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고비 넘긴 李, 2주 후 국익-동맹 시험대에…‘친중 의혹’ 불식이 첫 과제
북핵 억지력 확약 받을까…연동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 등장 예상
트럼프, 10월 열릴 경주 APEC에 참석 의사 밝힐지도 관심
“큰 고비를 하나 넘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집권 후 사실상 첫 고비였던 ‘대미(對美) 관세 협상’을 데드라인(8월1일) 전날 극적으로 풀어낸 데 이어 고대하던 첫 ‘한미 정상회담’까지 성사시켰다. 그간 이 대통령이 협상 막판까지 ‘전략적 침묵’을 지키며 비관세 장벽 등 각종 쟁점에 대한 ‘미국 압박’과 ‘국내 민심’ 간 줄다리기 끝에 얻어낸 성과로 평가된다. 이번 협상의 본보기였던 일본이나 유럽연합(EU) 등과 비교해도 선방한 만큼 이 대통령의 협상력이 입증됐다는 호평도 이어지는 분위기다.
이 대통령의 다음 시선은 이달 광복절 전후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 집중될 전망이다. 국익·동맹 시험대 격인 이번 회담 테이블에서 풀어야 할 고차방정식이자 핵심 과제는 크게 네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전략적으로 ①미국의 이 대통령을 향한 친중 의혹을 푸는 동시에 대중(對中) 견제 역할론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당연히 ②북핵 억지력 확약도 재차 받아내야 한다. 여기에 뜨거운 감자로 꼽히는 ③주한미군 감축 문제와 방위비 인상 문제 등을 풀어내야 한다. ④트럼프 대통령의 발걸음을 오는 10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열리는 경주로 유도해야 ‘최선’의 외교 퍼즐이 완성된다는 분석이 많다.
‘셰셰’ 논란 불식시킨 李, “선방했다” 호평
일단 이 대통령은 외교 무대에서 돌연 발생한 ‘미국발(發) 관세 청구서’ 리스크를 비교적 순탄하게 넘긴 분위기다. 양국 정부가 7월31일(현지시간) 공개한 관세 협상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에 3500억 달러(약 487조원) 규모 투자를 위한 전략산업 펀드를 조성하고 1000억 달러(약 139조3500억원) 규모의 액화천연가스(LNG)나 기타 미국산 에너지 제품을 구매하는 대신,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는 기존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했다. 이를 통해 수출 주력국인 한국 내 경제 주체들에 미칠 전방위적 영향을 줄이는 등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상호관세 발효 시점까지 불확실했던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는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도 한층 올라간 모습이다. 우선 이 대통령은 그간 ‘셰셰(谢谢·감사합니다) 발언’ 논란으로 꼬리표처럼 붙었던 ‘친중(親中)’ 성향 관련 야권의 의구심을 보란 듯이 불식시켰다. 오히려 이 대통령은 중국 정부의 전승절(戰勝節) 행사 초청에도 ‘불참’ 결단을 내리며 선명한 외교 노선을 보여줬다. 전략적 모호성 대신 전략적 명료성에 방점을 찍었다는 점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동맹국인 미국에 대한 우선순위를 분명히 보여주는 상징적 행보로 해석됐다.
여기에 이 대통령의 ‘대응 전략’도 대체로 적중하면서 그의 협상력과 외치(外治) 능력이 함께 입증됐다는 평도 나온다. 취재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이번 협상 과정에서 미국 현지 협상팀으로부터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으면서도 실무진의 협상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했다는 전언이다. 또 대외적으로도 협상 관련 불필요한 언급이나 메시지를 자제하며 ‘전략적 침묵’을 구사했다. 결과적으로 실무진이 협상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은 물론, 우리 패를 상대방에게 노출하지 않고 국익 중심 성과를 이뤄낸 셈이다.
협상 결과에 대한 ‘국내 수용성’ 변수를 고려한 점도 눈에 띈다. 이 대통령은 농축산물 시장 개방 문제에 대한 미국 측 요구에 거리를 두며 국내 농민들의 반발을 최소화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많은 국민들께서 우려했던 것처럼 미국은 농축산물 시장 확대 요구와 비관세 장벽 축소를 강하게 요청했다. 그러나 우리 협상단의 끈질긴 설명 결과, 미 측은 우리 농업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추가적인 시장 개방은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이번 협상 과정의 주역 중 한 명인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의 외교 전략을 이행한 효과로 풀이된다. 취재에 따르면, 위 실장은 지난 대선 정국부터 이 대통령에게 대미 외교 전략과 관련해 “미국 내 정책 동향을 주시하면서 국내 여론(협상 결과에 따른 국민 수용성)을 함께 고려해 ‘세밀하게’ 협상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제언했다는 전언이다. 해당 원칙을 이번 협상 전략에 핵심 축으로 반영하면서 과거 ‘광우병 파동’ 사태의 재현 가능성을 차단한 셈이다.
무엇보다 관세 수준을 일본과 동일한 조건인 15%로 맞추면서 국내 재계의 우려도 불식시켰다. 자동차·배터리 등 한국의 전략 수출품에 적용될 관세에 대해서도 경쟁국들과 균형을 맞췄다. 만약 인도처럼 25%의 고율 관세를 떠안은 채 8월1일을 맞이했다면 국내 산업계는 물론 여론도 거세게 반발했을 가능성이 크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관세율이 다른 동맹국들과 동등하면서도 가장 낮은 15%로 맞췄다는 것은 매우 선방한 성과”라며 “미국은 우방국이 아닌 나라들엔 대부분 그보다 높은 관세를 매겼다”고 강조했다.
“李, 전략적 모호성 대신 선명성 택해야”
이처럼 정부는 국익과 동맹 사이의 절묘한 균형 전략으로 관세 협상을 타결한 데 이어, 한미 정상회담까지 성공적으로 치르며 한미 외교를 순항 가도에 올리겠다는 각오다. 특히 여권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정상회담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까지 이어진다면 향후 양국 정상 간 교류는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양국 간에 산적한 숙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
일단 회담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핵심 현안은 ‘대중 관계’ 스탠스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대중 견제와 관련한 명확한 역할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72주년 기념일 이튿날인 7월28일(현지시간) “아시아에는 ‘공산주의의 악(evil)’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미국과 한국의 군대는 오늘날까지 철통같은 동맹 아래 단결해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또 각종 외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측근들을 통해 일본과 호주에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전쟁 발발 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문제와 연결 지으면 한국은 딜레마 상황에 놓인다. 중국의 대만 침공 상황에서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 역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북·중 양면의 위협 속에서 미국에 대한 협조와 자국 방위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미국한테 우리가 직접 개입하는 건 어렵지만 대만 사태에 필요한 미국 무기의 재고 보충, 중국의 위협을 느끼는 동아시아 주변 국가들의 군비 증강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기여하겠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여권 내부에서도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으로 표현되는 균형 기조 대신 ‘미국과의 선명한 관계’를 어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통상 전문가로 꼽히는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지금은 중국이 우리와 산업구조가 비슷해지면서 가장 큰 경쟁자로 바뀌었다. 반면 미국은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시장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데다 중국을 견제해 주고 있어 우리가 시간을 벌 수 있게 해준다”며 “지금은 미국과의 전략적 시너지가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한반도 안보와 관련한 대북 문제도 자연스레 회담 테이블에 오를 전망이다. 외교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에 집착하는 만큼 향후 북한과 핵을 담보로 다양한 거래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한국을 패싱한 채 미국을 향한 위협만 제거한 북·미 간 합의가 이뤄지는 경우의 수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선 이번 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패싱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단독 협상할 가능성을 전면 차단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일각에선 북한에 대한 핵 억지력을 더욱 강화하는 메시지를 끌어내고 담판을 짓는 것에서 나아가, 한·미·일 우방국 공조를 더욱 결속시키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야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현 정권의 단독 대북 기조로 북핵 문제를 억제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미국과 목소리를 맞춰 대내외 투트랙 전략을 펴야 북핵을 억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방비 증액 카드로 주한미군 감축 막을까
주한미군 역할 확대와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 한미동맹 관련 현안 역시 시험대에 설 가능성이 유력하다. 이들 사안은 당초 관세 협상 과정에서 우리 측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카드’로 거론됐지만, 협상이 일단락되고 정상회담이 다가오면서 되레 부담으로 작용하는 형국이다.
우선 다가오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 문제가 핵심 의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있다.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을 한반도에 고정된 ‘주둔군’이 아니라 세계 어디든 비상사태 발생 시 즉각 투입할 수 있는 ‘기동타격군’으로 운용하겠다는 개념이다. 다만 한반도 바깥에서의 작전 범위 확대는 국제 분쟁에 휘말릴 위험을 키울 수 있는 만큼 우리 정부로선 미 측의 요구에 선뜻 응하기 어려운 구조다.
주한미군 문제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도 연동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회원국들을 상대로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으로 국방비를 증액하라고 압박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직접 겨냥해 ‘부유한 나라’라고 언급하며 “자국의 방위비를 스스로 부담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한국 입장에서 국방비 지출을 GDP 대비 5%로 늘리려면 국방 예산으로 약 132조원이 필요한데, 현 재정 여건을 고려할 때 쉬운 일이 아니다.
현 정부 외교 책사로 활동하고 있는 한 전문가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방위비 분담금은 큰 틀에서 볼 때 우리 돈을 더 뜯어내겠다는 이야기고, 주한미군 철수는 국제적인 흐름으로 봐야 한다”며 “관세에서 미국이 더 이득을 챙길 게 없다면 이 두 축에서 압박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제안할 카드가 사실 마땅치 않은 만큼 미국의 제안을 어떻게 잘 방어하고 받아들일지 여부가 회담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