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언행이 열혈 지지층에 쾌감 주겠지만 중도층엔 반감 부를 수 있어
강공 계속되면 이재명 대통령에 ‘부담’…민주당만이 아닌 국민 전체 생각할 때
지금 대한민국 권력의 2인자는 누구일까? 헌법상 대통령 유고 시 승계 2위는 국무총리이고, 의전서열 2위는 국회의장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집권당 대표일 것이다. 더구나 정권 교체 직후 거대 여당의 첫 번째 당대표라면 두말할 나위 없다. ‘이재명의 시간’에 이어 마침내 ‘정청래의 시간’이 왔다. 전당대회 경선 때부터 ‘스트롱맨’ ‘전투형 지도자’를 자처했던 정청래 대표는 8월3일 당대표에 선출되자마자 연일 ‘내란 세력 단죄’ ‘악의 무리 청산’ ‘야당 개조’ 같은 고강도 발언들을 분수처럼 쏟아내고 있다. 이런 강공 드라이브는 여당의 열혈 지지층에 쾌감을 줄 수 있지만 중도층에 ‘역풍 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벌써부터 ‘정청래 리스크’라는 말이 나온다.
국민의힘 향해 “상종 못 할 내란당”
사실 민주당과 지지층 입장에서 볼 때, 정청래 대표는 ‘엄지척’이다. 국민의힘이 대선에 참패하고도 내란 사태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을 향해 맹공격을 퍼붓는 상태에서, 정청래 대표 같은 투사형 리더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검찰-사법-언론 3대 개혁을 폭풍처럼 몰아쳐서 추석(10월6일) 전에 전광석화처럼 끝내겠다”고 공언했다. 그의 개혁을 밀어붙일 당내 특위에는 민형배-최민희-백혜련 등 강성 의원들을 포진시켰고, 역시 강성인 추미애 법사위원장 체제를 출범시켰다. 국민의힘을 향해선 연일 ‘상종 못 할 내란당’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보수층이 볼 때, 정 대표는 저런 원수가 따로 없을 것이다. 대선 참패와 특검 정국으로 가뜩이나 궁지에 몰려있는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볼 때 정 대표는 ‘야당을 말살하려는 점령군’으로 보일 법하다. 정 대표의 “내란 세력을 하루빨리 발본색원해 뿌리를 뽑겠다” “악의 무리를 청산하겠다”는 발언은 보수진영이 참고 견디기 힘들 것이다. 여기다 불을 붙인 것이 국민의힘 정당 해산론이다. 현재 법무부 장관만 할 수 있는 위헌정당심판 청구를 국회 의결로도 할 수 있도록 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고 있는 정 대표는 최근에도 “국민의힘은 10번, 100번 정당 해산감”이라고 비난했다. 정 대표가 실제로 행동에 나설지는 미지수지만. ‘여당 대표의 야당 해산론’은 그 자체가 많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거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어느 정부하에서도 집권당 대표가 ‘야당을 개조하겠다’거나 ‘해체하겠다’고 나선 적은 없었다. 만약 정 대표가 실제로 국민의힘 해산 작업에 돌입할 경우, 역풍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 후과는 고스란히 이재명 대통령에게 전가될 것이다. 무엇보다 12·3 계엄과 6·3 대선 참패 이후 지리멸렬한 국민의힘 지지자와 보수진영이 다시 똘똘 뭉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중도층이 바라보는 ‘정청래 스타일’은 어떨까? 정 대표가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중도층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데, 지금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2030 젊은 층과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한 중도층의 속성상 정권 초기에는 집권 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경향이 강하다. 그들은 정치 이슈보다 민생 이슈에 더 관심이 많으며, 윤석열-김건희 부부가 특검 과정에서 보여주고 있는 행태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60%가 넘는 이 대통령 지지율이 그걸 반영한다. 아울러 파면당한 전직 대통령의 속옷 버티기와 팔다리 뿌리치는 극렬한 저항, 영부인의 16개 의혹과 특검 출두, 국민의힘의 사분오열 등이 중도층을 짜증나게 만드는 요인들이기에 당분간 중도층은 정부·여당을 지지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정 대표가 앞장서는 정치 개혁이 여야 격돌의 장기화로 피로감을 주고, 민생경제의 소홀로 이어질 경우 중도층은 민주당에 등을 돌릴 수 있다. 결국 대통령 지지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정 대표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중도층을 붙드는 3대 전략이 탈이념-비정치-친민생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중도 민심을 얻으려면 ‘정치’가 아니라 ‘민생경제’에 올인해야 한다.
정성호 법무장관과 ‘미묘한 차이’
지금 정 대표를 바라보는 이재명 대통령의 속마음은 어떨까? 당장은 좋을 수 있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권력의 법칙이 그렇다. 윤석열과 한동훈의 관계 변화를 우리는 여실히 목도했다. 지금은 이 대통령이 정 대표를 향해 따뜻한 미소와 박수를 보내겠지만 권력의 방향타는 어디로 움직일지 모른다. 집권 초 단시간 내 가시적 성과를 원하는 대통령 입장에서는 속전속결을 외치며 악역을 마다하지 않는 당대표가 고마울 수 있다. 정청래 대표가 주식 차명거래 의혹을 받는 이춘석 의원을 전광석화처럼 제명한 것도 이 대통령의 뜻을 재빨리 간파한 조치로 보인다. 전당대회 때 “이 대통령의 눈빛을 보지 않고도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다”고 말했던 정 대표는 지금도 변함없이 ‘당정 일체’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역대 정부의 사례를 회고하면 중요한 사안을 놓고 대통령 및 정부와 여당 사이에 이견이 생기거나 갈등을 빚는 경우가 허다했다. 최근에도 검찰의 보완수사권 문제를 놓고 당정 간에 미묘한 차이가 노출됐다. 정성호 법무장관은 최근 정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검찰 개혁과 관련해 “확실히 돕겠다”고 말하면서도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를 가장 중요시한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당정 간에 파열음이 크거나 잦을 경우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차질을 빚게 된다.
정 대표가 여러 가지 입법이나 여야 관계에서 계속 강공으로 치달을 경우, 이 대통령은 점점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정 대표는 인식해야 한다. 과거에는 대통령이 너무 앞서가면 당대표가 말리는 형국이었지만 정청래 체제하에서는 당대표가 너무 앞서가면 대통령이 말리는 형국이 올 것 같다. 정 대표는 이번 전당대회 경선 때 왜 “명심(이 대통령의 의중)은 박찬대”라는 말이 나돌았는지를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박지원 의원은 8월6일 MBC에 출연해 과거 이재명 대표가 자신에게 “정청래가 너무 나가는 것 아니냐?”고 걱정스럽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아니다. 잘하고 있다”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마음 한구석에는 ‘정청래 스타일’에 대한 불안감이 없지 않음을 방증하는 한 예다.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여론조사에 매우 민감한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떨어질 경우, 그 책임의 화살이 당대표에게 향할 수 있다는 점을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이재명-정청래 두 사람은 과거 당대표와 수석최고위원 관계가 아니라 권력의 최정점인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의 관계가 되었다. 지지층 아닌 국민 전체를 생각하는 국정의 무한책임자로서 서로 조심하고 존중해 나가길 바란다.
정 대표는 ‘당의 대포’가 아니라 ‘당의 대표’다. 야당 시절에는 대포를 펑펑 쏘아대듯 말 폭탄을 퍼부으면 그만이었지만, 여당 대표가 된 뒤엔 야당과 소통하고 협상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정 대표가 국가 지도자로 크려면 ‘지지층의 대포’가 아니라 ‘전 국민의 대표’가 되도록 확연히 달라진 면모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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