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울시의 기존 ‘지반침하 안전지도’, 싱크홀 예방 효과 거의 없어
대형 싱크홀 원인은 지하 굴착공사…“깊은 지하 지질지도 있어야”
“서울시는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즉각 공개하라!” 3월24일 서울시 강동구 명일동에서 대형 땅꺼짐(싱크홀)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4월11일 경기도 광명시에서 또다시 땅꺼짐 인명 피해가 이어지자, 시민들의 불안은 커져 갔다. 서울시가 땅꺼짐 사고 대비를 위해 제작했다는 ‘지반침하 안전지도’(우선정비구역도)의 공개를 거부한 것에 대해 4월30일 시민단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이같이 강하게 반발했다.
대낮에 길을 지나다가 갑자기 사망하는 사고까지 발생하는 등 시민들의 불안이 가중되는 상황 속에서도 왜 서울시는 지도를 공개하지 않는 것일까.
시사저널의 취재를 종합한 결과, 서울시가 연이은 땅꺼짐 사고에도 공개하지 않아 논란이 된 지반침하 안전지도는 당장의 땅꺼짐 예방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자료인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던 셈이다. 시는 이에 새로운 안전지도를 제작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지도 제작에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당장의 시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싱크홀 막으려면 지하 10m 이상 파악해야”
서울시는 시민 불안 해소를 위해 우선 빠르게 제작할 수 있는 ‘GPR(지표투과레이더) 탐사지도’를 6월부터 우선적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지하 얕은 곳의 소형 땅꺼짐만 탐지할 수 있다는 한계 때문에 새로운 지도 제작 등 근본적인 대응 방안이 마련되기 전까지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반침하 안전지도는 지난해 8월 발생한 서대문구 연희동 땅꺼짐 사고 이후 서울시가 지반침하 위험도를 예측하기 위해 제작했다는 지도다. 올해 3월 명일동 땅꺼짐 사고가 일어나자 이 지도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지만 시는 “오해를 낳고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이에 시민들이 ‘서울시가 위험 지역 부동산 가격 하락을 우려해 안전지도를 비공개하는 게 아닌가’라며 항의하자, 시는 해당 지도가 당장은 땅꺼짐 위험 분석에 큰 실효성이 없다고 인정했다.
서울시는 지반침하 안전지도에 지하수 흐름이나 토질 등 땅꺼짐 분석에 필수적인 지질 정보가 부족하며, 이 지도는 상하수도관 등 지하 매설물의 위치를 파악해 GPR 탐사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내부 참고용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GPR은 전자기파를 방출해 땅 밑의 공동(空洞) 같은 땅꺼짐 위험 요소를 탐지하는 장비다. 하지만 지하 2m 내외 위험 요소만 탐지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지하 지질 정보가 포함된 제대로 된 안전지도를 만들어 지하 굴착공사 시 시공사가 참고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사망자나 큰 경제적 피해를 발생시키는 대형 땅꺼짐의 주요 원인이 지하 굴착공사이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지하안전정보시스템(JIS) 분석 결과, 2016년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발생한 깊이 5m 이상의 대형 땅꺼짐 35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원인은 지하공사 부실로 전체의 42.9%(15건)를 차지했다. 특히 깊이 10m를 넘는 초대형 땅꺼짐의 경우 원인이 상하수도 누수였던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정밀한 지질공학지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지하 터널 공사로 인한 대형 땅꺼짐은 GPR로 탐색할 수 없고 사전에 파악하기 어렵다”며 “앞으로의 땅꺼짐 대책으로 GPR 탐사보다 정확한 땅속 지질 특성 파악을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원철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명예교수도 지하 2~3m가 아닌 10m 이상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 명예교수는 “상하수도관 균열로 인한 누수가 소형 땅꺼짐 규모를 조금 더 키울 가능성은 있으나 대형 땅꺼짐의 방아쇠가 될 리는 없다”며 “대형 땅꺼짐을 예방하기 위해선 도시 개발 시 지질조사를 선행해 지하 10m 이상을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서울시도 대형 땅꺼짐을 예방하는 데 활용 가능한 새로운 지하 안전지도를 제작할 계획이다. 가칭 ‘우선정비구역도 고도화 작업’으로 지질에 대한 이해 필요성을 의식한 시 차원의 지하 지질지도다.
서울시 “땅꺼짐 위험 예측 모델 개발할 것”
서울시에 따르면 제작될 새 지도는 기존 시가 보유한 상하수도관 같은 지하 매설물 정보에 더해 지하의 지반 조건, 지하수 수위, 지하 공사 여부 등이 추가된 종합적인 지도다. 시는 시공사들이 새 안전지도를 지하 굴착공사 시 참고한다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하는 대형 땅꺼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새로운 지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땅꺼짐 위험도를 예측하는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다.
지반침하 안전지도 비공개 결정이 논란이 된 가운데 새롭게 만들어질 지도 또한 시민들의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시의 우려로 인해 민간에 공개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하시설물 중 정보공개법에 따라 공개가 금지된 민감 시설을 제외한 지도를 공개할 생각이다”라고 했다. 이어 “다만 실제론 위험하지 않지만, 시민들이 위험하다고 해석해 혼란을 겪을 것을 우려해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할 필요성은 있다”며 “추후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공개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새로운 안전지도는 시간과 비용 등의 여건을 고려해 지반침하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대형 굴착 공사장 및 터널 공사장 주변 지역을 우선 대상으로 해서 제작된다. 시 관계자는 “추가적인 시추작업을 통해 지질을 관측하고 데이터를 얻어야 하는데 서울시 전역을 다 뚫어서 살펴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예산과 시간도 제한적이다”며 “우선 땅꺼짐 발생 위험이 큰 대형 굴착 공사장과 터널 공사장만이라도 빨리 지도를 제작하고 추후 범위를 넓히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새 지도는 대형 굴착 공사장 및 터널 공사장을 우선해 제작됨에도 제작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질 정보를 포함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땅꺼짐 위험도를 평가하는 모델을 만드는 데만 1년 가까운 시간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본격적으로 제작에 착수한 후 완성까지 빨라도 최소 18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시는 새로운 지도를 제작하는 동시에 높아진 시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우선 GPR 탐사 지도를 빠르게 만들어 6월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4월23일 “GPR로 지하 2m 전후에 매설된 지하 시설을 탐사할 수 있다”며 “우선적으로 철도 공사장 5곳과 자치구가 선정한 고위험 지역 50곳에 GPR 검사를 실시한 뒤 빠른 시일 내에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땅꺼짐 예방에 안전지도 제작 못지않게 공사 현장 환경과 재난 관리체계 개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수곤 전 교수는 공사 현장에 더 많은 지질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은 각 지질에 맞는 토목 기술들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며 “지질 전문가가 현장에 투입돼 지질에 대해 철저히 분석한다면 땅꺼짐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대형 땅꺼짐 발생 원인 중 하나인 공사 현장 내 지하수 수위 변동을 서울시가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창삼 인덕대 스마트건설방재학과 교수는 “현재는 지하 공사 현장에서 지하수가 많이 나와 건설사가 이 물을 임의로 많이 뽑아내더라도 서울시에서 실시간으로 알 방법이 없다”며 “서울시에서 최소한 대형 지하 건설 현장에 대해서는 실시간으로 지하수 수위 변화를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재난 발생 예방 대책과 함께 발생 시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신속한 신고 체계 확립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땅꺼짐 전조 증상 신고 때 즉각 대응해야”
이수곤 전 교수는 “땅꺼짐이 발생해도 이것이 무조건 인명 피해로 이어져야 하는 법은 없다”며 “땅꺼짐 전조 증상이 신고됐을 때 제때 대응해 골든타임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명일동 사고 직전에 인근 주민들이 땅 갈라짐 등 전조 증상을 확인했을 때 신속한 교통 차단으로 2차 인명 피해를 막았어야 했다”며 “이중 안전망으로서 지역주민이 24시간 재난 예방 및 위급 시 직접 조치가 가능하도록 기존 민방위 조직을 확대 개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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