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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자서전 《호암자전(湖巖自傳)》은 읽을수록 깊은 통찰들로 가득한 책이다. 특히 이 책은 ‘미래 설계’를 꾀하는 이라면 필독서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내 인생의 진로를 완전히 바꾸어놓은 책이기도 하다. 책 말미의 다음과 같은 구절 때문이었다.

“가장 감명을 받은 책 혹은 좌우에 두는 책을 들라면 서슴지 않고 《논어(論語)》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라는 인간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은 바로 이 《논어》다. 나의 생각이나 생활이 《논어》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만족한다. 《논어》에는 내적 규범이 담겨 있다. 간결한 말 속에 사상과 체험이 응축되어 있어 인간이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불가결한 마음가짐을 알려준다. 법률과는 대극(對極)의 위치에 있다.”

대학원 때 《논어》를 몇 차례 읽어보기는 했어도 이 회장이 말하는 이런 내용을 포착했던 경험은 전무했다. 교수들이 가르치는 《논어》는 그저 선비를 위한 마음 수양서 혹은 훈련서 정도였지 이처럼 입체적인 파악은 거의 불가능하다. 강단의 《논어》와 이병철 회장이 읽어낸 《논어》의 차이가 궁금해 2007년부터 조금씩 파고들었고 급기야 2016년부터 언론사를 그만두고 10년째 논어등반학교를 운영해 오고 있다. 《논어》와 관련된 책만 대여섯 권을 쓸 수 있었던 것이 이 회장의 이 구절 덕분이었다.

요즘 이 회장뿐만 아니라 현대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효성 조홍제 회장의 자서전 《나의 회고》 그리고 LG 구인회 회장의 자전적 평전 《한번 믿으면 모두 맡겨라》를 비교하면서 이들의 정신세계를 탐구 중이다. 그중 ‘미래 설계’와 관련해 가장 큰 통찰과 도움을 얻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호암자전》인 듯하다.

토붕와해(土崩瓦解)의 위기에 처한 한국의 보수 세력에게 이 회장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고 싶다.

“사업에 좌우되지 말고 사업을 좌우하라.” 

“사업은 반드시 시기(時期)와 정세(情勢)에 맞추어야 한다. 이것부터 우선 인식하고 나서 사업을 운영할 때에는 첫째 국내외 정세의 변동을 적확하게 통찰해야 하며, 둘째 무모한 과욕을 버리고 자기능력과 그 한계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하고, 셋째 요행을 바라는 투기는 절대로 피해야 하며, 넷째 직관력의 연마를 중시하는 한편 제2, 제3의 대비책을 미리 강구함으로써 대세가 기울어 이미 실패라고 판단이 서면 깨끗이 미련을 청산하고 차선의 길을 택해야 한다.”

사업을 ‘보수 재건’으로 바꾸어보라. 이 조언은 무너진 일을 다시 세우는 데도 유용할 것이다. ‘보수 재건’에 적용할 좀 더 구체적인 얘기들도 있다.

“한 개인이 제아무리 부유해도 사회 전체가 빈곤하면 그 개인의 행복은 보장받지 못한다. 사회를 이롭게 하는 것, 그것이 사업이며 따라서 사업에는 사회성이 있고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 또한 사회적 존재다.”

눈 밝은 독자는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다. ‘사회성’이나 ‘사회적 존재’는 마르크스 용어다. 1년 반 정도의 일본 와세다대 유학 시절 이 회장은 마르크스에 몰두했다.

“책도 읽었다.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복자(伏字)투성이 문헌도 독파했다.”

복자란 책에서 내용을 밝히지 않으려고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들을 말한다. 와세다대를 중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 회장이 곧바로 아버지에게 건의해 노비 30명을 해방시켰다.

“유학 시절부터 이것은 인도(人道)에 어긋날뿐더러 사회발전에도 큰 장해요인이 된다고 생각해 왔다.”

물론 ‘사회발전’도 마르크스 영향을 받은 용어다. 보수 재건은 반대파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 지금 우리 상황을 잘 파악하고서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운 다음에 꾸준히 나아갈 때 성공할 수 있음을 《호암자전》은 보여주고 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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