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굳건한 지지율·지리멸렬 보수에 ‘역대 최다 득표수’ 기대
‘견제 없는 독주’ 속에 달라진 李…거친 맞대응에 정책기조도 다시 ‘좌클릭’
“사법부 압박할수록 독재 프레임 커져”…“‘李 찍어볼까’ 하던 중도층 등 돌릴 수도”
대선 9회말, 여론조사들은 ‘이재명의 승리’를 예고한다. 선거일은 열흘 남짓 남았는데, 판세는 한쪽으로 기우는 양상이다. 실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지지율은 과반을 웃돌며 ‘고공행진’하는데,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 지지율은 ‘박스권’에 갇힌 양상이다. 국민의힘이 반전의 조커로 야심 차게 공언했던 ‘반명(反이재명) 빅텐트’는 좀처럼 세를 불리지 못한 채 완성되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대선 도전 삼수 만에 입법권력과 행정권력을 모두 거머쥘 수 있는 더 큰 ‘대권 트로피’를 바로 눈앞에 두고 있다.
그래서일까. ‘중도보수론’을 강조하며 외연 확장에 치중하고, ‘부자 몸조심’ 전략을 펼치던 이재명 후보가 최근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근래 이 후보는 중도 확장에 공을 들이는 모습보다는 야성의 언어로 진보적 메시지를 발신하기 시작했다. 그는 적극적인 재정 투입 등 ‘진보의 색’이 강한 정책기조를 다시 강조하고, 민주당은 사법부에 대한 전방위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TV토론과 현장 유세에서 김문수 후보 등을 향한 거친 메시지와 태도도 다시금 나타나고 있다. 이에 보수진영은 물론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중도층의 이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정치에서 방심은 금물이다. ‘골프와 선거에서 고개를 쳐들면 진다’는 격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하다. 대한민국 대선 정국에서 하루는 그저 하루가 아니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홈런 한 방이면 동점을 넘어 역전까지 펼쳐질 수 있는 게 바로 정치다. 이에 최근 정가는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추세를 인정하면서도 판을 흔들 수 있는 마지막 변수들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보수진영은 역전을 위한 마지막 조커 카드로 ‘김문수-이준석 단일화’를 매만지는 모습이다. 이재명, 그는 과연 마지막 파고를 넘어 ‘별의 순간’을 잡을 수 있을까.
‘이재명 대세론’은 그저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최근 발표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후보는 50%에 가까운 지지율로 독주하고 있는 반면, 김문수 후보는 좀처럼 반전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몇몇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의 지지율은 소폭 하락하고, 김 후보와 이준석 후보의 지지율이 소폭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대세를 흔들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인 상황이다. 오히려 김 후보 입장에서는 기운 빠지는 일이 연출되고 있다. 최근 국민의힘을 탈당한 윤석열 전 대통령은 부정선거 관련 영화를 관람하는 등 김 후보가 외연 확장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도 ‘보수 빅텐트’에 완전히 합류하고 있지 않다.
이재명·김문수 지지율 차이 줄어들긴 하지만 대세 흔들기엔 미흡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5월19일부터 21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 이재명 후보는 46%, 김문수 후보는 32%, 이준석 후보는 10%의 지지율을 얻었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난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5월20~21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12명을 대상으로 대선후보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이재명 후보 48.1%, 김문수 후보 38.6%, 이준석 후보 9.4%로 각각 집계됐다.
민심의 추이가 이렇다 보니 민주당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는 ‘어대명’이 아닌 ‘확대명’(확실히 대통령은 이재명)이란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 취재에 따르면, 민주당 내부에서는 대선 승리는 물론이고 ‘역대 최다 득표, 최대 득표율, 최대 격차 승리’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이 후보가 큰 실점만 하지 않으면 상대의 득점만으로는 승부를 뒤집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진단이 민주당 선대위 자체 여론조사 분석 등을 통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 지역구의 한 민주당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득표율(51.55%)을 넘어 55% 득표율 달성을 목표로 뛰자는 게 선대위 내부 기류”라며 “국민들도 이제 ‘윤석열의 잔재’를 청산하고 싶어 한다. 그 시대정신이 압도적인 지지율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물론 민주당 지도부는 이른 축포를 터뜨리면 여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 연일 ‘낙관론 경계령’을 내리고 있다.
민주당은 선대위 전체에 계속해서 ‘낙관론 경계령’을 내리고 있지만, 이재명 후보는 점점 본래의 야성을 되찾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그 대표적 장면으로 지난 TV토론을 꼽는다. 5월18일 진행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김문수 후보는 반도체특별법의 ‘주52시간제 예외’ 조항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에 이 후보는 “김 후보가 노동부 장관으로서 3개월 유연근무제를 6개월로 늘리면 충분하다고 하지 않았나. 6개월로 늘린다는 게 정부 입장이었다”고 반문했다. 김 후보가 “그렇다”고 답하자, 이 후보는 “근데 뭐 어쩌라고요. 본인이 그렇게 말씀하셔 놓고”라고 답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상대를 비웃듯 쏘아붙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 후보는 자신을 향한 공세에 대해서도 최근 들어 좀 더 적극적으로 반박하는 모습이다. 그는 자신의 경제정책을 둘러싼 이른바 ‘호텔경제학’ 논란에도 해명 대신 맞불로 응수했다. 이 후보는 5월21일 인천 남동구 구월 로데오광장 유세에서 “돈이 돌지 않으면 돈이 아니지 않냐. 그런데 10만원이라도 돈이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왔다 갔다 몇 번 돌면, 그게 10바퀴를 돌면 100만원이 되는 것”이라며 “그게 경제 활성화가 되는 것이다. 이 얘기를 설명했더니 이상하게 꼬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경제는 순환”이라며 “이해를 못 하는 것이라면 바보이고 곡해를 하는 것이라면 나쁜 사람들”이라며 거칠게 대응했다.
정규재 “우클릭하던 이재명, 다시 좌익으로 돌아간 모습”
승패가 이미 갈렸다는 판단이 깔린 것일까. 일각에서는 이 후보의 이런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자칫 오만함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분석도 내놓고 있다. 최근 이재명 후보를 ‘이념주의자가 아닌 실용주의자’라며 추켜세웠던 정규재 전 한국경제 주필은 5월19일 시사저널과 만나 “‘우클릭’하던 이재명이 다시 ‘좌익 이재명’으로 돌아간 모습”이라며 “광장에서 대중의 비위를 맞추다 보면 포퓰리즘 세계관을 피력하게 되는데 그 후유증이 나타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되면 ‘이재명을 찍어볼까’ 고민하던 보수·중도 유권자들이 냉담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이 후보의 지지율을 자세히 뜯어보면, 옅지만 분명한 경고 신호가 발견된다. 이 후보의 지지율이 점차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범보수 후보들의 지지율에서는 점진적으로 상승 흐름이 관찰되고 있기 때문이다. 5월22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 수치와 4일 전 발표된 직전 조사 수치를 비교하면 이재명 후보 지지율은 2.1%p 소폭 하락했다. 같은 기간 김문수 후보는 3.0%p, 이준석 후보는 0.7%p씩 지지율이 각각 올랐다. 지지율 격차는 9.5%p까지 좁혀졌다. 5월22일 발표된 NBS 조사에서도 이재명 후보 지지율은 전주 대비 3%p 하락한 반면 김문수 후보 지지율과 이준석 후보 지지율은 각각 5%p, 3%p 증가했다.
이에 대해 리얼미터는 “이재명 후보는 ‘커피 원가 120원’ ‘호텔경제론’ 등 발언 논란과 첫 TV토론에서 김문수·이준석 후보의 집중 공세를 받으며 PK·TK·호남 지역과 60대, 자영업층에서 지지층 이탈이 두드러져 2주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고 진단했다.
특히 이재명 후보를 향한 중도층의 민심 이반도 일부 감지된다. 최근 한 달간 NBS 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를 향한 중도층의 지지율은 5월 1주 차 47%→5월 2주 차 50%→5월 2주 차 55%→5월 4주 차 50%로 점진적으로 증가하다가 최근 다시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같은 기간 김문수 후보를 향한 중도층의 지지율은 5월 1주 차 4%→5월 2주 차 8%→5월 3주 차 18%→5월 4주 차 21%로 바닥에서 시작해 점차 상승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재명 대세론’이 확산할수록 그를 향한 견제 심리도 작동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모든 작용엔 반작용이 있다’는 뉴턴의 법칙처럼, 이재명 독주체제를 우려하는 유권자들이 결집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특히 대법관 증원,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등 사법부를 향한 민주당의 전방위 압박이 국민의힘엔 반격의 기회가 될 것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
장성철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이 사법부를 압박할수록 ‘민주주의 원리가 실현되지 않겠구나’ 하는 걱정이 나올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독재 프레임’에 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민주당이 중도층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사법부를 압박하면 역풍이 불 수 있다”고 봤다. 김문수 후보는 역으로 이 지점을 공략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김 후보는 이 후보를 히틀러·스탈린 등 독재자에 비유하며 권력을 몰아주면 안 된다는 견제 심리에 호소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 구도는 여전히 ‘정권 심판론’이 우세하다. 김 후보 입장에서는 남은 기간을 고려하면 ‘결정적 한 방’ 없이는 대역전극이 쉽지 않다. 역대 대선에서 10%p 이상 격차를 2주 안에 뒤집은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문수 캠프는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경우의 수가 복잡하지만 ‘골든크로스’(지지율 역전)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김 후보 측의 판단이다.
그들이 기대하는 마지막 승부수는 다름 아닌 이준석 후보와의 단일화다. 물론 현시점에서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이준석 후보는 5월22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단일화는 없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일각에서는 탄핵 찬성파인 이준석 후보와 탄핵 반대파인 김문수 후보 간 단일화가 성사된다고 해도 시너지를 내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정서와 노선이 극명하게 갈리는 두 후보의 지지층이 하나로 결집하기 어렵고, 설사 단일화가 이뤄지더라도 ‘1+1=2’가 아니라 ‘1+1=1.5’ 혹은 그 이하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확률 낮은 시나리오가 극적으로 현실화된다면 대선판에 큰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두 후보의 합산 지지율이 이재명 후보에게 근접하거나, 뛰어넘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될 경우 범보수 지지층을 중심으로 단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크게 분출될 가능성이 있다. 극적인 단일화의 선례는 있다. 2002년 16대 대선 당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 선거를 25일을 앞두고 단일화에 성공했다.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투표 용지 인쇄일을 넘겼지만 사전투표 전날 극적으로 단일화에 합의했다.
“단일화는 없다” 천명한 이준석…보수 빅텐트 결국 무산?
정치권에서는 냉정하게 김문수 후보가 이제 단일화 같은 극적인 반전 카드 없이는 대역전극을 쓰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김문수 후보가 반전의 동력을 만들지 못하면서 오히려 ‘빅텐트’는 이재명 후보가 치는 모습이다. 5월 들어서만 국민의힘에 몸담았던 김상욱 의원을 비롯해 개혁신당 출신의 허은아 전 대표, 문병호 전 의원 등이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반면 ‘반명 빅텐트’는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당초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국민의힘 캠프 합류설이 확산했으나 무산됐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지지했던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김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으나, 원외 원로인 그가 세력 확장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란 게 정치권 중론이다.
한동훈 전 대표의 유세 합류도 아직까지는 큰 시너지를 내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윤석열 부부와의 절연’을 강조하며 자택에 머물던 한 전 대표가 선거운동 개시 8일 만에 현장 유세에 합류했지만, 그는 김 후보와의 합동유세 대신 ‘따로 유세’를 고집하고 있다. 유세도 ‘김문수’가 아닌 ‘기호 2번’을 새긴 점퍼를 입고 진행 중이다. 한 전 대표는 김 후보가 윤 전 대통령을 출당 조치하지 않고, 부정선거 의혹 등에 대해 분명한 선을 긋지 않은 점을 문제 삼고 있다. 경선 이후 친정을 비판하며 탈당 후 미국 하와이로 떠난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여전히 선대위 합류에는 부정적이다.
취재에 따르면, 김문수 캠프는 이재명 캠프에 비해 기세도, 사기도 열세라는 평가가 많다. 한덕수 전 총리와의 강제 단일화 후유증과 계엄·탄핵에 대한 입장 차이 등으로 ‘원팀’이 아닌 각개전투식으로 캠프가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캠프에서는 친한계 현역 의원 및 일부 당협위원장 등이 현장 유세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도 새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원내행정국은 최근 소속 의원들의 선거운동 활동 현황 제출을 요구하는 공문을 개별 의원실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