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재 프로야구 상위권 주도하는 염경엽·김경문·김태형 모두 비스타플레이어 출신
선수 시절의 화려한 성공이 감독에겐 오히려 독(毒) 될 수도

‘약속의 8회’가 있었다. 국가대항전 때 한국 야구에 위기가 닥치면 그의 손끝에서 ‘한 방’이 나왔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 결정전 때 그랬고, 2006년 WBC 1라운드 때도, 2008년 베이징올림픽 준결승 때도 그랬다. 이승엽은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국민타자’였다. 하지만 ‘반달곰 사령탑’으로 변신한 ‘라이언킹’은 계약 기간 3년도 채우지 못하고 스스로 두산 베어스의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이범호 KIA 타이거즈 감독은 “우리 야구계에 한 획을 그은 분이신데 어려운 선택을 하셨다.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심란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승엽 전 두산 베어스 감독 ⓒ뉴스1
이승엽 전 두산 베어스 감독 ⓒ뉴스1

지도자 생활 없이 곧바로 프로 감독 맡은 게 패착 

‘감독 이승엽’의 퇴장은 ‘명선수는 명감독이 되지는 못한다’는 속설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조기 퇴진 이유는 분명 있었다. 복수의 구단 단장은 “경험이 부족했다”고 말한다. 프로 지도자 생활 없이 곧바로 프로 감독이 됐기 때문이다. 선동열 전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에서 수석코치 1년을 거친 뒤 사령탑에 부임했듯이 최소 1~2년은 현장에서 분위기를 익혔어야 했다는 얘기였다. KBO리그에서 지도자 연수 혹은 코치 경험 없이 곧바로 프로 사령탑이 된 이는 이승엽 감독이 최초였다. TV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에서 감독을 했다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2017년 현역 은퇴 뒤 줄곧 방송만 해온 이승엽 감독은 2022년 말 두산 사령탑을 맡았다. 두산은 김태형 감독이 지휘하던 2015년부터 2021년까지 7년 연속 한국시리즈(2015·2016·2019년 우승)에 올랐으나 2022년에는 9위로 추락해 있었다. 모그룹의 경영 상황이 나아지는 상황에서 두산은 이승엽을 신임 사령탑으로 영입했고, NC 다이노스로 이적했던 양의지를 역대 FA 최고액(4+2년 총액 152억원)으로 다시 데려왔다. 법정관리에서 벗어난 두산그룹은 야구단을 통해 그룹의 건재를 알리려 했다. ‘감독 이승엽’은 구단이 아닌 모그룹의 선택이었다.

구단별로 팀 문화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일본 생활을 제외하고 삼성에서만 현역으로 뛰었던 이 감독이 ‘두산’이라는 낯선 곳에 뿌리를 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2024 시즌이 끝난 뒤에는 이승엽 감독의 최측근이던 삼성 출신의 박흥식·김한수 코치가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일부 선수의 통제도 쉽지 않았다. 전임 김태형 감독(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강력한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휘어잡는 스타일이었던 데 반해 새내기 사령탑이자 이방인이나 다름없던 이승엽 감독은 온화한 형에 가까웠다.  

지난해에는 오재원(은퇴·구속)의 강압에 따른 수면제 대리 처방으로 1.5군급 선수들(8명)이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팀 분위기가 뒤숭숭했던 면도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국인 선수들마저 부진했다. 사령탑 부임 직후부터 두산 팬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도 운신의 폭을 좁게 했다. 김태형 감독은 공격적이고 거침없는 야구를 추구한다. 하지만 이승엽 감독은 희생번트 등 보수적인 야구를 했다. 구단 사정에 따른 선택이었으나 ‘큰 공’에 익숙한 두산 팬들의 눈높이에는 맞지 않았다. 초보 사령탑으로 전년도(2022년) 정규리그 9위 팀을 5위(2023년), 4위(2024년)까지 끌어올렸지만 팬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2년 연속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탈락하면서 더욱 팬들의 눈 밖에 났다. 구단주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까지 나서서 공개적으로 “4위, 5위 하려고 야구하는 것이 아니다”고 밝혔으니 이승엽 감독의 속앓이는 짐작 가능하다.

여러 이유가 겹치면서 이승엽 감독은 자신의 야구를 뜻대로 펼쳐 보이지 못한 채 그라운드를 떠났다. ‘국민타자’의 쓸쓸한 퇴장은 그가 ‘명감독’이 될 준비가 돼 있었는가는 차치하고 그에게 ‘명감독’이 될 장을 충분히 마련해 줬는지도 곱씹게 한다. 승리 지상주의의 국내 프로야구는 초보 사령탑에게 아주 가혹하다. 첫해부터 성적이 나지 않으면 ‘퇴출’ 이야기가 나오고 급기야 현수막, 트럭 시위로까지 이어진다. 팀과 함께 지도력 또한 성장할 수 있는데 팬들은 그 시간을 용납하지 않는다. ‘레전드’라면 더욱 강한 채찍이 날아온다. 현역 시절의 활약과 비교되면서 더 높은 기준치를 제시한다. 이는 당사자에게 큰 압박이 된다.

지나친 자기 과신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선수 시절의 화려한 성공은 감독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내가 이렇게 해서 성공했으니까 너희도 이렇게 하면 된다’는 식의 지도 방식은 불통만 초래한다. 결핍을 경험하지 못했던 레전드 출신의 지도자가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다. 소통 능력을 비롯해 리더십, 전략적 사고 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가뜩이나 최근에는 선수들의 개성이 더욱 뚜렷해져서 ‘팀플레이’를 요구하는 게 더 어려워졌다.

ⓒ연합뉴스·뉴시스
ⓒ연합뉴스·뉴시스

레전드 중 성공 사례는 선동열·김기태·이강철 정도 

국내 프로야구 레전드 중 그나마 성공한 사례는 선동열 전 삼성 감독, 김기태 전 LG 트윈스 감독, 이강철 KT 위즈 감독 등이다. 현역 감독 중 염경엽 LG 감독, 김경문 한화 이글스 감독이나 김태형 롯데 감독 등이 프로 사령탑으로 성과를 냈으나 선수 시절의 임팩트는 약했다. ‘국민 유격수’ 출신의 박진만 삼성 감독에 대한 평가는 현재진행형이다. 김성근 감독이 시즌 도중 경질된 뒤 갑작스럽게 팀을 맡았던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감독도 이후에는 다른 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고인이 된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이나 이종범 현 KT 위즈 코치 등은 1군 감독 ‘후보’로만 늘 입길에 올랐다. KBO리그 영구 결번 선수 중 프로 사령탑이 된 이는 선동열, 이만수, 이승엽 정도다.

야구계 레전드로 감독 후보에 언급되는 이는 박찬호·추신수 등이 있다. 특히 정용진 SSG 랜더스 구단주와 친분이 두터워 프로야구 최초로 구단주 보좌역을 맡고 있는 추신수(지난 시즌 뒤 은퇴)는 프로 사령탑 0순위로 거론된다. 한 현역 감독은 “선수 출신이면 누구나 프로야구 감독이 되고 싶어 한다. 제안이 왔을 때 거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제의 홈런이 오늘의 경기를 이기게 해주지 않듯이 어제의 영광이 오늘의 지도력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이승엽 감독의 중도 퇴임은 지도자 경험 없이 프로 사령탑이 됐을 때의 리스크(위험성)를 보여줬다. 준비된 자만이 왕관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한다. 조급함이 팀은 물론 리그의 미래도 망칠 수 있다. 감독 후보군이 풍부하지 못한 리그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