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네이버 웹툰 원작…주인공 액션 스타일에서도 차이
몰랐다. 한국에 유사 ‘존 윅’이 있는 줄. 그의 이름 남기준(소지섭). 《존 윅》 세계에서 암살자들이 존 윅 이름만 들어도 사시나무처럼 떨 듯, 《광장》 세계에서의 조폭들도 남기준 이름 석 자에 오금이 저린다. 도대체, 왜? 무슨 험한 짓을 했길래 그럴까.
넷플릭스 드라마 《광장》은 남기준이 어떻게 ‘이 구역의 호환마마’ 같은 존재가 됐는가를 짧게 스케치하며 시작한다. 때는 바야흐로 2010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 앞에서 검은 옷을 입은 어깨들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주운(허진호)과 봉산(안길강)이 소속된 조직이 밀리고 있는 상황. 그러나 상황은 슈트 흩날리며 나타난 그들의 부하인 남기준에 의해 역전된다. 기준의 주먹 하나에 상대 팀 어깨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기준의 천상천하 유아독존 실력은 주은과 봉산이 각각의 그룹 수장으로 독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과감한 각색에 뿔난 원작 팬들
그러나 기준은 이 사건을 끝으로, 스스로 아킬레스건을 끊고 조폭 세계를 은퇴한다. 그렇게 그의 존재는 신화로 남아 조폭 세계를 떠돈다. 그걸로 끝일 줄 알았다. 기준이 다시 조폭 세계에 돌아올 일은 없을 줄 알았다. 11년 후, 그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존 윅》의 빌런들이 하필이면 존 윅이 아끼는 ‘개’를 건드려 사달이 났듯, 광장의 조폭들도 건드리면 안 되는 존재를 건드리고 만다. 기준의 동생 기석(이준혁)이다. 기준이 조폭 세계를 떠난 후, 기석은 주운 아래에서 조직의 2인자로 성장한 상태다. 그랬던 동생이 어느 날 죽은 채 발견된다. 도대체 누가! 무림에 숨죽여 있던 고수가 그렇게 돌아온다. 그리고 ‘빠꾸’ 없는 복수를 시작한다. 기준의 복수혈전은 하나의 조직에서 파생된 후, 나름의 규칙을 지키며 상생해온 봉산과 주운 조직에도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안긴다.
동명의 네이버 웹툰이 원작이다. 오세형 작가가 쓰고 김태균 작가가 그린 원작은 연재 당시부터 팬들 사이에서 ‘언제고 영화화될 작품’이란 기대가 있었다. 임팩트가 크고, 설정도 확고했다는 이야기다. 예상대로 작품은 《표적》 《독전》 《콜》 등을 제작한 용필름을 통해 영상화됐다. 그렇게 나온 《광장》은 원작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원작 팬들이 기대했던 결과물이 아니란 얘기다. 팬들 사이에서 쓴소리가 터져 나온 건 당연하다.
사실 원작에 대한 충실함이 각색 영화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다. 영화의 문법은 웹툰과 다른 만큼, 때에 따라 적극적으로 각색하는 것이 오히려 영화에 득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다만 원작이 가진 특색을 죽이지 않고 보존하면서 원작 독자는 물론 영화 관객 모두를 충족시키는 영리한 각색도 드물게 존재하긴 한다. 《광장》은 영화 관객을 신경 쓰는 과정에서 원작 팬들을 서운하게 한 경우인데, 공개 초기에 영화를 찾아 보는 시청자의 다수가 원작 팬이기에 원작에 대한 아쉬움이 더 부각되는 분위기다.
결함을 눈감게 하는 캐스팅
웹툰 독자들이 넷플릭스 《광장》에 보내는 가장 큰 불만의 요체는 ‘광장’이라는 상징성에서 온다. 웹툰에서 ‘광장’은 현실에 실질적으로 발 딛고 선 공간을 의미했다. 오프닝에 등장한 국회의사당 ‘광장’이 바로 그렇다. 그러나 영화는 출발 지점에서 국회의사당 광장을 살짝 보여줄 뿐이다. 대신 영화에서 ‘광장’은 일종의 세계관으로 존재한다. 인물들 모두가 광장에 내내 서 있지만, 정작 광장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추상의 개념이다. 개인적으로 구체적 공간을 추상의 개념으로 바꾼 제작진의 의도를 이해하면서도, 원작 팬들이 뭔가 중요한 게 하나 빠진 듯한 서운함을 느끼는 것도 백번 이해한다. 원작 팬들에게 광장에서의 싸움은 일종의 ‘각인’ 같은 것이었을 텐데, 그 비중은 물론 개념마저 바꿔버렸으니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웹툰 원작과 영화의 차이점 중 또 하나는 기준의 싸움 스타일이다. 영화에서 소지섭이 연기한 기준이 구사하는 스타일은 웹툰의 기준보다 존 윅에 더 맞닿아 있다. 타격감을 내세운 일대다 싸움에선 《범죄도시》의 마동석 액션도 슬쩍 떠오른다. 원작에서의 기준은 ‘멋짐’보다는 냉혹하고 무자비한 기질로 상대를 파랗게 질리게 하는 인물이었다. 이 기질은 분명 ‘광장’만의 특징이었을 텐데, 스크린으로 옮겨지면서 주인공이 다소 평준화된 면이 있다.
독자 개개인이 각자의 속도로 읽는 웹툰의 경우 스크롤 사이사이에 관객의 무한한 상상이 개입할 여지가 크다. 그러나 창작자가 구현한 그림이 신을 통해 다소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영화에서는 관객이 상상할 여지가 웹툰에 비해 적다. 자연스럽게 기준이 지니고 있는 악랄함에 대한 상상은 웹툰을 읽을 때 더 크다. 기준의 전투력에 대한 불만이 새어 나오는 데는 이러한 이유도 적지 않을 것이다.
원작을 보지 않은 입장에서 이 드라마를 평하자면, 《광장》은 무난하다. 문제는 너무 무난해 무색무취라는 것인데, 줄거리나 인물 설정 또한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을 연신 안긴다. 더해서 이 영화에서 인물들의 행동 동기는 치밀하게 쌓여 분출되는 것이 아니라 급작스럽게 튀어나온 후 빠르게 해결돼 버린다. 그로 인해 누아르 영화의 쫀쫀한 스릴을 느끼며 영화를 따라가고 싶은 관객의 기대를 스스로 저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결함을 눈감게 하는 이유는 캐스팅이다. 이 영화의 캐스팅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배우의 기존 이미지를 이용하거나, 반대로 완전히 비틀거나다. 주연인 소지섭의 경우, 기존 이미지의 연장에서 기준을 연기한다. 소지섭 개인의 이미지가 범대중에게 호의적일뿐더러 영화를 자주 찍는 배우도 아닌지라, 소지섭 이미지를 적극 이용한 결정은 실보다 득이 많아 보인다. 입은 닫고, 행동으로 옮기는 영화 속 기준은 소지섭을 만나 ‘간지’를 발한다.
기존 이미지에 반하는 연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배우는 공명이다. 콘텐츠 시장에서 ‘멍뭉이’로 불리는 무해한 이미지의 배우다. 이번 영화에서는 봉산의 아들인 구준모를 맡아 ‘금쪽이’의 끝장을 보여준다. 드라마 《옥씨부인전》,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로 주목받은 추영우도 공명 못지않은 금쪽이를 연기한다. 주운의 아들이자 검사인 이금손을 맡아, 공명과 함께 누가 누가 더 아버지를 괴롭히는가를 시전한다.
이들의 반전 캐스팅이 흥미롭지만 캐릭터 자체는 그리 흥미롭지 못하다. 《신세계》의 정청(황정민)이나 《범죄도시》의 장첸(윤계상)에 비하면 개성도 매력도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충무로 청춘 배우들의 ‘안면 바꾸기’를 보는 재미는 확실하다. 이 배우들이 앞으로 캐릭터를 선택하고, 설정하는 데도 이 경험은 귀하게 남을 것이다. 한편 차승원이 연기하는 김선생은 원작에는 없는 창조된 인물이다. 이 영화를 만든 용필름의 작품인 《독전》에서 ‘이선생’은 주요 인물로 활약한 바 있다. 이것은 용필름의 이스터 에그일까. 그러고 보니 《광장》은 웹툰의 영향력뿐 아니라 제작사의 영향력 아래 길게 발 뻗어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