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분열의 정치 끝내겠다”…취임 일성으로 ‘모두의 대통령’ 선언한 李
‘실용적 시장주의’ 기조 내세우며 ‘국민 통합’과 ‘경제 발전’에 방점
견제 없는 권력의 사법 개혁에 ‘독주’ 우려도…“尹을 반면교사 삼아야”

“분열의 정치를 끝낸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국민 통합을 동력으로 삼아 위기를 극복하겠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든 크게 통합하라는 대통령의 또 다른 의미에 따라,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6월4일 국회에서 열린 취임선서식에서 “낡은 이념은 이제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자”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필요하고 유용하면 구별 없이 쓰겠다”며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다. 통제하고 관리하는 정부가 아니라 지원하고 격려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공언했다.

이제 ‘대통령 이재명’의 시간이다. 윤석열 정권의 비상계엄이 불러온 정치 격랑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민심의 파도를 타고 대권을 거머쥐었다. 동시에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창끝을 겨눴던 거야(巨野)는 이제 이 대통령을 지키는 거여(巨與)가 돼 국정 운영의 한 축을 책임지게 됐다. 입법·행정을 모두 장악한 이재명 정부는 이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을 손에 쥐었다. 이 대통령은 그 힘을 ‘국민 통합’과 ‘경제 발전’에 쏟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회의 견제가 사라지면서 이재명 정부의 독주를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여당이 사법부 개혁까지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여의도 안팎에서는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덮기 위한 ‘입법 독주’라는 우려도 쏟아진다. 윤석열이라는 정적이 사라진 지금, 이재명에게 남은 상대는 냉정한 국민뿐이다. ‘변화를 이끄는 대통령’과 ‘권력을 휘두르는 통치자’ 사이, 제21대 대통령 이재명은 역사에 어떤 지도자로 기록될까.

이재명 대통령이 6월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박수를 받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이재명 대통령이 6월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박수를 받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취임 첫날 야당 대표와 오찬…‘국회 존중’ 의지 드러내

이변은 없었다.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여파로 치러진 6·3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권을 거머쥐었다.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는 ‘블랙아웃’ 기간에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측은 골든크로스(지지율 역전)를 노렸으나 민심은 냉랭했다. 국민의힘이 ‘계엄·탄핵의 늪’에 빠져 내홍을 겪는 사이에 이재명 후보는 대세론을 굳건히 지켰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대선은 심판의 성격이 큰데, 특히 이번 선거는 계엄 후 치러지는 조기 대선이었던 만큼 ‘윤석열 심판론’이 더욱 크게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닻을 올린 이재명 정부는 상당한 개혁 동력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회 지형이 전례 없는 규모의 여대야소로 재편됐기 때문이다. 현재 민주당 의석수는 171석으로 조국혁신당 등 민주당에 우호적인 정당의 의석수를 합하면 범여권 의석수가 190석을 넘는다. △2004년 노무현 정부 열린우리당 152석 △2008년 이명박 정부 한나라당 153석 △2012년 박근혜 정부 새누리당 152석 등 과거의 여대야소 지형과 비교해도 현 여당의 세가 압도적이다. 2020년 문재인 정부 당시 민주당이 180석이었지만, 그때는 대통령 임기를 2년 남겨둔 시점이었다.

이에 윤석열 정부가 거야와 충돌하며 ‘줄탄핵→줄거부권’ 공회전을 반복했던 것과 달리, 이재명 정부와 국회는 사실상 ‘원팀’처럼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예산 편성권을 쥔 행정부와 예산 심의·의결권을 가진 입법부가 모두 친명(親이재명)계로 채워진 지금, 이재명 정부는 어느 정권보다 공격적으로 국정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셈이다. 전임 정부가 임기 내내 치고받는 ‘정쟁의 시간’에 갇혀 있었던 것과 달리, 이재명 정부는 집권 초반부터 곧장 ‘정책의 시간’으로 진입할 힘과 명분을 같이 확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여대야소 정치 지형을 발판 삼아 ‘국민 통합’ ‘민생 경제 회복’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공존과 통합의 가치 위에 소통과 대화를 복원하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정치를 되살리겠다”고 밝혔다. 경제에 대해서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라며 “통제하고 관리하는 정부가 아니라 지원하고 격려하는 정부가 되겠다. 기업인들이 자유롭게 창업하고 성장하며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협치 의지도 드러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취임 후 1년 넘게 야당 대표와 회동하지 않은 것과 달리, 이 대통령은 취임 첫날 국회 사랑재를 찾아 우원식 국회의장 및 여야 대표와 오찬을 함께 했다. 메뉴는 화합을 상징하는 비빔밥이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정치가 국민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며 “저부터 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든 것을 혼자 다 100% 취할 수는 없다.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타협할 것은 타협해 가급적 모두가 동의하는 정책으로 국민이 나은 삶을 꾸리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고 했다.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 대통령의 구상은 내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외치에서도 통합과 실용의 원칙을 견지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는 친명계 핵심 관계자는 “이재명 정부의 핵심 키워드는 ‘공동체’다. 이념에 따른 분열과 혐오의 정치를 넘어서겠다는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위해 노력하겠으나 외과 수술하듯이 범위를 명확하게 설정할 것이다. 외교에서도 (친중 논란을 의식하는) 미국과 일본의 불안을 불식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대표적 북미·북핵·러시아통인 위성락 의원을 안보실장에 발탁했다. 한미, 한일 정상회담 등도 빠르게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들이 6월3일 국회 의원회관 에서 제 21대 대통령선거 지상파 출구조사 결과 이재명 후보가 51.7%로 앞서는 것으로 발표되자 환호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들이 6월3일 국회 의원회관 에서 제 21대 대통령선거 지상파 출구조사 결과 이재명 후보가 51.7%로 앞서는 것으로 발표되자 환호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벌써 ‘李 방탄’ 논란…대법관 16명→30명, 밀어붙이는 巨與

다만 이재명 정부를 향한 큰 기대만큼이나 우려도 적지 않다. 당장 미국 백악관이 미묘한 입장을 밝혔다. 백악관은 한국의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해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졌다”고 평가하면서도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에 대해 우려하고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동맹국의 대선 결과에 대한 논평치고는 묘한 메시지다. 이를 두고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밝힌 ‘실용주의적 외교 노선’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을 직간접적으로 전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일본 교도통신은 6월4일 “이재명 대통령은 일본과의 협력에 적극적이지만, 지지 기반은 일본에 비판적인 성향이 강하다”며 “향후 한일 관계의 미래는 불투명하다”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한국의 트럼프’의 변신은 진짜인가”라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역설적으로 ‘윤석열의 부재’가 ‘이재명의 위기’를 낳을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 윤석열 정부의 실책, 나아가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의 상황 속에서 이 대통령은 빠르게 대권주자 입지를 다졌다. 선명한 공공의 적이 생기면서 당내 계파 갈등도 가라앉았다. 국민의힘 일각에서 ‘윤석열이 이재명의 숨겨진 선대위원장’이라는 푸념 섞인 비판이 나온 이유다. 그러나 이제 윤석열이라는 변수는 사라졌고, 이재명과 민주당은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로 국민의 시험대 위에 서게 됐다.

이에 당장 견제 없는 구조가 빚어낼 독주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건 ‘사법부 개혁’이다. 이 대통령이 ‘대법관 증원’을 공약집에 넣고 공식화하면서 법조계에서는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당장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6월4일 민주당 주도로 ‘대법관 숫자 증원’을 골자로 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법안심사소위에서 통과시켰다. 법조계에서는 이를 두고 이 대통령의 임기 중 사법 리스크를 우려한 ‘대법관 알박기’ 포석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대통령 자신이 여전히 수사를 받고 있는 ‘피고인 신분’이라는 점에서 사법 개혁의 정당성과 동기를 두고 의심의 시선이 따른다.

또 이 대통령은 ‘민생경제’를 최우선 과제로 천명했지만 여권 내 일부 강경파는 사법 개혁 드라이브를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대통령 당선 시 형사재판을 받지 않도록 하는 법안(형사소송법 개정안)과 허위사실공표죄의 대상을 축소하는 법안(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이달 내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두 개정안은 이 대통령을 위한 ‘방탄 입법’으로 논란이 됐던 사안이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해 공포되면 이 대통령을 둘러싼 형사재판은 모두 중단된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허위사실공표 구성 요건 중 ‘행위’를 삭제하는 내용으로, 공포되면 이 대통령의 관련 재판은 처벌 조항 삭제로 종결된다.

정부·여당이 이 같은 사법 개혁을 단행하면 야당의 반발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김용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6월4일 이 대통령과의 오찬 자리에서 “여당이 본회의에서 처리하려는 공직선거법·법원조직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은 매우 심각히 우려된다”며 “국민 통합은 진영 간의 깊은 골을 메우기 위해 서로 우려하는 바를 권력자가 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6월3일 대선 개표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거론하며 “두 달 안에 대통령선거를 또 치러야 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6월4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 기념 오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이재명 대통령이 6월4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 기념 오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尹정부 실패에서 교훈 얻어야…‘힘의 절제’도 필요”

큰 기회와 큰 힘을 동시에 얻게 된 대통령 이재명. 이를 두고 “막강한 권력이 손에 잡히면 성인군자라도 그 권력을 독단적으로 행사하고 싶어질 것”(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과연 이 대통령은 일각의 우려를 기우로 만들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 정부의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①임기 초부터 민심 전광판은 보지 않은 채 ②측근들에 둘러싸여 자신과 가족을 겨냥한 의혹과 수사에 ‘방탄’으로 일관하다 국정 동력을 상실하고 ③이념과 충성의 정치에 매몰된 끝에 결국 국민과 괴리됐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전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여대야소가 특별한 상황은 아니다. 다만 그 힘이 ‘동전의 양면’이 될 수 있다”며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차지한 뒤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개혁 입법을 추진했지만, 결과적으로 반대 연합을 만들어주며 개혁 동력을 상실하고 비판자들이 조직화하게 된 전례가 있다”고 했다.

최 소장은 “그간의 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은 윤석열 전 대통령 실정의 반사이익을 누린 측면도 있다”며 “거대 여당엔 ‘힘의 절제’와 ‘고품질의 어젠다(의제) 설정’이 함께 필요하다. 국민들에게 박수받는 의제를 추진하면 유능한 개혁으로 칭찬받을 수 있지만, 과도한 힘자랑을 하게 되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국민이 묻고 있는 건 하나다. ‘이 권력을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쓸 것인가.’ 국정 전반의 주도권을 쥔 이재명 정부가 초심대로 공익을 위한 통합의 처방전을 제시한다면 유능한 정부로 역사에 남을 수 있다. 반면, 이에 실패하거나 권력의 사적 남용 논란이 발생할 경우 압도적 권력은 곧 거센 책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도 뒤따른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이재명 정부의 가장 큰 과제는 ‘공동체의 통합’이다. 진영을 넘어 이념적 스펙트럼, 민주공화국의 가치라는 정체성을 가진 모든 사람을 통합시켜야 한다”며 “이재명 대통령이 의지만 가지면 된다. 그에게 반대하는 민주당 내 세력이 없다는 게 정치 양극화를 해결하는 데 유리한 지점”이라고 밝혔다. 이어 “경제도 심리라는 측면에서 결국 대통령이 국민의 마음부터 얻어야 한다. 경제 문제의 경우 제갈공명이 와도 갑자기 해결할 수는 없다”며 “대통령이 기존 이미지와 달리 전혀 기대하지 않은 신선한 행보를 한다면 국민의 심리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