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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펀드평가 조사 결과, 39개 공모펀드 중 25개가 마이너스 수익률 기록
판매 과정에서 ‘先입금 後서류작업’ 정황…불완전판매 논란도 거세질 전망

국내 은행 및 증권사에서 판매된 해외 부동산 펀드의 64%가 원금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사저널이 한국펀드평가에 의뢰해 받은 ‘해외 부동산 펀드 성과 자료’에 따르면, 8월4일 기준으로 운용 중인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는 모두 39개다. 이 중 3년간 수익률이 오른 것은 14개에 불과했다. 나머지 25개 펀드는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39개 펀드의 설정액은 1조265억원이었는데, 현재 순자산은 6403억원으로 사실상 반 토막이 났다. 그동안 금융권에서 나돌았던 ‘해외 부동산 펀드發’ 위기설이 현실로 확인된 것이다.

수익률이 가장 낮은 펀드는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204A 펀드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펀드는 2018년 9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네슬레 본사 빌딩에 투자했다. 초기 설정액은 556억원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유럽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순자산은 115억원까지 떨어졌다.

벨기에 펀드 투자 피해자들이 6월1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한투증권의 부실한 펀드 운용에 대한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벨기에펀드 투자 피해자모임 제공
벨기에 펀드 투자 피해자들이 6월1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한투증권의 부실한 펀드 운용에 대한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벨기에펀드 투자 피해자모임 제공

판매 직원과 고객 대화 녹취록 들어보니…

키움투자증권이 운영하는 키움히어로즈유럽오피스부동산 1~4호 역시 -67.53~-67.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펀드 역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오피스 빌딩에 투자하면서 주목받았다. 입주사 대다수가 정부기관인 데다, 10년 이상의 장기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순자산은 139억원으로 설정액(476억원) 대비 3분의 1 토막이 난 상태다.

이 밖에도 미래에셋맵스미국부동산 11(-60.83%),  하나대체투자나사부동산 1(-48.80%), 현대유퍼스트부동산 30(파생)C-A(-41.1%), 한국투자뉴욕오피스부동산 1(-32.35%) 등 순으로 손실률이 높았다. 대부분이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8~19년에 설정된 펀드들이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저금리 시기에 무분별하게 해외 부동산에 투자한 게 원인”이라면서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공실률이 증가하고, 기준금리 인상으로 자금 조달 비용이 증가하면서 수익률이 급격하게 악화됐다”고 평가했다.

궁지에 몰린 펀드 운용사들은 만기 연장에 나섰다. 2025년으로 예정된 펀드 만기를 대부분 2030년까지 연장한 상태다. 대출 만기가 도래하는 펀드 역시 리파이낸싱(자금 재조달)을 통해 만기를 연장하고 있다. 유럽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는 시기를 기다려 자산을 매각한 뒤 투자금을 회수한다는 게 이들의 복안이다.

하지만 금융권 일각에서는 우려도 제기된다. 만기 연장은 단지 ‘부실 폭탄’이 터지는 것을 잠깐 미룬 미봉책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최근 리파이낸싱에 성공한 한 해외 부동산 펀드의 경우 대출금리가 3%대에서 6%대로 두 배로 증가했다”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손실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고객들 역시 만기 연장 기간 동안 투자금이 묶일 수밖에 없다”면서 “잘잘못을 떠나 최근 펀드 판매·운용사와 투자자들 간에 법적 다툼이 잇따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시사저널은 모 증권사를 통해 7개의 해외 부동산 펀드에 가입한 A씨를 최근에 섭외해 수익률을 점검해 봤다. A씨의 포트폴리오를 확인한 결과, 7개 펀드 모두 원금 손실을 입었다. 2개는 30%대, 2개는 40%대 손실을 입었고, 나머지 두 개는 각각 70%와 100% 손실률을 기록했다. 손실률이 10% 미만인 펀드는 단 하나에 불과했다.

문제는 A씨에게 펀드를 판매한 증권사가 리스크를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A씨는 펀드 가입 당시 판매 직원과 나눈 대화 녹취록을 근거로 제시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증권사 직원들은 A씨에게 해외 부동산 펀드를 권유하면서 한결같이 높은 임대율로 인한 안정적인 배당금과 매각 차익을 강조했다.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한 경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전에 가입한 부동산 펀드의 수익률이 마이너스다”고 A씨가 토로하자 이 직원은 “손실이 난 게 아니고 환헤지(위험 외피) 때문이다. 나중에는 회복된다”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이 펀드의 수익률은 현재 -70%를 기록 중이다.

또 다른 판매 사원의 경우 “설정액이 금방 소진되니 먼저 지정된 계좌로 입금하고 서류 작성 역시 미리 해놔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펀드 가입 시 고객에게 고지하거나 확인시키는 체크 리스트를 직원이 임의적으로 기입해 놨다는 얘기다. 이 펀드의 경우 현재 투자금 전액이 손실된 상태다. 이에 따른 불완전판매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024년 1월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공모펀드 경쟁력 제고 방안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024년 1월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공모펀드 경쟁력 제고 방안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외 부동산 펀드發 위기설 다시 수면 위로

실제로 최근 해외 부동산 펀드 투자의 적정성을 두고 판매·운용사에 대한 금감원 조사나 투자자와의 법정 다툼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과 계열사인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이 판매·운용한 벨기에코어오피스부동산투자신탁 2호가 대표적이다. 출시 초기만 해도 회사 측은 “정부기관이 입주한 만큼 7% 안팎의 높은 배당금과 투자수익을 거둘 것”이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시장 악화로 리파이낸싱에 실패했고, 선순위 대주가 기습적으로 건물을 처분하면서 계좌는 깡통이 됐다. 펀드에 900억원을 투입한 2500여 명의 펀드 투자자 역시 돈을 모두 날려 뒷말이 나오고 있다. 

한투증권 측은 “세계적인 고금리와 공실률 증가로 투자 손실을 입었을 뿐이다. 상품 자체나 운용상 문제는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투증권을 상대로 조사를 벌여온 금감원 역시 문제가 없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약속된 배당은커녕 원금마저 날린 투자자들은 여전히 한투증권의 불완전판매를 주장한다. 이들은 조만간 한투증권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른 파열음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100% 손실을 낸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229호’ 투자자들 역시 펀드 운용사 및 판매사와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그나마 은행권의 경우 투자자들과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이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최대 80% 수준의 자율보상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은행보다 판매 비중이 높은 증권사들은 배상률이 20~50%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배상률을 확정하는 기준 역시 증권사 자체적으로 판단하면서 투자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에 따른 논란 역시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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