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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15년(1414년) 8월1일 태종은 신하들과 제도를 고치는 문제를 놓고 논쟁을 하다가 문득 이런 말을 던졌다.

“주역의 태괘(泰卦)를 잘 살펴보면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를 대체로 알 수 있을 것이다.”

태괘(泰卦)는 그 모양이 이다. 즉 임금을 상징하는 건괘(乾卦 )가 아래에 있고 신하를 상징하는 곤괘(坤卦 )는 위에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임금이 위에 있어야 하고 신하가 아래에 있어야 하는데 그 모양이 정반대다.

대체 이게 뭐라고 태종은 태괘를 잘 살펴보라고 한 것일까?

의문을 푸는 실마리는 태괘에 바로 이어지는 비괘(否卦 )를 통해 얻어낼 수 있다. 비괘는 모양 그대로 임금을 상징하는 건괘는 위에 있고 신하를 상징하는 곤괘는 아래에 있다. 이게 정상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주역에는 괘의 차례가 있는데 태괘는 11번째이고 비괘는 바로 뒤에 이어지는 12번째다. 여기에 담긴 의미를 먼저 풀어보자. 태괘는 치세(治世)의 괘이고 비괘는 난세(亂世)의 괘이다. 성종 때 학식이 특출났던 이승소(李承召)라는 신하가 경연에서 이 점을 풀이하고 있다.

“대저 치세를 이룬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둔괘(屯卦) 몽괘(夢卦) 송괘(訟卦) 비괘(比卦) 소축괘(小畜卦) 등을 말한 뒤에 태괘(泰卦)에 이르렀고, 난세(亂世)를 이루기는 쉽기 때문에 곧바로 비괘(否卦)로써 연계하였으니 뜻이 깊습니다. 이는 임금으로 하여금 수성(守成)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하고자 함입니다.”

태(泰)란 태통(泰通)이니 만물 만사가 형통하여 화평을 누리는 것을 말하고 비(否)란 비색(否塞)이니 만물 만사가 서로 막혀서 모든 것이 순조롭지 못한 것을 말한다.

이제 괘 모양을 살펴보자. 태괘는 임금이 자기를 낮춰 먼저 신하 아래로 내려간 것이다. 이를 옛날에는 하사(下士)라고 했는데 다른 선비들에게 자신을 낮춘다는 뜻이다. 하사는 곧 겸손이다. 이렇게 임금이 신하들을 향해 먼저 낮출 때 비로소 군신, 임금과 신하가 기운을 통하며 교류하게 된다. 이를 흔히 ‘군신 관계를 덕(德)으로 접근한다’고 말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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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대가 지위나 힘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나는 임금이니 자질이나 덕이 어떻건 간에 윗자리를 고집하는 것이다. 지난 윤석열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 그대로다. 그래서 임금을 상징하는 건괘가 위에 있고 신하를 상징하는 곤괘가 아래에 있는 것이 비괘다.

이렇게 되면 건괘는 위로 올라가려고만 하고 곤괘는 한없이 내려갈 것이니 임금과 신하 간에 기운의 교환이 일어나려야 일어날 수 없다. 서로 자기 입장만 고집하면서 아래에서는 도리가 아닌, 아첨으로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만연하게 된다.

이런 주역의 이치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재명 대통령이 “선출 권력이 우위” 운운하는 발언은 애당초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또 여당에서 대법원장을 공개적으로 내쫓으려는 움직임에 대해 대통령 대변인이 “원칙적 공감” 운운하는 발언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대통령과 여당이 가장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갈기갈기 찢어진 국민을 통합해야 하는 문제다. 이처럼 분열되고 갈등이 심화되는 것이 비색(否塞)이다. 이 점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세력은 양극단의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극단 세력에 의해 우리 사회의 공론이 휘둘리고 심지어 실종된 상태다. 이런 판국에 오히려 대통령과 여당이 지위와 힘을 내세워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려 하고 있으니 태통(泰通)의 세상은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것이다. 정권의 안전한 운행을 위해서라도 대통령과 여당이 겸허함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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