공고를 내고, ‘대선 최종 후보자 결정을 위한 단일화 여론조사 실시 및 그 결과에 따른 대선 최종 후보자 지명의 건’을 안건으로 채택했다. 방식은 비대면 회의(당 유튜브 중계) 및 ARS 투표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단일화 과정이 최악의 시나리오로 흐르고 있다. 김 후보와 함께 경선을 치렀던 다른 대선후보들이 이번 단일화 과정을 ‘윤석열 재신임’ 투표라고 반발하고 나서면서 탄핵당한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다시금 정국에 호출됐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5월8일 “용산과 당 지도부가 합작하여 느닷없이 한덕수를 띄우며 탄핵대선을 윤석열 재신임 투표로 몰고 갔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의원은 “이미 한덕수 후보가 점지된 후보였다면 경선에 나섰던 후보들은 들러리였느냐”고 비판했다.
극적으로 단일화가 이뤄져도 상승 효과를 내지 못할 것으로 분석되는 두 번째 이유는 후보 간 시너지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대선을 앞두고 단일화하는 이유는 서로 다른 지지층을 끌어모아 전체 표심을 키우는 것이지만, ‘친윤’에 방점을 찍어 ‘중도 확장력’이 낮다는 평을 받는 두 후보는 사실상 지지 세력이 겹친다. 특히 김 후보는 대표적인 탄핵 반대파, 한 후보는 윤석열 정부의 총리 출신이란 점에서 두 후보가 단일화를 이뤄도 ‘정권 교체론’ 찬성 비율이 높은 중도층을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해석이다. 당 지도부는 ‘경제통’ 강점을 내세워 한 후보 차출론을 띄웠지만 탄핵 찬반으로 나뉜 현재 여론 지형에서 ‘김문수-한덕수’ 연합은 실질적 컨벤션 효과가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장 경선 2강까지 진출했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에 대한 지지층 포섭 여부도 관건이다. 장성철 공론센터소장은 “당 지도부가 지금처럼 계속 강성으로 밀어붙이면 한덕수 전 총리가 국민의힘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단일화 효과는 없다. 되레 역컨벤션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며 “한동훈 후보를 지지하던 사람들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고, 김문수 후보 지지자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분열로 인한 부정적 효과만 나타난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국민의힘은 단일화 효과는 ‘까봐야 안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두 후보가 살아온 인생도, 지역 기반도 다 다르고, 추구하는 방향성도 다르다. 그런 정치적 특징을 합쳐 후보를 낸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시너지”라며 “현재 두 후보의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 접전을 보이고 지지 세력이 겹치는 양상은 단일 후보가 없어서다. 그런 와중에도 저희 당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는 점에서 두 후보가 단일화를 이루면 범보수 민심은 하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극한 갈등으로 ‘흥행’도 ‘단일화 효과’도 증발
단일화를 둘러싸고 남아있는 범보수진영의 대선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김 후보가 지금처럼 단일화 마지노선을 5월11일 이후로 미루고, 한 후보도 자신이 선언한 대로 후보 등록을 포기하는 경우다. 둘째, 한 후보의 양보로 김 후보가 독자 출마하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김 후보의 출마가 확정된다. 다만 이렇게 될 경우 그간 홍 전 시장, 한 전 대표, 안 의원 등으로 이루어진 경선 구도로 미루어 봤을 때 탄핵 찬반으로 나뉜 보수진영의 표심을 통합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극적 단일화 성사다. 김 후보가 당과의 불신의 골을 넘어 협상 끝에 여론조사 혹은 토론회, 담판 등을 통해 당과 한 후보의 요구대로 11일까지 단일화를 이룰 경우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사실상 김 후보만으로는 대선 승리가 어렵다는 기조가 깔려 있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이 김 후보를 겨냥해 “단일화에 대한 확실한 약속, 한덕수 후보를 먼저 찾아보겠다는 약속, 그 약속을 믿고, 우리 당원과 국민은 김 후보를 선택했다”며 “이제 와서 그런 신의를 무너뜨린다면 당원과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며 돌연 ‘배신자’ 프레임까지 꺼내드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반면 김 후보는 단일화 마지노선을 최대한 늦추는 전략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지키려는 모습이다. 앞서 당 지도부는 김·한 후보 간 1차 일대일 회동이 결렬된 이후 당헌 제74조의 2(대선후보 선출에 대한 특례) 조항에 따라 대선후보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를 가동하고 자체적인 ‘단일화 로드맵’을 제안하며 압박했지만, 김 후보가 이를 거부했다. 해당 로드맵은 5월8일 오후 6시 후보 간 일대일 TV토론, 이후 당원투표 50%·일반 국민 여론조사 50% 룰을 적용해 9일 오후 4시까지 후보 선호도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방안이었다.
그 대신 김 후보는 단일화 마지노선을 한 후보의 입후보 등록 마감일 이후로 설정했다. 김 후보는 “시너지와 검증을 위해 일주일간 각 후보는 선거운동을 하고 다음 주 수요일(15월4일)에 방송 토론, 목요일(15일)과 금요일(16일)에 여론조사를 해서 단일화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한 후보 측 이정현 대변인은 곧바로 “단일화하지 말자는 얘기”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