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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잠시 멈췄던 어느 날, 길을 가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은 아주 낯설게 보일 만큼 놀라웠다. 파란색은 한없이 맑게 깊었고, 구름은 순도 높은 흰색으로 뭉쳐 눈부셨다. 그저 꿈같았고, ‘물감을 풀어놓은 듯하다’는 표현이 더는 상투적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환상적인 풍경을 본 것이 얼마 만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이런 하늘빛을 얼마나 더 오래 더 볼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도 피어올랐다. 자연은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알던 그 자연이 아니고, 자연이 베풀어주던 호의가 해가 갈수록 점점 더 흐릿해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어서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는 어느 영화 속 대사처럼 우리가 자연의 계속된 호의를 당연한 권리로 여기고 거들먹거리며 탐욕을 부려 온 결과는 이미 전 세계에서 호된 시련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럽과 미국 동부 지역 등에는 기록적인 폭염이 덮쳐 수많은 온열질환 사망자가 발생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여름 초입부터 열대야가 열흘 이상 이어지면서 폭염 피해가 잇따랐다. 문제는 이런 이상기후가 앞으로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를 두고 “폭염은 더 이상 드문 현상이 아닌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되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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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코앞에 닥쳐있는 ‘예비된 재앙’ 앞에서 인류는 여전히 무기력하다. 모두가 힘을 합쳐도 극복해낼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트럼프의 미국은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했고, 주요 국가들도 기후 대응에 그다지 큰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경우 이재명 대통령도 ‘온실가스 감축’ ‘탈(脫)플라스틱 선도’와 같은 환경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경제성장에 이미 방점을 찍었던 터라 정책 실현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설지는 알 수 없다.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에 이른 플라스틱 폐기물 관련 정책만 해도 ‘플라스틱 빨대냐, 종이 빨대냐’를 둘러싼 논란이 해소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상태다. 더 말할 것도 없이 현재의 기후 재난이 그동안 플라스틱 남용과 같은 실용 위주의 편의성에 지나치게 집착해 온 우리 삶의 업보임이 분명한데도 그렇다.

미래에 대한 걱정도 걱정이지만, 지금 당장의 위협으로 다가온 여러 자연재해에 선제적으로 적극 대응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여름철 뉴노멀이 된 ‘폭염 아니면 폭우’의 악순환에 효능적으로 맞서 인명 피해를 철저히 막아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체감온도 33도가 넘는 날씨에 작업하는 근로자는 2시간마다 20분 이상 의무적으로 쉬게 하는 새 산업안전보건 기준을 정해 시행한 것은 잘한 일이다. 다만, 그럼에도 사각지대에 방치된 특수고용직 같은 노동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보이는 점은 여전히 아쉽다. 폭염·폭우의 시절에는 민생의 모든 부분이 괴로워지지만, 특히 폭염과 인플레이션이 결합된 이른바 ‘히트플레이션’에도 바짝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 지연된 기후 대응은 더 이상 제대로 된 대응이 아니다. 균형 잡힌 민주주의만큼이나 마음 편히 숨 쉬면서 살 수 있는 나라를 후대에 물려주는 것 또한 우리에겐 더 피할 수도, 더 미룰 수도 없는 숙명의 과제다. 섬세한 환경오염 방비책, 미래를 생각하는 에너지 정책 등 할 일이 태산이다. 이제는 지금껏 많은 호의를 베풀어준 자연에 대해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호의를 보여줄 차례다. 시시각각으로 우리 삶을 조여 오는 기후 문제가 이재명 정부의 ‘실용 우선주의’에 치여 뒤로 밀려날까 노파심이 커져서 하는 말이다.ㄱ

김재태 편집위원
김재태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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