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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경실련 공동기획] 尹 정부 신규 국가산단 추진 중인 용인·창원 현장 봤더니 
용인, 신규 15곳 중 처음 승인…‘명태균 논란’ 창원, 흙먼지만 날려 주민들 울상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정부 지정으로는 14년여 만에 발표한 신규 국가산업단지(이하 국가산단) 추진이 이재명 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와 비수도권 소재 14곳에 국가산단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시대적 과제인 인구 소멸, 나아가 지방소멸을 늦추기 위한 지역경제 활성화와 직결되는 국가 정책이다. 다만 윤석열 정부가 출범 1년도 안 돼 국가산단을 결정한 만큼 면밀한 논의 과정을 거쳤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신규 후보지 전체 면적(4095만㎡) 중 31%에 해당하는 1258만㎡가 그린벨트 지역이지만 정부의 관련 논의가 없었다는 시사저널 분석 결과는 ‘졸속’이 아니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더한다. 과거 지어진 35곳 국가산단(전체 2억3237만㎡ 중 1193만㎡)과 비교해 봐도 윤 정부의 그린벨트 해제는 단기간에 더 넓게 결정됐다.

명분은 있었을까. 기존 국가산단 전체 면적 중 축구장(7140㎡) 882개 규모의 미분양이 있다는 사실은 국가산단의 원래 취지를 따져볼 때 의구심만 가중시킨다. 미분양 부지는 대부분 비수도권에 집중됐다. 또 기존 국가산단 35곳의 입주 업체가 각 지방자치단체에 납부한 지방법인세 역시 수도권 편중 현상이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노는 땅’이 있는 기존 국가산단의 경제적 효과가 불분명한데도 새로운 정책을 추진했다는 이야기다(시사저널 7월3일자 「[단독] 35조원 들인 ‘국가산업단지’, 지방에선 “수출액 0원” ‘애물단지’로」, 7월4일자 「[단독] 국가산단 입주 법인 수 3200개 늘었지만…지방세는 21% 덜 걷혔다」, 7월7일자 「[단독] “기존 국가산단 그린벨트 해제 면적 1193만㎡인데, 尹 정부 때 신규 해제 면적은 1258만㎡”」 기사 참조).

이런 상황에서 새롭게 지정된 용인 국가산단의 사업 속도는 빠르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탄핵 정국에 접어들었던 지난해 12월말 관련법에 근거해 국가산단으로 지정됐다. 이는 신규 국가산단 후보 지역 중 처음이다. 이처럼 산업단지계획 승인이 완료돼야 토지 보상이나 기반시설 공사 등 실제 국가산단 조성 작업이 시작될 수 있다. 전체 15곳 가운데 용인만 국가산단으로 먼저 지정되면서 토지 보상 등 관련 절차가 본격화한 것이다. 시사저널은 윤 정부에서 추진된 신규 국가산단 15곳 중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른 경기도 용인시, 그리고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관련 논란으로 몸살을 앓는 경남 창원시 두 곳을 찾아 현장 상황을 살펴봤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3년 3월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3년 3월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7월15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 부지 인근에 국가산업단지 개발사업 합동설명회 안내 현수막이 붙어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7월15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 부지 인근에 국가산업단지 개발사업 합동설명회 안내 현수막이 붙어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7월15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 부지 ⓒ시사저널 최준필
7월15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 부지 ⓒ시사저널 최준필

“인구 유입 기대되지만 월세 오를까 걱정”

경기도 용인시의 분위기는 국가산단 조성에 속도가 붙은 현실과는 다소 온도 차가 있는 듯하다. 이슬비가 내리던 7월15일 오전. 용인에서 일하는 공인중개사에게 물어 국가산단 부지에 도착했다. 처인구 이동읍에 있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보인 건 논밭과 주택뿐이다. 눈으로 대강 짐작해 보니 축구장 100개를 합친 규모로 보였다. 논밭만 보이는 이곳을 국가산단 부지로 보기 힘든 이유는 부지 조성 공사 착수 이전 단계이기 때문이다. 사업 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 측은 “부지 조성 공사에 들어가려면 감정평가를 먼저 해야 하는데 아직 (감정평가가) 완료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공사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 보니 정확한 국가산단 부지의 범위를 가늠하기도 쉽지 않았다.

여기서 10분 걸어가니 마을 입구에 걸려있는 현수막이 보였다. 국가산단 관련 합동설명회 플래카드다.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업단지 개발사업 합동설명회’라는 문구를 보고서야 국가산단 부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통상 국가산단이 들어서면 인구 유입 효과가 있는 만큼 근처 상권이 활기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부지 근처에 있는 상권은 한산한 분위기다. 점심시간이 돼도 손님이 없는 식당이나 카페가 연달아 보였다. 도로 역시 이동하는 차량이 적어 휑한 모습이었다.

국가산단 인근 상인들은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안고 있다. 인구가 유입되면 매출이 증가할 것이라는 희망, 그러면서도 늘어난 수요만큼 월세도 오를 것이라는 우려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아무개씨(57)는 “국가산단으로 지정됐다고 해서 손님이 특별히 많아진 건 아니다”며 “그런데도 입주 소식에 땅값과 건물값이 뛰다 보니 식당 월세를 올리겠다는 주인이 많다”고 말했다. 다만 카페를 운영 중인 박아무개씨(31)는 “유입된 인구를 유치할 만한 맛과 서비스를 통해 매출이 늘어나면 오른 월세도 감당할 수 있을 테니 호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부동산 업계는 이보다 더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공인중개사 문아무개씨(52)는 “국가산단은 부지 조성 공사가 시작되지 않아서 부동산 수요가 직접적으로 늘어나진 않았다”면서도 “인근 일반산업단지 영향으로 간접적인 수요 증가는 있었다”고 했다. 이어 “지방에서는 1조원짜리 사업만 수주해도 호재인데 이번 국가산단에 360조원이 투입된다”며 “진행만 되면 직원들이 머물 원룸 등을 중심으로 부동산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기대했다.

용인은 신규 국가산단 15곳이 위치한 지자체 중 국토교통부에 국가산단 지정 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은 유일한 곳이다. 정부에 신규 국가산단 지정을 건의하지 않고도 반도체에 초점을 둔 국가산단으로 지정된 것이다. 국토부는 용인 등 일부 지역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와 환경영향평가 단축, 그린벨트 해제 등과 관련한 사전협의, 세액공제 등의 혜택을 약속하기도 했다. 용인시 측은 앞서 시사저널에 “기업(삼성)의 건의에 따라 신규 후보지로 지정됐다”고 설명한 바 있다.

국토부는 지난해 말 용인에 대해서만 산업단지계획 승인을 완료했다. 국가산단 후보지 선정부터 지정 과정엔 통상 4년 이상 소요된다고 한다. 이번에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 인허가 패스트트랙(신속추진절차)을 통해 1년9개월로 단축됐다. 다만 용인에서 국가산단 부지 원주민들의 토지 보상 문제 해결이 지체되면 내년 말에 예정된 부지 조성 공사 시작이 늦춰질 수 있다.

실제로 국가산단 조성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봉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원주민들을 수용할 이주자 택지가 (군부대 근처에) 생기고는 있지만 수요가보다 비싸게 분양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며 “위치도 군부대 인근이라 생활할 때 소음이 심할 것으로 예상돼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문호 사무국장은 “수십 년 살던 곳을 갑자기 빼앗기고 나가게 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은 ‘헐값 보상’이 있으면 이의제기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LH 측은 보상과 관련해 “주민들이 정당한 권리인 이의제기를 행사할 경우 사업 지연이 우려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토지 보상 전에 감정평가가 선행돼야 하는데 (감정평가가) 완료되지 않아 보상이 시작되지 않았다”며 “이에 현재 보상금 규모가 주민들에게 통지되지 않은 만큼 보상금 규모의 적절성 등을 따질 시기는 아니다”며 말을 아꼈다.

명태균씨가 국책사업 대상지 선정 등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경남 창원 의창구 북면 고암리 신규 국가산업단지(창원국가산단) 부지 ⓒ시사저널 임준선
명태균씨가 국책사업 대상지 선정 등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경남 창원 의창구 북면 고암리 신규 국가산업단지(창원국가산단) 부지 ⓒ시사저널 임준선
명태균씨가 국책사업 대상지 선정 등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경남 창원 의창구 북면 고암리 신규 국가산업단지(창원국가산단) 부지 ⓒ시사저널 임준선
명태균씨가 국책사업 대상지 선정 등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경남 창원 의창구 북면 고암리 신규 국가산업단지(창원국가산단) 부지 ⓒ시사저널 임준선

멈춰진 창원 국가산단 “약속했으면 지켜야”

논란의 땅, 창원 신규 국가산단의 조성 속도는 확실히 더디다. 지난해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의 국가산단 사업 개입 의혹이 터진 게 영향을 끼친 탓이다. 창원은 과거 지어진 국가산단이 이미 자리한 곳이다. 여기에 윤 정부에서 추진된 신규 국가산단이 창원 북면 고암리에 또 조성될 예정이다. 조성 계획이 발표된 2023년 3월만 해도 동네에 훈풍이 가득했다. 지난해 4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는 “예비타당성조사, 계획 수립 등 관련 절차를 신속하게 이행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현 상황은 어떨까. 기자가 창원시 의창구 북면 고암리 일대에 도착하자마자 좁은 길목과 마주했다. 자동차를 타고 진입하기 어려워 보였다. 현장을 함께 찾은 구수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도시개혁센터 주거분과정책위원(감정평가사)은 “신규 국가산단 후보지로는 좋은 부지가 아닌 편”이라고 평가했다. 국가산단 입주 기업에 출퇴근해야 할 청년들이 불편할 수 있다는 게 주된 이유다. 시사저널과 만난 한 고암리 주민은 여러 부침을 겪었어도 신규 국가산단이 추진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약속했다 아입니까. 그라믄 지켜야지예. 가만히 있는 창원 사람들 기대하게 만들어놓고, 놀리는 것도 아이고 이라믄 안 됩니다.”

이런 분위기를 보여주듯, 부지를 따라가는 길목에서 신규 국가산단 추진을 주장하는 현수막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창원시 측은 물론 신규 국가산단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지역민들의 속마음은 여전히 타들어가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창원이 ‘경남 제1의 도시’로 알려져 있는데도 지역 경기는 이에 못 미친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창원은 마산, 진해와 합쳐지면서 2022년 1월 인구 100만 명 이상의 특례시로 격상됐다. 여러 공장은 물론, 재정이 탄탄한 ‘알짜 기업’도 다수 유치됐다. 그러나 체감하는 지역민들의 목소리는 다르다. 인구도 100만 명 이하로 줄어들어 특례시 타이틀을 반납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먹고살기 힘듭니데이.” “경기가 안 좋습니더.” “창원도 많이 죽었지예.” “이재명 대통령이 좀 해결해 주이소.” 기자가 창원을 떠나는 내내 들려온 주민들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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