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불모지’에서 태어난 국가대표 K밴드…“데뷔 10주년은 끝 아닌 시작”
척박한 땅에서 싹을 틔우고, 묘목이 되더니 어느새 쑥 커서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큰 나무가 됐다. 데뷔 10년 만에 K밴드 대표주자로 우뚝 선 데이식스 얘기다. 2015년 9월 데뷔한 데이식스는 원더걸스, 2PM, 미쓰에이, 갓세븐 등 인기 아이돌 그룹을 대거 배출한 JYP엔터테인먼트에서 처음 선보인 밴드 뮤지션이다.
하지만 이들이 데뷔할 당시 대중음악 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아이돌 댄스 음악과 힙합 음악이 강세를 보인 반면 밴드 음악이 주류로 통하진 않았다. 데이식스도 데뷔 당시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또 밴드 신에선 ‘아이돌 밴드’나 ‘기획형 밴드’라는 태생 탓에 이유 없이 저평가되기도 했다.
‘군백기’에 역주행…음악으로 통했다
그러나 이미 준비 과정부터 밴드 DNA를 장착한 이들은 버스킹 무대와 자작곡 그 자체로 승부수를 띄웠다. 서두름 없이 그들만의 속도로 우직한 여정을 이어왔다. 데이식스 특유의 팝 록 성향이 강한 음악들이 호평을 받으며 서서히 ‘음악’ 자체로 성장해 왔다. 2017년 발표한 곡 《예뻤어》가 뒤늦게 역주행하며 대중에게 존재감을 알렸다.
《예뻤어》로 대세 흐름을 탄 것도 잠시, 2020년 전 세계를 잠식한 코로나19 팬데믹과 멤버들의 릴레이 군 복무 등으로 데이식스는 3년 넘는 공백기를 가졌다. 하지만 ‘군백기(군 입대로 인한 공백기)’가 팀의 커리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여느 보이그룹과 달리 데이식스에 이 시기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맏형 성진 외 영케이, 원필, 도운이 군 복무 중이던 2022년 10월, KBS2 《불후의 명곡》 국군의날 특집에서 군복을 입고 무대에 올라 선보인 걸출한 라이브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지난해 3월 약 3년 만에 선보인 완전체 앨범 ‘포에버’에 이어 ‘밴드 에이드’가 연타석 흥행에 성공하며 국민 밴드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이들의 지난 10년은 처절한 성장의 과정이었다. 데이식스는 정식 데뷔를 한 달 앞둔 2015년 7월 홍대 클럽 FF에서 공연을 선보였고, 데뷔 두 달 만인 같은 해 11월 홍대 무브홀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다. 이후 롤링홀을 비롯한 홍대 클럽에서 다양한 무대를 섭렵한 이들은 2016년 예스24라이브홀, 2017년 연세대 백양콘서트홀, 2018년 올림픽홀, 2019년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 잠실실내체육관까지 매년 차근차근 공연 규모를 키워왔다.
군백기 및 두 번째 역주행 훈풍 이후엔 급성장 궤도를 탔다.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총 3회 공연으로 3만4000여 명 관객 동원에 성공하며 ‘대세’ 인기를 입증한 이들은 이후 인스파이어 아레나 3회 공연으로 4만여 명, 고척스카이돔 2회 공연으로 3만8000여 명을 끌어들였다. 특히 올해 5월 KSPO돔에 입성해 6회 총합 9만6000여 명의 관객을 모으며 ‘회당 평균 1만 명’ 이상의 티켓파워를 과시했다. 그리고 이들은 데뷔 10주년을 일주일 앞둔 8월30일과 31일 이틀간 고양종합운동장에 단독 콘서트로 입성하며 스타디움형 밴드의 위상을 입증했다.
데뷔 10주년 기념 투어 텐스 애니버서리 투어 ‘더 데케이드’ 일환 단독 콘서트는 데이식스가 국내 밴드 사상 처음으로 스타디움에 단독 입성한 공연으로 K밴드 역사에 기념비적인 발자취가 됐다. 3만 명을 훌쩍 넘는 관객이 공연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데이식스는 쉴 새 없는 명곡과 히트곡의 향연으로 현장을 뜨겁게 달궜다. 데이식스는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로 오프닝을 장식했고, 《녹아내려요》 《해피》 《웰컴 투 더 쇼》 《더 파워 오브 러브》 등 셀 수 없이 많은 명곡을 쏟아냈다.
멤버 원필은 “우리의 꿈이기도 했는데 10주년에 맞춰서 이렇게 (공연을) 할 수 있게 된 건 여러분 덕분이다. 우리 데이식스와 마이데이(팬덤)가 함께 만드는 우리만의 페스티벌 같다. 그래서 그런지 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감격을 드러냈다. 이어 “2015년에 예스24무브홀에서 처음 콘서트를 했는데 10년 후에 이렇게 고양(스타디움)에서 콘서트를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이 공연장의 습도, 바람, 온도를 제대로 만끽하며 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여기까지 오는 길이 마냥 순탄하진 않았지만 잘 버텨서 이렇게 이곳에 왔다. 여러분의 사랑과 관심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처음부터 JYP에서 나오는 밴드라고 좋지 않은 시선도 받았고, 그런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그걸 부정하고 싶어서 정말 좋은 곡을 쓰고 싶었고, 좋은 무대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우리를 믿어주셨다. 너무 감사하다. 10주년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고 밝혔다.
보편적 공감대+건강한 에너지
데이식스 음악의 흥행 비결에 대해 평론가들은 보편적 공감대와 건강한 에너지 등으로 입을 모은다. 김도헌 대중음악 평론가는 “데이식스는 보편적 정서 기반의 록 음악을 선보이면서 감성적인 무대를 만들어냈는데 역주행으로 큰 사랑을 받은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의 경우 희망찬 노랫말과 현실을 극복하는 청춘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 인기를 끌었다”고 분석했다. 록 장르로 대표되는 밴드의 음악이 한때 마니아의 전유물로 여겨지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보편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진심을 담은 음악으로 ‘대중 픽’ 밴드가 된 데이식스는 10년 만에 K팝 신을 대표하는 얼굴로 우뚝 섰다. 이들은 “‘들으니까 힘이 난다’ ‘노래가 신이 나서 좋다’ ‘내 이야기 같다’는 칭찬과 격려들이 모여 우리에게 원동력이 됐고, 그 힘을 앨범 만드는 데 쏟았다. 매 앨범, 음악과 그 음악들이 모인 음반의 의미는 (팬들과) 함께 만들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데이식스는 대중과의 교감을 동력으로 9월5일 약 6년 만에 새 정규 앨범 ‘더 데케이드’를 발표했다. 데이식스는 “지난 10년이라는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이자, 동시에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는 느낌”이라며 “좋은 음악을 만들어 들려주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 ‘모든 순간을 노래하는 밴드’라는 수식어를 향해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