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과 실용’ 강조한 李…‘내란 척결’ 외치며 ‘국민의힘 심판’에 방점 찍은 鄭
검찰 개혁 두고 ‘국민 눈높이’ 중요하다는 정성호, ‘속도전’ 강조하는 당
역할 분담일까, 예고된 충돌일까…협치·위헌정당 해산·檢 개혁 ‘화약고’
“민주당 정권 이재명 정부는 정의로운 통합정부, 유연한 실용정부가 될 것입니다. 통합은 유능의 지표이며, 분열은 무능의 결과입니다. 국민 삶을 바꿀 실력도 의지도 없는 정치 세력만이 권력 유지를 위해 국민을 편 가르고 혐오를 심습니다.”(6월4일, 이재명 대통령 취임사)
“이 땅에서 윤석열의 비상계엄 내란 사태는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란 세력을 뿌리 뽑아야 합니다. 아직도 반성을 모르는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과 그 동조 세력을 철저하게 처벌하고 단죄해야 할 것입니다.”(8월2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수락사)
‘통합과 실용’을 말한 대통령과 ‘처벌과 단죄’를 말한 집권여당 대표, 둘의 공존은 시너지를 부를까 불협화음을 낳을까. 이재명 정부와 합을 맞출 민주당 수장에 정청래 대표가 당선된 가운데 용산과 여의도의 시선은 두 ‘센 정치인’의 정치적 궁합에 쏠린다. 정권 초 당정 갈등을 점치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민심’을 말하는 이 대통령과 ‘당심’을 쫓겠다는 정 대표 사이에 미묘한 간극은 발견된다.
정치권은 이 간극이 단순 역할 분리를 넘어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에 주목한다. 실제 대야 관계와 인사, 검찰 개혁 등을 두고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메시지가 상충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살아있는 현재권력과 기세등등한 미래권력 사이, 정치권은 두 힘의 ‘불균형’ ‘불일치’ ‘불확실성’이 불러올 파장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윤석열과의 절연’은 비단 국민의힘만의 숙제는 아니다. 윤석열의 악수(惡手)로 탄생한 이재명 정부 역시 전임 정권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이 대통령은 대선 전부터 ‘정치보복’과 ‘내란 단죄’의 차이를 강조해 왔다. 특검이 전임 정권의 부패, 내란 혐의를 강력하게 수사하되 정치만큼은 보복과 갈등이 아닌 타협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게 그의 일관된 소신이다. 이념을 잣대로 피아 식별에 치중하며 야당과의 협치를 거부한 끝에 파국을 맞은 윤 전 대통령의 전례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실제 이 대통령은 취임한 지 18일 만에 김용태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송언석 원내대표 등을 한남동 관저로 불러 오찬회동을 했다. 협치의 손을 자신이 먼저 내밀겠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또 송언석 원내대표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당선된 직후에는 ‘축하 난’을 보내며 협치 의지를 다졌다. 8월4일 이준석 대표를 예방한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개혁신당은 크기는 작지만 대표하는 바가 큰 미래 정당”이라며 “합리적인 보수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야당을 대하는 당정의 온도는 다르다. 8월 폭염에도 여야 관계는 혹한기다. 당권을 쥔 정청래 대표가 ‘대통령의 길’과 다른 노선을 택하면서다. 전당대회 당시부터 “윤석열과 그 동조 세력을 철저하게 처벌하고 단죄하겠다”고 예고한 그는, 취임과 동시에 제1야당을 향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거론하며 거칠게 몰아세우고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와의 악수조차 거부한 정 대표는 같은 찬탄(탄핵 찬성) 우군이었던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도 회동하지 않았다. 개혁신당 관계자는 “당연히 정 대표와의 회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민주당 측에서 ‘정치적 이유로 오지 않겠다’고 일방 통보해 왔다”고 전했다.
이승만·박정희·YS 참배한 李, DJ 묘역만 찾은 鄭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이 천명한 ‘국민 통합’ ‘중도 보수’ 노선과도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정 대표는 8월4일 첫 대표 일정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의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지만 이승만·박정희·김영삼 전 대통령 등 보수 계열 전직 대통령 묘역은 찾지 않았다. 지난 4월 대선후보로서 모든 전직 대통령의 묘역을 찾았던 이 대통령과는 다른 행보였다. 정 대표는 현충원 방명록에 “더 민주적인 민주당, 더 유능한 민주당, 더 강한 민주당을 만들어 이재명 정부를 뒷받침하겠다”고 적었다.
정 대표의 이 같은 행보가 의도된 ‘굿캅-배드캅’(온건파와 강경파 간 역할 분담) 전략이자, 야당의 친윤(親윤석열)계 득세가 불러온 역(逆)작용이란 해석도 있다. 김준일 시사평론가는 정 대표의 최근 행보를 “지금은 그래도 되니까, 그러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김 평론가는 “당원들이 정 대표를 선택한 것은 이재명 대통령의 보수 포용에 대한 우려, 국민의힘에 대한 반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지금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로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 김문수 후보와 장동혁 후보 등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도 (정 대표의 행보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야권 물밑에선 불안감도 감지된다. ‘당심’과 ‘명심(明心·이 대통령 의중)’이 일치하지 않을 때, 정 대표가 전자를 택하는 경우가 생겨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 정 대표는 당권을 쥔 직후 대통령실이 사실상 경질한 강선우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와 통화하며 “든든한 울타리가 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는 이 사실을 직접 본인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와 관련해 김근식 국민의힘 최고위원 후보는 8월5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강 전 후보자 낙마는 이재명 대통령 결심이었는데 여당 대표가 대통령 의지에 반하는 이야기를 한 것”이라며 “정 대표가 강성 포문을 계속 열어젖힌다면 여야 협치를 해야 하는 대통령 마음은 편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사법·언론 3대 개혁의 세기와 속도도 당정 관계의 주요 변수로 꼽힌다. 민주당은 8월7일부터 검찰 개혁을 위한 당·정·대(대통령실) 간 협의 기구를 가동키로 했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거듭 검찰 개혁의 ‘가속페달’을 밟겠다는 입장이다. 검찰청 폐지를 포함한 개혁안을 추석 전에 완성하겠다는 얘기다. 정부도 ‘수사·기소 완전 분리’를 포함한 검찰 개혁의 큰 틀에는 동의한 상태다.
하지만 ‘온건파’ 정성호 법무부 장관을 포함한 정부 핵심 관계자 중 상당수가 검찰 개혁의 수위와 세기를 두고 신중론을 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장관은 앞서 지명 일성으로 “검찰 조직의 해체나 이런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개혁이 이뤄져야 하지 않겠나”라고 밝힌 바 있다. 7월16일 인사청문회에서도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이 축적해온 우수한 범죄 수사 역량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더 강하고, 더 빠른 개혁을 바라는 정 대표와 충돌할 소지가 있는 셈이다.
강한 대표에 열광하는 당심…중도층은 점점 ‘갸우뚱’
그럼에도 당정 갈등이 공개적으로 표출되거나, 정 대표가 이 대통령과 충돌할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6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 중인 이 대통령과 갈등할 경우 그 피해는 ‘미래권력’인 정 대표가 입게 될 것이란 시각이 많다. 민주당 원내 한 핵심 관계자는 “지금은 ‘이재명의 시간’이지 않나. 정 대표는 이제 대표가 됐으니 자리의 무게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정 대표가 강조했듯 가장 중요한 것은 이재명 정부의 성공이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현실 정치에 녹아들도록 돕는 것이 여당 지도부 제1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심의 온도와 정국 변화에 따라 두 사람 사이 권력의 추, 관계의 온도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8월5일 시사저널TV에 출연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권력이 너무 강한 시기이고, 정청래 대표도 이를 인정한 상태”라며 “다만 시간이 흐르고 차기 구도가 본격화되면 ‘굿캅-배드캅’ 프레임이 충돌 지점이 될 수도 있다”고 봤다.
일각에선 당정 관계의 불확실성, 여야의 불협치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민심에는 악재가 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정치적 갈등의 전조가 끊임없이 부각될 경우, 특히 이념보다는 실용과 안정감을 중시하는 중도층의 실망과 피로감이 빠르게 확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 대표의 강경 노선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된다면 당정 갈등이 터지기도 전에 민심 이탈이 먼저 가속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정청래 체제 이후 이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은 우상향하는 모습이지만, 이는 진보 지지층의 결집세가 강화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반면 중도층 민심의 온도는 다소 주춤한 모습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8월4~6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이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일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잘하고 있다’는 답변은 65%로 집계됐다. 직전 조사보다 1%포인트(p) 상승했다. 진보층 지지율이 직전 조사(89%) 대비 3%p 상승하며 92%에 이르렀으나, 중도층 지지율은 전 조사(66%)대비 2%p 하락한 64%로 나타났다.
정당 지지도에서는 민주당이 44%로 직전 조사보다 1%p 상승했다. 국민의힘은 1%p 하락한 16%를 기록하며 최저치를 또다시 경신했다. 진보층의 민주당 지지율은 전 조사(70%) 대비 9%p 뛴 79%로 나타났다. 반면 중도층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민주당 지지율은 전 조사(42%) 대비 3%p 하락한 39%로 나타났다(휴대전화 가상번호 이용한 전화면접,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응답률은 14.7%,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여론조사는 추세가 중요하다. 지지층은 뭉치고, 중도층은 흩어지는 흐름이 지속된다면 과연 이재명 정부는 성공의 길을 걷게 될까. ‘통합과 실용’을 말한 대통령과 ‘처벌과 단죄’를 말한 집권여당 대표, 둘의 공존은 시너지를 부를까 불협화음을 낳을까. 민심은 지금 신호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