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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혁·윤도영·박승수 등 역대급 유럽파들의 차출 실패 아쉬움
신민하·김준하·이건희 등 K리거 전사들의 투혼 기대

FIFA(국제축구연맹) 20세 이하(U-20) 월드컵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의 등용문이다. 제2회 대회인 1979년 디에고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며 신동에서 천재로 거듭났다. 2005년에는 리오넬 메시가 역대 최연소 골든볼 수상자로 올라서며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됐다. 루이스 피구, 호베르투 카를로스, 라울 곤살레스, 티에리 앙리, 사비 에르난데스, 세르히오 아구에로, 앙투안 그리즈만, 폴 포그바 등도 이 대회를 통해 유망주에서 빛나는 별로 떠올랐다. 

2019년 대한민국 축구를 이 대회 준우승으로 이끈 이강인 역시 골든볼을 차지하며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이강인은 마라도나, 메시에 이은 역대 세 번째 만 18세 골든볼 수상자로 세계 축구의 새 역사를 썼다. 정정용 감독이 이끈 당시 대한민국 U-20 대표팀은 한국 남자축구 최초로 FIFA 주관 대회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 축구는 전통적으로 U-20 월드컵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1983년 고(故)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젊은 선수들이 4강에 오르며 한국 축구 전체의 자신감을 끌어올렸다. 당시 지칠 줄 모르고 뛰는 한국 청소년 대표팀의 투혼에 세계는 ‘붉은 악마’라는 표현으로 찬사를 보냈다. 1991년에는 남북단일팀이 출전해 8강에 올랐다. 2009년엔 홍명보 감독이 당시엔 무명에 가깝던 어린 선수들을 이끌고 8강에 진출하며 지도자 커리어의 성공적 출발을 알렸다.

9월27일 칠레에서 개막하는 2025 U-20 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대표팀이 이창원 감독의 지휘 아래 맹훈련에 임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9월27일 칠레에서 개막하는 2025 U-20 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대표팀이 이창원 감독의 지휘 아래 맹훈련에 임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차출 거부 분위기 속 유럽파는 김태원 1명뿐

최근 한국은 U-20 월드컵에서 6연속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했다. 특히 2019년 폴란드 대회 준우승에 이어 2023년 아르헨티나 대회에서 4강에 진출하며 해당 연령대 선수들의 세계적인 경쟁력을 증명했다(2021년 대회는 코로나19 여파로 취소됐다). 지난 대회에서 4강 성적을 낸 김은중호 멤버 중 배준호·김지수·이영준은 해외 스카우트들의 눈에 띄며 차례로 유럽 무대로 진출했다.

9월8일 U-20 대표팀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2025년 대회 개최지인 칠레로 출국했다. 한국은 우크라이나·파라과이·파나마와 함께 B조에 편성됐다. 특출난 강호는 없지만 만만한 상대 역시 하나도 없다는 평가를 받는 조다. 이번 U-20 대표팀을 이끌게 된 이창원 감독은 “선수들과 두려움 없이 부딪치려고 한다”고 출국 소감을 밝혔다.

과거 U-20 대표팀은 특출난 유럽파 에이스가 팀을 이끌었다. 한국에서 열린 2017년 대회 당시에는 바르셀로나 듀오인 백승호와 이승우가 있었고, 2019년에는 발렌시아 성인팀에 이미 데뷔한 이강인이 합류하며 힘을 실었다. 당시만 해도 유럽의 유명 클럽들은 협의 과정을 통해 유망주의 대회 참가에 협조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근의 흐름은 다르다. 유럽 클럽들은 FIFA 주관 대회에 참가시키는 것보다 클럽 안에서 훈련해 B팀 경기에 출전시키거나 중소 리그 팀으로 임대 보내 경기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한다. 그렇게 되면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열린 2023년 대회부터는 특급 유망주들의 참가 빈도가 확 낮아졌다. 당시 한국도 바이에른 뮌헨 소속의 미드필더 이현주 차출에 실패하며 포르투갈 포르티모넨스 소속 김용학, 독일 3부 리그 소속인 프라이부르크 2군에서 뛰던 이지한만 참가했다.

강원FC 신민하, 제주 SK 김준하, 대전 하나시티즌 김현오 ⓒ프로축구연맹·뉴시스
강원FC 신민하, 제주 SK 김준하, 대전 하나시티즌 김현오 ⓒ프로축구연맹·뉴시스

18세 막내 김현오, 또 한번의 ‘이강인 신화’ 기대

이번 칠레 대회를 앞두고도 분위기는 다르지 않다. U-20 대표팀 연령대의 유럽파는 역대 어느 세대보다 많다. 양민혁(포츠머스), 윤도영(엑셀시오르), 박승수(뉴캐슬), 배승균(도르드레흐트), 김명준·강민우(이상 헹크 2군) 등이 현재 유럽에서 활동 중인 20세 이하 선수들이다. 하지만 소집에 성공한 유럽파는 포르티모넨스 소속의 공격수 김태원이 유일했다. 이창원 감독은 일찌감치 유럽파 차출을 위한 협의를 이어갔지만 허락한 구단은 유망주를 키워서 파는 구조에 익숙한 포르티모넨스가 유일했다.

지난 2월 U-20 아시안컵에 나설 때만 해도 K리그 소속이었던 윤도영·김명준·강민우·박승수가 함께했지만 반년 사이 그들은 모두 유럽파가 돼있었다. 이창원 감독은 “아시안컵에서 발을 맞춘 선수들이 함께하지 못해 연속성에 차질이 생겼다”면서도 “지금 발탁된 선수들도 능력은 충분하다. 충분히 훈련할 수 있었던 만큼 전술적으로는 장점이 있다”며 유럽파가 1명뿐인 대표팀의 경쟁력을 역설했다.

U-20 월드컵은 FIFA 차출이 보장되지 않는 대회다 보니 향후 유럽 클럽들의 차출 비협조 분위기는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가능성이 낮은 유럽파 차출에 집착하기보다는 소집 가능한 선수들로 최대한의 전력을 꾸리는 게 현실적이라는 것이 이창원 감독의 반응이었다.

실제로 이 감독은 현재 K리그에서 꾸준히 출전하며 경험을 쌓은 선수를 대거 차출했다. 대표적인 선수가 강원FC의 센터백 신민하다. 올 시즌 K리그1 25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주전으로 올라선 신민하는 최근 FIFA 산하 국제축구연구소가 발표한 K리거 시장가치에서 320만 유로(약 52억원)로 전체 3위에 랭크됐다. 강원이 최근 배출한 양현준(셀틱)과 양민혁의 뒤를 잇는 차세대 유럽파 후보로 각광받고 있다.

제주 SK의 측면 공격수 김준하도 K리그1에서 검증을 마쳤다. 뛰어난 기동력과 빠른 전환 플레이로 제주 주전 한 자리를 꿰찬 김준하는 지난 대회 배준호의 역할을 소화할 후보다. 충남 아산의 수비형 미드필더 정마호, 수원 삼성의 측면 수비수 이건희, 인천유나이티드의 멀티플레이어 최승구도 이번 U-20 월드컵을 통해 스타 등극을 꿈꾼다.

대회 출국 직전 깜짝 발탁된 2007년생 막내 김현오는 이강인에 이은 또 한번의 월반 신화에 도전한다. 대전 하나시티즌 소속의 만 18세 공격수 김현오는 최전방 공격수 부재로 고민하던 이창원 감독이 출국 직전 황선홍 감독의 추천을 받아 테스트 후에 과감히 선발한 선수다. 187cm, 79kg의 당당한 체구를 자랑하는 김현오는 올 시즌 프로 데뷔전에서 골을 기록할 만큼 당돌함과 투쟁심을 지녔다.

유럽파가 적은 상황에서 조직력을 통한 정면돌파를 선언한 이창원 감독은 대회 첫 경기인 우크라이나전을 약 20일 앞두고 칠레 현지에 입국했다. 시차와 기후 적응을 완벽히 마치고 현지에서 연습경기를 통해 팀 전체의 경기 감각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이 감독은 “지난 대회도 출국 당시의 평가와 기대는 높지 않았지만 박수를 받으며 귀국했다. 우리도 그런 결과를 꿈꾼다. 조별리그 목표는 2승1무로 잡고 있다”고 목표치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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