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대명’ 구도 깨트릴 회심의 일격? 윤석열은 일단 저항
김용태 “尹 탈당 결단하라”, 김문수는 “탈당은 尹의 몫”
왼쪽으로 기울어진 대선 정국, 판을 뒤집기 위해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반명(反이재명) 빅텐트’ 선봉장을 자처하고 나섰다. 계엄과 탄핵에 대한 입장 차이로, 계파별로, 세대별로 잘게 쪼개진 범보수진영이 한데 힘을 합치면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구도에 충분히 금을 낼 수 있다는 게 김문수 캠프의 셈법이다. 이를 위해 김 후보는 그간 반목했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부터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유승민 전 의원 등 한때 적이자, 친윤(親윤석열)계에서 배신자라 불렸던 이들에게까지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尹, 김문수에 전화해 김용태에 대한 불만 쏟아내”
문제는 김 후보의 범보수 통합 행보에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다는 점이다. 통합의 첫 번째 단추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정리하는 문제. ‘윤석열 탈당’이 대선판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그의 탈당 이슈를 놓고 선거 플레이어들의 손익계산이 분주하고, 보수 진영 내부에 논란이 들끓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캠프의 ‘반윤(反윤석열) 빅텐트’ 세는 빠르게 커져가는 양상이다. 대선 시계의 종착점이 다가오는 가운데 과연 김 후보는 윤석열 탈당 문제를 해결하고 ‘빅텐트 고차방정식’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을까.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홍준표였다면, 한동훈이었다면 쉽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재명 캠프의 한 핵심 관계자는 “통상 TV토론을 준비하면 상대 후보의 장단점, 인간적인 캐릭터를 같이 파악하게 되는데 아무리 봐도 확장력, 경쟁력 면에서 ‘아스팔트 보수’ 출신인 김문수 후보가 가장 손쉬운 상대”라며 이같이 말했다. 대선 경선 전부터 민주당 내부에서 확산했던 이른바 ‘김나땡’(김문수가 대선후보가 되면 땡큐) 전망은 정치적 구호가 아닌 팩트(fact·사실)라는 주장이다.
대선이 보름여 앞으로 다가왔으나 김문수 후보는 좀처럼 이재명 후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5월12~14일 사흘간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통령 후보 지지도 전국지표조사(NBS)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49%가 이재명 후보라고 답했다. 김문수 후보가 27%로 뒤를 이었고,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7%였다(휴대전화 가상번호 이용한 전화면접 방식, 응답률 27.6%,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그러나 김 후보 측은 ‘골든크로스’(지지율 역전)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이 기대하는 반격 카드는 크게 세 가지다. ①‘반명’을 교두보 삼아 중도와 범보수진영을 포괄하는 빅텐트를 띄워 ②3자 구도를 형성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의 단일화에 성공하면 ③이른바 중도층 기반의 ‘이재명 포비아’(공포증) 표심을 흡수할 수 있고, 그러면 왼쪽으로 기운 대선판의 수평추를 맞출 수 있다는 계산이다.
김 후보는 빅텐트를 위한 첫 단추로 ‘당의 얼굴’인 감독부터 교체했다. 단일화 실패 책임을 지고 물러난 친윤계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 자리에 1990년생 당내 최연소 국회의원이자 비윤계로 분류되는 김용태 의원을 새로 앉혔다. 김용태 위원장도 취임과 동시에 반전과 반격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실제 35세 청년 정치인 김용태는 5월15일 승부수를 던졌다. 그는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당과 대선 승리를 위해 결단해 주실 것을 요청드린다”며 윤 전 대통령의 탈당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그는 “여당과 대통령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정당 민주주의를 제도화하겠다”며 “당과 대통령 분리 원칙을 당헌·당규에 반영하고, 대통령의 선거 공천 등 주요 당무에 대한 개입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김용태 위원장이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분명히 한 가운데, 김문수 후보는 자신과 정치적 대척점에서 서 있는 이들에게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다. 강골 보수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 개혁·온건 성향의 보수 인사들을 포섭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우선 단일화를 두고 반목했던 한덕수 전 총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또 경선 과정에서 맞붙었던 한동훈 전 대표, 한때 국민의힘에 몸담았던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에게도 연대 의사를 타진한 상태다. 나아가 김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친윤계 전횡을 비판하며 대선 경선에 불참한 유승민 전 의원에게도 선대위 합류를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후보는 5월13일 부산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출정식·임명장 수여식 후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힘을 모아서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추진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그런 면에서 제가 더 겸손하게 여러분들을 빅텐트로 모시고 겸허하게 말씀을 듣고 그 속에서 대한민국을 다시 한번 위대하게 만들어내겠다”고 말했다.
이어 “(빅텐트 대상으로는) 자유통일당을 염두에 둔다기보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 우리 당에 있다가 밖으로 나간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 반이재명을 생각하고 있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라고 언급한 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 중 저와 감옥에 같이 있던 분들이 있는데 노조 운동을 격렬하게 한 이들 중에는 이재명 후보보다 제가 낫다(고 하는 분들도 계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분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도덕적인 부분을 보고 빅텐트를 지지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자신했다.
한덕수·한동훈·이준석에 러브콜은 보내고 있지만…
김 후보도 통합을 위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우선 김 후보는 12·3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했다. 5월15일 김 후보는 국회에서 연 긴급기자회견에서 “설사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 비상대권이라도 경찰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국가적 대혼란이 오기 전에는 계엄권이 발동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진심으로 정중하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5월12일 방송 인터뷰에서 “계엄으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들께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 데 이어 거듭 계엄에 대한 사과 입장을 밝힌 것이다.
문제는 김 후보의 의지와 달리 ‘반명 빅텐트’가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덕수 전 총리는 김 후보 지지 의사는 밝혔으나 선대위 합류는 거부했으며, 진보진영 내 대표적 반명계 인사인 이낙연 전 총리 역시 캠프에 합류하지 않았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역시 “국민의힘과 같이 이번 계엄 사태에 책임이 있는 정당이 단일화를 운운하면서 대선에 대한 정치공학적 요구를 하는 것 자체가 국민들에게 지탄받을 일”(5월15일 KBS라디오)이라며 연대 가능성에 확실한 선을 그었다.
정치권에선 국민의힘 내 여전한 ‘윤심’(윤 전 대통령 의중) 영향력이 빅텐트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후보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출당 요구에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자 비윤 인사들이 빅텐트 합류를 망설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선대위 합류를 거부한 한동훈 전 대표 역시 김문수 후보에게 ‘윤석열의 강’을 건너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그는 SNS를 통해 김 후보에게 ‘12·3 비상계엄 및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 것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을 요구했다. 김 후보가 기존 소신을 꺾지 않는다면 김 후보를 적극적으로 돕기 어렵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캠프 안에서도 윤 전 대통령과 확실한 관계 단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용태 비대위원장의 공개 탈당 요구에 이어 이정현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도 5월15일 “당의 미래와 보수의 재건을 위해 오늘 중으로 윤 전 대통령에게 자진 탈당을 권고할 것을 제안한다. 국민의 90%가 잘못했다고 인식하고 있는 계엄령 선포에 대해서도 당의 책임을 표명하고 국민께 공식 사과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재명은 홍준표 세력 등 ‘反윤석열 빅텐트’ 만들기
김 후보는 “윤 전 대통령의 탈당은 본인이 판단할 문제”라는 기조를 유지했다. 자당이 배출한 대통령에게 탈당을 권고하는 것은 대통령 후보다운 모습이 아니라는 게 그의 입장이다. 김 후보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이지, 대통령 후보로 나선 사람이 ‘탈당하십쇼’ ‘탈당하지 마십쇼’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 후보는 또 윤 전 대통령에 대해 만장일치로 파면을 결정한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해서도 “공산국가에서 그런 일이 많다”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서는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헌재의 결정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다만 김 후보가 자신의 난처한 상황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김용태 비대위원장이 악역을 맡도록 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일종의 역할분담론이다. 김 후보가 탈당에 거부감을 보이는 윤 전 대통령의 저항을 의식했다거나, 후보 캠프에 포진한 친윤 인사들에 포위됐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당의 핵심 관계자는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의 거취 문제를 거론해 온 김용태 위원장에 대한 불만을 김문수 후보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쏟아냈다는 얘기도 흘러 나온다”라고 귀띔했다. 김용태 위원장의 공식 탈당 요청에 대해서도 일단 윤 전 대통령의 저항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광장의 친윤 지지층이 ‘윤석열 탈당’ 요구에 어느 정도 반발할지도 향후 김문수 빅텐트의 성패를 가를 요인이다.
이재명 후보의 ‘반윤 빅텐트’는 세를 불려가는 모습이다. 국민의힘 소장파 의원이었던 김상욱 의원이 탈당 후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한 가운데 홍준표 전 대구시장 지지자들(홍사모·홍사랑·국민통합찐홍·홍준표캠프SNS팀 등)도 이 후보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김 후보에게 선대위원장직 제안을 받았던 홍 전 시장은 미국으로 출국한 후 SNS를 통해 “그 당이 내게 베풀어준 건 없다. 박근혜 탄핵 이후 궤멸한 당을 내가 되살렸을 뿐”이라며 친정을 향한 맹비난을 쏟아냈다.
과연 김 후보의 과감한 변화를, 대선판의 드라마틱한 반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정치 전문가들은 김 후보가 변화의 폭, 속도를 망설이는 시기가 길어질수록 ‘골든크로스 가능성’은 낮아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김문수 후보가 계엄, 탄핵과 관련해 전향적인 입장을 밝히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대선 전략”이라며 “그러나 메시지보다 중요한 것이 메신저의 신뢰도다. 유권자들이 대선후보의 진정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면 추후 입장을 바꾼다 해도 표심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