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대통령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막 시작된 날, 청와대 앞 분수대의 둘레에는 마치 ‘장미 대선’을 빠르게 알리려는 듯 일찌감치 핀 장미가 탐스럽게 붉었다. 녹음이 짙어진 오월의 청와대엔 푸름과 청명함이 그득했고, 경내 곳곳에는 중국인 등 단체 관람객이 가득했다. 개별 관람객들 가운데는 중장년층이 특히 많았고, 유모차를 끄는 젊은 부부 등 남녀 커플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청와대를 둘러보던 한 노신사를 만나 관람을 신청한 이유를 물었더니 “다음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오게 되면 다시 올 수 없을 것 같아 죽기 전에 한번 보러 왔다”고 했다. 또 다른 이는 “이런 곳을 어디서 또 보겠나. 경치도 좋고 공기도 좋고 지상낙원 같다”는 소감을 말해 주었다.
이렇게 아늑하고 풍광 또한 뛰어난 공간으로 관람객들의 감탄을 부르고 호평을 받는 청와대가 아이러니하게도 대선 국면의 정치권에서는 ‘뜨거운 감자’로 떠올라 있다. 청와대를 다시 대통령 집무실로 쓸 것이냐 아니냐가 논쟁의 핵심이다. 대선후보들도 다투어 적극적으로 각자의 답안을 내놓았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일단은 용산 대통령실을 사용한 후에 청와대를 거쳐 세종시로 이전하는 방안’을 밝혔고,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우선은 용산 집무실 활용, 장기적으로는 국회 세종 이전, 세종시에 제2 대통령실 건립’을 제시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펼친 청사진은 ‘정부종합청사를 집무실로 우선 사용, 세종시에 국회와 대통령 집무실 즉시 건립’이다.
청와대가 대선후보들에게 뜨거운 감자가 된 여러 원인 가운데는 이른바 ‘흉지설’이 있다. 8년 전 문재인 정부 광화문시대자문위원장을 맡았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특히 관저가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청와대 자리를 놓고 ‘길지다, 흉지다’라는 풍수가들의 엇갈린 견해는 전체적으로는 복지인데, 부분적으로 흉지인 자리에 관저가 있다는 얘기”라고 했다.
이전 대통령들의 말로가 좋지 않았음을 근거로 증폭된 흉지설에 대해서는 풍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데다,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일부에선 그 터나 건물 공간이 흉지인지 길지인지는 그것을 사용하는 이가 누군인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선 시대에 전국 각지의 형세를 살펴 기록한 이중환은 저서인 《택리지》에 ‘(풍수와 관련해) 치우친 논의가 사대부 사이에서 생겼으나, 끝판의 폐단은 사람을 서로 용납될 곳이 없게 한다. 이렇게 되면 살 곳이 없다’고 썼다. 시중에 나와있는 풍수지리서 중에는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는 제목의 책이 있기도 하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은 재임 당시 대통령궁을 노숙자들에게 내어주고 교외의 허름한 농가에서 출퇴근을 했다. 그는 평소에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거리가 없어야 한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청와대가 흉지설에 휘말리고, 때로 ‘구중궁궐’이라고 비판받는 것은 근본적으로 국민 대중과의 정서적 거리 탓일 수 있다. 국민 가까이로 가겠다고 만든 용산 집무실도 대통령이 입을 닫고 귀를 닫으면 또 다른 구중궁궐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생생하게 겪어보았다. 권위와 믿음이 일에서 나오지, 건물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공간은 공간이고 일은 일이다. 대통령의 일터가 ‘일’을 구속하면 국민과는 늘 멀어지게 된다. 공간이 일을, 운명을 방해했다는 것은 다 결과론이고 핑계일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소통은 언제나 공간 너머에 있다. 말이 끊기는 곳에서 공간의 쓰임새도 끊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